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3장: 말씀하시는 하나님

해설:

엘리후는 욥에게 자신의 말에 진지하게 귀 기우려 달라고 청합니다(1-4절). 비록 자신이 욥보다 어리기는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다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욥은 자신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고, 자신도 욥을 압도하려 하지 않고 겸손히 자신의 생각을 나누겠다고 말합니다(5-7절).

엘리후는 욥이 세 친구에게 답하면서 한 말을 상기시킵니다. 욥은 자신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으며, 하나님께서 이유도 없이 자신을 원수로 삼으시고 징계하신다고 했습니다(8-11절). 엘리후는 그렇게 말한 것 자체가 욥의 잘못이라고 지적합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큰 분이어서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분입니다. 따라서 그분이 행하시는 일에 대해 불평할 수 없습니다(12-13절).

욥은 자신의 호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신다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못 듣는 것이라고 말합니다(14절).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방법은 여러가지입니다. 그분은 사람이 죄를 짓지 않도록 꿈으로, 환상으로, 잠 잘 때 혹은 깨어 있을 때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15-17절). 죄로 인해 사람이 파멸에 이르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함입니다(18절). 

사람에게 때로 질병을 보내시는 것도 그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입니다(19절). 그 질병으로 그는 고통 받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어 그를 보호하십니다(20-24절). 그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 하나님은 그에게 응답해 주시고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십니다(25-26절). 죽을 병에서 회복되고 나면 그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해 증언하게 될 것입니다(27-28절). 인간이 겸손히 자신의 죄에 대해 회개하는 한, 하나님은 거듭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29-30절).

엘리후는 욥에게 자신의 말을 끝까지 귀담아 들어 달라고 청합니다. 욥에게 할 말이 있으면 자신도 듣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잠자코 들어 달라고 말합니다(31-33절).

묵상:

세 친구들은 욥에게 숨겨진 죄가 있으며 그가 당한 재앙은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엘리후도 그 점에 대해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징계는 그 사람을 죄로부터 돌이키기 위해서 주시는 사랑의 매라고 생각합니다. 욥은 자신의 호소와 항의에 대해 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느냐고 하나님께 불평하는데, 실은 그가 당하고 있는 일들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욥이 답답해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분의 음성에 그가 귀 막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엘리후는 세 친구보다 진실에 더 가까이 있다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를 에워싸고 계신데, 우리는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은 여러 채널을 통해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느냐고 묻습니다. 그래서 엘리후는 “사실은 하나님이 말씀을 하시고 또 하신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할 뿐입니다”(14절)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자신의 영적 둔감성에 있는데 하나님의 부재를 탓하고 그분의 침묵을 불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다스리십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그분이 말씀하시는 통로입니다. 특히, 우리가 당하는 고난과 불행은 그분의 임재를 보고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입니다. 고난 중에 만나는 하나님의 임재는 고난의 현실을 축복의 사건으로 바꾸어 줍니다. 

4 thoughts on “욥기 33장: 말씀하시는 하나님

  1.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친구에게 충고를 하는것보다 위로와 용기와 덕담으로 대화하는
    지혜를 원합니다.같이 안타가워하고 같이 울며 주님을 기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코로나로 힘들어 하는것도 잘못을 고쳐주시는 주님의 섭리임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모든 시련과 고난의 끝은 축복의 시작임을 잊지않고 어려움을 감내하는 결단을 간구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어두운 터넬끝에서 빛으로 기다리시는 주님을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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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엘리후가 하는 말 가운데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사람이 무덤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 주신다는 부분이 눈에 띕니다. 24절에 표현하기를,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무덤에 가지 않도록 살려주어라. 내가 그 몸값 (대속물)을 벌써 받았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연상하게 됩니다. 욥에게 지혜를 가르쳐 주겠다며 엘리후가 하는 말 속에 진실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삶의 경험이 쌓여서 얻은 지혜라기 보다 영감과 통찰로 얻은 지혜입니다. 사람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여러 방법 안에 고통을 통과하는 것도 들어 있다고 말합니다. 어려운 시간을 살면서도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깨우침과 인도하심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도 갖게 합니다. 우리에겐 우리의 몸값이 되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분의 생명이 내 안에 있기에 죽음의 그림자를 이겨낼 힘 또한 얻습니다. 누구에게나 고통의 시간이 되는 2020년을 살면서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의 능력을 믿고 의지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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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사야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손이 짧아서 사람을 구원치 못하는 것이 아니며, 귀가 둔하여 우리의 고통과 부르짖음을 못 들으심도 아니며, 바로 우리의 죄악이 그것을 가리웠다라는 것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동일하나 여러가지로 표현되어집니다. 때로는 징벌과 고통을 통해서, 올바른 길로 가게 하고, 때로는 절대적인 이해와 포용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마치 공기와도 같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공기를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숨을 쉬고 있는 이유는 우리 주위에 있는 공기로 인해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존재가 마치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볼수도, 만질수도 없지만, 때로는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지도 못하지만,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분 때문에 우리가 살 수 있음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민감하게 반응하고 기억하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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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엘리후를 통해 말씀 하시는 주님을 묵상합니다, 흔이 우리는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데 조금하다보면 마치 하나님이 침묵으로 일관하지않나 의심하게 되지만 내 자신의 우둔함에서 오는 것임을 깨달고 진지한 대화를 통하여 주님의 뜻을 옳게 이해하기를 기원합니다.
    욥같이 하나님한테 불평을 하면서도 소통이 이루어 지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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