욥기 42장: 새로운 세상, 새로운 삶

해설:

하나님의 말씀이 끝나자 욥이 주님께 답합니다. 그는 주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분임을 이제야 알았다고 고백합니다(2절). 히브리어에서 ‘알다’는 ‘체험하여 깨닫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지만 체험을 통하여 그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자신이 하나님을 향해서 했던 말들이 얼마나 무지하고 무엄한 것이었는질를 깨닫습니다(3절). 그러자 욥은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5절)라고 고백합니다. 그분의 음성을 통해 그분을 “보는 듯이” 체험한 것입니다. 욥은 티끌과 잿더니 위에 앉아서 회개하겠다고 고백합니다(6절).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고 그분 앞에서 함부로 말한 죄에 대해 회개하겠다는 뜻입니다. 

욥에게 말씀을 다 하신 후, 하나님은 세 친구를 대표하여 엘리바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그들이 “내 종 욥처럼 옳게 말하지 못하였다”(7절)고 책망하십니다. 욥이 옳게 말했다고 하시는 이유는 정직하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네 친구는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욥은 자신의 감정을 정직하게 표현했고, 세 친구는 하나님을 다 아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그로 인해 그들은 고통 중에 있는 욥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그를 책망하고 정죄하고 위협했습니다. 하나님은 세 친구들에게, 욥에게 용서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욥이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8절). 그들이 말씀대로 하자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그들을 용서해 주십니다.

그 후에 하나님은 욥이 잃었던 모든 것을 두 배로 갚아 주십니다. 자식도, 가축도, 재산도, 사람들로부터의 존경과 인정도, 수명도 모두 갑절로 받습니다(10-17절).

묵상:

욥의 모든 불행은 하나님께 대한 그의 믿음이 물질적인 축복 때문이라는 사탄의 고소로 인해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누리던 모든 축복이 사라지고 육신적인 건강을 잃게 되면 필경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라고, 사탄은 장담했습니다(1:11; 2:5). 그로 인해 욥은 누리던 모든 것을 잃고 건강까지 잃었습니다. 그 때 욥은 “주신 분도 주님이시요, 가져 가신 분도 주님이시니, 주님의 이름을 찬양할 뿐입니다”(1:21)라고 고백했고, 하나님을 저주하라는 아내에게 “우리가 누리는 복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는데, 어찌 재앙이라고 해서 못 받는다 하겠소?”(2:10)라고 답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재앙이라면 묵묵히 감당할 마음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왜 자신이 그토록 지독한 재앙을 당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욥은 알고 싶었습니다. 세 친구는 그의 죄 때문에 받은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했지만, 욥은 그만한 죄가 자신에게 있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문제로 그는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 항의했지만, 사탄이 예상한 것처럼 하나님을 저주하지는 않았습니다.

세 친구와의 긴 논쟁 그리고 엘리후와의 긴 설교 끝에 욥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지혜가 얼마나 깊고 당신의 능력이 얼마나 크며 당신의 차원이 얼마나 높은지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인간의 정의로 가늠할 수가 없으며, 그분의 행사는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분은 인간이 생각해 낸 모든 원리와 교리와 법칙을 넘어서서 일하시는 분입니다. 욥도 그 사실을 알았지만 그것을 실감하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 그 사실을 실감하게 되자 욥은 그분 앞에 항복합니다. 자신의 논리로 그분의 정의를 재고 스스로 의롭다고 항의했던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무지하고 무례한 일인지를 자각한 것입니다. 욥이 처음에 했던 고백(“주신 분도 주님이시요, 가져 가신 분도 주님이시니, 주님의 이름을 찬양할 뿐입니다”)은 다만 이론이었습니다. 모든 불행을 거친 후, 욥은 비로소 진실된 마음으로 그렇게 고백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불행을 당하기 전에 그는 자신이 누리는 모든 것을 자신의 의로운 삶에 대한 보상이라고 여기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의롭게 살려고 힘썼습니다. 그는 불행을 통해 하나님을 새롭게 만났습니다. 불행이 끝난 후에 모든 것을 갑절로 받았지만, 이제는 받은 축복을 지키고 더 많은 축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에” 그분을 섬기고 그분 앞에서 의롭게 살려고 힘썼을 것입니다. 그가 당했던 불행이 죄에 대한 징벌이 아니듯, 그에게 주어진 갑절의 축복도 그의 의에 대한 보상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축복이 ‘자격 없이 주어진 것’임을 알았기에 그는 그 축복을 ‘누릴 것’으로 알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믿고 맡기신 것이므로 맡기신 이의 뜻을 따라 사용하기 위해 힘썼을 것입니다. 이렇듯 제대로 겪으면 불행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새롭게 보게 하고 인생을 다르게 살게 만듭니다. 

