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9장: 무엇을 안다 하는가?

해설:

앞에서 우주의 운행과 대기의 변화에 대해 말씀하신 하나님은 야생 짐승들을 예로 삼아 말씀하십니다. 산염소와 들사슴(1-4절), 들나귀(5-8절), 들소(9-12절), 타조(13-18절), 말(19-25절) 그리고 매와 독수리(26-30절)는 사람이 길들이지 못하는 짐승들입니다. 그 짐승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습대로 자유롭게 살아갑니다. 그 짐승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사람들이 아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동물 중에 사람들이 길들인 것들은 지극히 적은 일부일 뿐입니다. 우주의 운행과 기후의 변화에 대해서 무지하고 무력한 인간은 짐승의 세계에 대해서도 무지하고 무력합니다. 

이 말씀으로써 하나님은, 자연 세계에 대해서도 이토록 무지하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깨우쳐 주십니다. 자연 세계에 대해서도 아무런 통제 능력이 없는 존재가 하물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가타부타 하는 것이 옳으냐는 뜻입니다. 

30절의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있다”는 말씀은 예수께서 종말에 대해 말씀하시는 중에 인용하신 말씀입니다(마 24:28).

묵상:

어떤 면에서 보면 인간은 참으로 놀라운 존재입니다. 지금껏 인간이 연구하여 개발해 낸 과학 기술 문명이 그 증거입니다. 2050년 즈음이면 인간이 신에 가까운 전능의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자신의 인생 여정만이 아니라 세계의 운명과 우주의 운행까지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주선을 달에 보내고 화성에 보내는 이유도 결국 우주의 운행을 퉁제해 보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식이 증대하고 능력이 커지는 것에 비례하여 인간은 교만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호모 데우스'(신의 능력을 가진 인간)가 되고 싶은 욕망은 아담과 하와가 타락할 때부터 인간의 마음을 사로 잡았습니다. 그 은밀한 욕망이 과학 기술 문명의 발전으로 인해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동물들 중에서 일부를 길들여 놓고 만물의 영장인 듯, 자연을 모두 정복한 듯 교만해져 있는 고대인들의 모습이나, 첨단의 과학 기술 문명에 도취되어 우주의 운행과 생명 현상을 모두 이해하고 있으며 그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이나,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정작 자신의 마음의 움직임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마음조차 다스리지 못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면서도 때로 다 아는 듯 혹은 자신의 힘으로 모두 통제할 수 있는 듯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우리는 참으로 무력한 무지렁이일 따름입니다. 

3 thoughts on “욥기 39장: 무엇을 안다 하는가?

  1.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인류는 아담과 하와가 선과 악을 알려는 욕망과 바벨탑사건과
    최근 best seller (Homo Deus)가 배후에서 모든것을 주관하시는 주님을 잊은 인간의 본질이고
    죄성 입니다. 인간이 신이 되려고 발버둥치는 가련한 모습입니다.그럼에도 도저히 가망이 없는
    세상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구원의 길을 마련하신 사랑의 주님께 찬양과 영광을
    드립니다. 이웃과 더불어 주님의 뜻과 계획을 바로 더 아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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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나님 앞에 인간은 극히 작은 존재이지만, 때로는 그 교만과 죄성은 하나님보다 더 커질 때가 많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안다라는 착각에 빠집니다. 첨단의 과학 기술이 많은 새로움과 놀라움을 주고 있고, 점점 발전하고 있으나, 우리는 점점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와 원리의 0.000000001/1000000 도 발견하지 못한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오늘도 그만큼 작고 연약한 존재임을 기억하며 겸손히 나아갑니다. 목사님의 묵상의 말이 참 마음에 와닿습니다. “**우리는 정작 자신의 마음의 움직임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마음조차 다스리지 못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면서도 때로 다 아는 듯 혹은 자신의 힘으로 모두 통제할 수 있는 듯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우리는 참으로 무력한 무지렁이일 따름입니다.”**

    교만함이 다가올 때,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 조차 다스리지 못하는 자이며, 무력한 무지렁이일뿐임을…창조주를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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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안다는 것의 유혹이 크긴 큽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 속에 사람(나)의 사유 활동이 나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생각하는 것과 존재하는 것은 끊을 수 없는 고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억과 언어를 잃어버리는 일을 가장 두려워하는 까닭도 존재가 없어지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인식이나 사유에 한계가 있음을 아는 것은 참지식의 출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질문은 그 어느 것도 예라고 답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과학이 발전했으니 지금은 들염소나 사슴의 출산 기간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동물 지식을 풍부하게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답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문은 우리의 지식이 아니라 사유의 한계를 리마인드하는 질문이기에 곧 우리의 존재를 보게 만드는 질문입니다. 안다는 것의 유혹이 크면 클수록, 그래서 더 많이 알고자 애를 쓸수록 우리의 존재는 더욱 작아지는 것을 깨닫습니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역설이 인간의 크기와 무게를 말해줍니다. 실로 나는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수 없는 존재, 하나님 눈에 보이지도 않을 존재입니다. 흙에서 나온 아담-아다마의 존재가 하나님의 영으로 생명을 얻었으니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 말고는 남아 있을 것이 없습니다. 나의 존재를 증명할 길은 하나님을 아는 것 뿐임을 고백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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