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2장: 나이 드는 것에 대해

해설:

세 친구와 욥의 논쟁은 결국 접점 없이 끝이 납니다(1절). 이 지점에서 저자는 갑작스럽게 엘리후라는 젊은이를 등장시킵니다. 그는 네 사람의 대화를 침묵 가운데 듣고 있었는데, 젊은이로서 어른들의 대화에 낄 수가 없어서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세 친구가 욥을 설득하는 일을 포기하자 엘리후는 마침내 입을 열어 참고 있던 말을 불을 토하듯 쏟아 놓습니다(2-5절).

그는 먼저 세 친구에게 말합니다. 그들이 자신보다 인생 경험이 더 많으니 자신보다 더 지혜로울 것이라고 생각하여 침묵했는데(6-7절), 생각해 보니 지혜는 인생 경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있는 영 곧 전능하신 분의 입김”(8절)에서 오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왔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이 인생 경험에서 얻은 지혜로 욥을 설득하는 일에 실패했으니, 자신이 말해 보겠다고 합니다(9-14절).

그런 다음 엘리후는 욥에게 말합니다. 세 친구가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망연히 서 있으니, 이제 자신이 말하겠다는 겁니다(15-17절). 그는 그동안 네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얼마나 답답했는지, 하고 싶은 말을 참느라고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토로합니다(18-20절). 그는 친구들과 욥 사이에서 어느 편을 들 생각이 없으며, 듣기 좋은 말로 아첨할 생각도 없다고 밝힙니다(21-22절).

묵상:

오래 전에 은퇴한 목회자들의 모임에 초청되어 갔다가 ‘은퇴 목사’라고 할 것인가 ‘원로 목사’라고 할 것인가를 두고 논쟁을 벌이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참석자의 다수는 ‘은퇴 목사’보다 ‘원로 목사’가 좋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존경받는 한 목사님이 일어나 좌중을 침묵시키는 발언을 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노인이라고 해서 다 원로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나온 삶을 통해 인격과 신앙과 지혜가 무르익은 사람만이 원로라고 불릴 자격이 있습니다. 또한 노인이 스스로를 원로라고 부르는 것은 꼴불견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은퇴 목사라고 부르는 것이 맞습니다.” 

엘리후가 지혜에 대해 하는 말을 읽으면서 그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나이가 든다고 모두 지혜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살아 오면서 꾸준히 성찰하며 자신을 갈고 닦은 사람만이 지혜자로 존경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인생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는 진리의 조각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지혜를 나눌 때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말해야 합니다. 혹시나 어린 사람들과 젊은 사람들의 말에서 새겨 들을 것이 없는지 겸손하게 귀 기우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지혜자인 척 말하고 행동하면 ‘꼰대’가 되고 ‘꼴통’이 되어 버립니다. 그 점에서 세 친구는 실패한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 나이 드는 것이 두렵습니다. 겸손한 지혜자로 익어가는 모습이 보기 드문 일이기 때문입니다.     

4 thoughts on “욥기 32장: 나이 드는 것에 대해

  1.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잠언 말씀을 상기 시키는 구절로 사람에게 슬기를 주는 것은 하나님의 입김인 성령임을 묵상해 봅니다, 하나님의 뜻을 통찰하는 지혜를 구하며 매일 주시는 말씀이 내 삶의 변화를 어느정도 이루어지고 있나 자책해 봅니다.
    오늘 하루 주님의 지혜를 구하는 신실 한 하루가 되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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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옹고집을 부리는 꼴통이 되지않는 지혜를 원합니다. 지난날의 삶과 경험이 불완전
    한것을 깨닫고 젊은이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경청하며 힘들어하는 자에게 설득과 그들의
    호소에 반증하려고 하지말고 소망과 진정한 위로를 주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방황하는 자들의 호소를 끝까지 들어주고 함께 안타가워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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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존경과 성숙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인 지표가 없습니다. 그러나 각 사람들의 마음에 영감을 주고 신뢰라는 바탕으로, 존경과 성숙은 성장하게 되어집니다. 엘리후가 욥의 세 친구에게 한 말이 도전이 됩니다. 지혜는 나이에 비례하는 것이 아님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더 겸손하고 신뢰를 주는 사람에게 나타남을 기억합니다. 스스로 지혜자가 되어서, 사람들에게 말을 하는 순간, “꼰대”가 되어짐도 기억합니다. 꼰대와 꼰대가 아닌 어른의 차이점을 어떤 저자는 이렇게 구분했습니다. “상대방이 요청하지 않는 조언은 하지 않습니다. 요청하지 않는 조언을 계속하는 사람을 우리는 꼰대라고 부릅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혹은 아는 것이 많아도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계속 조언을 하고 간섭을 한다면, 지혜자가 아닌 꼰대로 전략해버릴 수 있습니다.

    조금 논지에서 벗어나지만, 내 자녀와 가족들에게 꼰대가 되지 않아야겠습니다. 가깝고 편할 수록, 자신의 좋은 경험들과 지혜들을 나누어주려는 마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청하지 않았는데, 계속 이야기하면, 아무리 지혜로운 이야기이지만 잔소리가 될 수 있고, 하나의 꼰대가 될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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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묵상의 제목에서 바람 소리가 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날들에 대해 욥기처럼 깊은 공감과 우수를 주는 책도 드뭅니다. 시편을 읽으면서 사람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찬양한 귀절들로 인해 깊은 감동을 느낀 적이 많지만 욥기를 묵상하면서 받는 감동은 또 다릅니다. 인간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구할 것인가, 인생은 무엇인가…사춘기에 받아든 문제를 들고 평생 씨름하다 오늘까지 왔습니다. 나이가 드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권에서는 “나이값”이 있습니다. 엘리후가 7절에서 “나이가 많은 어른이라면 지혜로운 말을 할 수 있다”고 한 까닭이 나이에 값이 붙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거저, 그냥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만큼 지혜와 경륜이 쌓인다고 인정을 해 준 때문입니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다 압니다. 나이를 헛 먹는 사람도 있는데 공교롭게도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르기 일쑤입니다. 자신에 대해서는 성찰하고, 남에 대해서는 배려를 해야 세월과 함께 인격도 익어 가는데 어느 하나를 안 하는 사람은 다른 하나도 하지 않기 쉽습니다. 두 가지가 자전거 바퀴처럼 잘 굴러간다면 나이값을 하며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엘리후가 아직 자기의 본론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들어온 것이 성에 차지 않아 답답하다며 입을 열었습니다. 윗사람이지만 욥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습니다. 가보지 않은 길을 안내하겠다고 나선 셈입니다. 엘리후가 말을 시작하자 욥이 나직이 한숨을 쉬었을 것 같습니다. 그의 가슴에 또 한 차례 찬 바람이 불고 지나갈 것 같습니다. 엘에이는 요즘 건조한 샌타애나 겨울 바람이 산과 도시를 휩쓸고 다닙니다. The “winter of our discontent” is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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