4 thoughts on “욥기 42장: 새로운 세상, 새로운 삶

  1. 세상에서 추구하는 축복은 실제로 헛된것임을 깨닫게하는 오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축복을 옳게 사용할때에는 진정한 축복이되고 잘못 사용할때는 저주가 되는것을
    잊지않기를 원합니다.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과 시련은 영적 축복아라고 깨달아 감사히
    감내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영의 눈과 귀와 마음을 열어주셔서,비록 고난과 시련을
    당하더라도 이미 주님의 자녀로 택함을 받은 놀라운 은혜를 이웃과 더불어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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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42일간 욥기를 읽었습니다. 외부적 상황 때문인지 나 자신의 마음 상태 때문이지 이번에 욥기를 읽을 때 전에 없이 마음이 무척 가라앉고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이 유난히 많이 오갔습니다.
    사람이 욥처럼 감당키 어려운 시련을 겪을 때에도 목숨을 스스로 끊지 않는가 하면 어떤 이는 삶을 포기해버립니다.
    사람은 (나는) 자신의 능력, 이해 정도를 실제보다 높게 여기고 욥의 친구들처럼 당당하게 상대방을 비판하면서 자신이 그릇되다는 생각을 추호도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교회가 예수님이 하신 대로가 아니라 자신들의 편리와 이득에 예수님을 끌어들여 복음의 사명을 다 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모두 버리고 간 상태에 찾아와 함께 앉아 있던 욥의 친구들이 욥의 신체적 고통을 덜어줄 길을 찾거나 앞으로 다시 일어서도록 어떻게 도와줄까 묻는 대신 욥을 더 절망케 하는 말, 말하는 자신도 잘 모르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며 내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나 상황에서 내가 과연 어떠했는지 돌이켜봅니다.
    35장 10절 말씀, “나를 지으신 하나님 곧 사람으로 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며 (God my maker, who gives songs in the night)”의 그 하나님을 이런저런 헤메임과 낙심 가운데 더 새롭게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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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욥과 함께 한 7주간이 오늘로 끝납니다. 몸은 여기에 있어도 마음은 욥이 있는 곳에서 살다 온 것 같습니다. 자발적으로 자가격리를 하고 난 심정이랄까요. 욥과 친구들이 나눈 대화에 빠져 들기도 하고 욥의 억울한 심정을 헤아려 보기도 하고, 울부짖어도 아무 답이 없는 무심한 하나님을 야속해 하기도 했습니다. 친구들의 냉정한 판단과 분석에 머리가 아프기도 했지만 끝까지 같이 있어 주는 것이 고맙기도 했고 나이가 어린 엘리후의 입에서 지혜로운 말이 나오는 것을 듣고 나이와 경험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자기 연민에서 자기 부정으로 옮겨간 욥의 발전이 정말 부럽습니다. 하나님과 깊은 사귐의 세계로 나아가게 되었으니 얼마나 부러운지요. 처음 욥기를 시작하면서 그는 사탄의 공격을 물리친 수퍼히어로라고 한 것이 틀린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사탄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재산과 건강을 다 잃었던 욥은 이제 처음보다 더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신기한 것을 보게 됩니다. 새로 얻은 자녀가 열 명인데 굳이 세 딸의 이름이 밝혀져 있다는 사실과 “아들과 같이” 재산을 나누어 주었다는 점입니다. 실로 놀랍기만 합니다. 메시지 성경에는 번역한 이름이 나옵니다. 여미마 Dove, 긋시아 Cinnamon, 게렌합북 Darkeyes 이 세 명이 구약성경이 기록하지 않는 수만 명의 여자들을 대신하여 남자와 같이 여자들도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 있었음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욥의 재산 뿐 아니라 신앙의 유산도 똑같이 상속 받았다는 것으로 읽습니다. 욥에게 새 생명을 주신 하나님이 우리도 찾아 오십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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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본 욥의 신앙고백이 너무 멋있습니다. 즉, 이전에는 하나님을 머리로 알았지만, 하나님을 체험하는 귀한 경험을 한 것입니다. 외부의 어떤 사건이 아닌, 욥의 마음에 의미로 다가온 내적인 체험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고백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축복의 결과들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기복신앙이 아닌, 머리로만 하나님을 알고 율법적으로 따라하는 신앙이 아닌, 하나님은 내 마음 구석속에서 아무런 영향도 없고, 자신의 기준으로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닌, 눈으로 체험하며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고 사는 신앙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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