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7장: 두렵고 떨림으로

해설:

앞에서 엘리후는 우주를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에 대해 말하면서 “폭풍”(36:33)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에 대한 비유였음이 드러납니다(1절). 엘리후는 번개를 통해 그분의 위엄을 보고 천둥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2-4절). 우주의 운행과 계절의 변화 그리고 기후의 변화는 모두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5-12절). 그분은 그 모든 것을 통해 당신의 계획을 이루십니다. 그것으로 사람을 벌하기도 하시고 복 주기도 하십니다(13절).

엘리후는 욥에게, 하나님의 그 놀라운 능력과 위엄을 기억 하라고 말합니다(14-16절). 만일 그것을 제대로 안다면 욥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주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17절). 그분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분입니다. 그런 분 앞에서 피조물인 인간이 감히 상대하여 따질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런 분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이라고 다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무지몽매한 일입니다(18-20절). 

마지막으로 엘리후는 하나님의 위엄에 대해 다시 강조합니다. 그는 쳐다볼 수 없을 만큼 밝은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21절). 그 영광의 빛은 너무나 밝아서 두렵기까지 합니다(22절). 인간으로서는 감히 그 영광의 빛에 가까이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23절). 그렇기에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그분을 경외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분 앞에서 스스로 지혜롭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24절).

묵상: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본성을 드러냅니다. 어둡고 퇴폐적인 소설을 쓰는 작가들의 내면 세계와 사적 삶은 대개 그들의 작품과 닮아 있습니다. 듣는 사람의 정신을 분열시키는 음악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 세계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반면, 영혼이 맑은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그들의 내면세계를 드러냅니다. 

우주의 운행과 생명의 현상은 창조주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드러내 보여 줍니다. 그것을 알아보도록 하나님은 모든 인간에게 심미안을 주셨습니다. 그 눈이 열려 있는 사람은 모든 자연 현상과 생명 현상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 보고 또한 그분의 뜻을 살핍니다. 그 사람은 천둥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번개를 통해 하나님의 손길을 봅니다. 그래서 그 옛날 다윗은 “하나님은 하늘의 영광을 드러내고, 창공은 그의 솜씨를 알려준다. 낮은 낮에게 말씀을 전해 주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알려 준다. 그 이야기 그 말소리, 비록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그 소리 온 누리에 울려 퍼지고, 그 말씀 세상 끝까지 번져 간다”(시 19:1-4)고 노래 했습니다. 이렇듯 우주의 운행과 생명의 현상에서 하나님을 보는 사람들은 그분의 위엄에 감복하고 그분의 영광에 고개 숙입니다.  

확실히 엘리후는 다른 세 친구보다 영적으로 더 깨어 있었습니다. 다만, 욥의 불행을 자기 입장에서 판단하고 정죄하는 점에서 다른 세 친구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4 thoughts on “욥기 37장: 두렵고 떨림으로

  1. 사람을 벌할 때도 비를 내리시고 은총을 베푸실 때도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내 자신의 내면을 드려다 봅니다, 같은 우주의 운행과 생명의 현상을 통해 내 마음의 초점이 어디있는지에 따라 불안하기도 하고 평화롭기도 한 영과 육의 차이를 살펴봅니다.
    사람을 대하실 때 의롭게 대하시고 정의롭게 대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주권 앞에 무릅을 꿀는 하루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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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매일 아침, 내자신을 점검하고 하루의 일과를 준비하게하시는 귀한말씀에 감사를 드립니다.
    욥의 처지와 친구들의 충고를 나에게 적용하여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지혜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계획과 뜻을 도저히 이해할수는 없지만 놀랍고 신기한 일들이 일어나는것을
    듣고 보았습니다. 지난날에 있었던 신기한일들을 잊지않고 모든것을 주관하시는 주님이
    허락하신 백신으로 구원의 소망을 이웃과 함께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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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엘리후의 놀라운 통찰력과 하나님에 대한 세심한 표현이 멋있습니다. 모든 우주와 생명을 운행하시고 계획하시는 하나님, 전지전능하시며 무소부재하시는 놀라운 하나님을 놀랍게 비유로 표현했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이 나를 자녀 삼아주셨다는 놀라운 사실을 기억하며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그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 마음에 기쁨이 넘쳐나게 합니다.

    동시에, 그 놀라운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서 내 마음속에 내주하시는 분이심을 기억합니다. 욥의 시대에는 이 놀라운 계획을 생각지도 못했겠지요?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하신 놀라운 사랑과 은혜로 그 위대한 하나님이 내 마음속에 내주하시니 그것이 은혜이고 감격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께서 내 마음속에 내주하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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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어제 아침 일찍 위스컨신에 있는 화이저 공장에서 백신을 가득 싣고 트럭이 출발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전쟁은 양측이 종전에 합의하고 서명하면 끝이 나지만 팬데믹이나 경제공황은 종언의 절차가 없습니다. 백신이 개발되어 사람들이 맞기 시작하면 코로나와의 전쟁이 끝나는 것이겠지만 코로나가 가져온 도전과 변화는 앞으로도 긴 시간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할 것입니다. 전쟁의 위기는 끝나도 전쟁의 위험성이 영원히 제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삶의 모든 일은 “잠정적”이라는 괄호를 달고 있습니다. 엘리후는 앞에서 가 하나님을 설명할 때 굳이 사람을 봐주실 필요가 없는데도 그분의 성품에서 그렇게 하신다는 자기 생각을 말합니다. 사람을 심판하시기 위해 조사하실 필요도 없으시다고 34:23 에서 말합니다. 우리의 죄가 많다고 해서 그분께 무슨 해가 있으며, 의롭다 해서 무슨 유익이 되느냐고, 그분이 우리 손에서 무엇을 받기나 하시냐고 말합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은 우리 같은 피조물이 감히 움직일 수 없는 분이시라고 말합니다. 오늘은 자연의 위력에서 하나님의 모습이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천둥 소리가 울리고 번개가 내리치면 하나님의 명령임을 안다고 말합니다. 구름을 통해 징계인지 사랑인지도 안다고 말합니다. 예전엔 몹쓸 짓을 하는 사람은 벼락을 맞을 것이라는 말들을 흔하게 했습니다. 사람의 징벌은 피할 수 있어도 하늘의 심판은 피하지 못한다는 것을 담은 저주입니다. 대자연 앞에서 인간은 초라할 뿐입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전능자의 권능을 가지신 분, 공의와 의가 많으신 분이 어떻게 사람을 괴롭힐 수 있겠느냐 (23절)는 엘리후의 말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기 전에 이미 자기 죄의 무게로 쓰러지는 인간을 보게 합니다. 엘리후의 말에 토를 달 수가 없습니다. 변호가 필요치 않은 하나님을 엘리후는 멋지게 변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자를 무시하신다고 경고합니다. 메시지 번역은 조금 더 능동적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분명히 하나님을 경배할 것 If you’re wise, you’ll most certainly worship him 입니다. 진정한 지혜자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을 보며 겸손하게 머리 숙이는 하루 하루를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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