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0장: 누구의 인정을 바랄 것인가?

해설:

앞(29장)에서 욥은 과거에 자신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존경 받고 살았는지를 회상했습니다. 그 때 그는 가장 높은 사람들에게조차 존경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가장 비천한 사람들에게조차 조롱 받고 있습니다(1-8절). 그들은 불행의 늪에 빠진 욥에게 모욕과 폭행을 가합니다(9-15절). 욥에게 아무런 힘이 없음을 보고 그들은 그동안 사람들로부터 당해 온 모욕과 천대를 욥에게 쏟아 붓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욥의 고난은 더욱 심해집니다(16-19절).

20절에서 욥은 하나님께 말머리를 돌립니다. 그는 부르짖어도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원망합니다(20-21절). 하나님께서 자신을 궁지로 몰아 넣고 죽음의 집으로 밀어 넣고 있다고 느낍니다(22-23절). 그는, 하나님께서 미천한 자신을 왜 이렇게도 괴롭게 하시는지 여쭙니다(24절). 그는 조상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대로 고난 받는 사람을 보면 함께 울고, 궁핍한 사람을 보면 함께 아파 했습니다(25절).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고 배웠는데, 바라던 복은 커녕 불행이 그의 몫이 되었습니다(26-28절). 그는 이제 “이리의 형제가 되고 타조의 친구”(29절)이 되어 버렸습니다. 

묵상:

사람들로부터 받는 ‘인정’과 ‘존경’이라는 것처럼 믿을 수 없는 것이 또 있을까요? 백 가지를 잘 해도 한 가지에 마음이 상하면 냉정하게 돌아서 버리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어제까지 하늘처럼 높이 칭찬하던 사람이 오늘 싸늘하게 돌아서서 최악의 비난을 쏟아 놓습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 모두에게는 뭔가 이상적인 것을 보고 싶어하는 갈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그 갈망을 채워주는 것처럼 보이면 마음 전체를 그 사람에게 내어 줍니다. 그러다가 그 사람에게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 배신감을 느끼고 분노하게 됩니다. 기대감이 높을수록 배신감도 강합니다.

유명인들(정치인, 연예인 등)이 공황장애나 우울증에 취약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인기(대중의 인정과 존경)에 일희일비 하다가 마음이 깨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인정과 존경을 갈망하며 살다 보면 평생 다른 사람에게 목매어 끌려 다니는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우리가 바라 볼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매일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에 온 마음을 둔다면, 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도 정도 이상으로 높이지 않을 것이고, 아무리 비천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높이든 낮추든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4 thoughts on “욥기 30장: 누구의 인정을 바랄 것인가?

  1. 욥의 아픔과 절망이 너무 클 것 같습니다. 존경 받았던 인생이 휴지 조각도 못한 인생으로 추락하면서, 고통과 아픔 속에서 사는 자신의 모습이 한심했을 듯합니다. 육적인 고통도 만만치 않았겠지만, 그의 마음과 상처들이 자신을 예전 모습과 스스로 비교하며 자해를 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된 정확한 이유라도 아는 고통이면 다행이겠지만, 이유도 모른 채 그 아픔과 고통을 감당하려니, 얼마나 절망속에 있었을까요?

    마음과 생각, 그리고 몸과 영혼의 균형은 중요합니다. 그 중에 한 영역이라도 균형을 잃어버리면, 나머지 영역들도 쉽게 무너집니다. 이 세상은 몸이 아프신 분들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 아프고, 생각이 아프고, 영혼이 아픈 사람들은 더 더욱 많이 있습니다. 동시에, 팬더믹이라는 시기를 지나면서, 우리 모두는 간접적인 아픈 장애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할 수 있는 것들이 하고 싶지만 여러모양으로 제한되어 있는 것이지요. 마치 욥과 같이, 정확한 이유는 모르고 있으나, 기다리고 인내할 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아마도 이전의 삶을 회상하며 비교하며, 우리의 마음을 스스로 아프게 하고 있지 않는지 돌이켜 봅니다.

    어떤 장애를 가진 인권강사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장애나 어려운 상황이 삶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장애와 상황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우리를 우울하게도 행복하게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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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세상살이가 녹녹치 않을 때 우리 눈은 먼 산 높은 하늘을 바라보게 됩니다. 훌쩍 이곳을 떠나 나를 모르는 곳, 나만 챙기면 되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세상이 힘든 건 결국 사람들 속에서 사는 것이 힘들게 느껴진다는 뜻입니다. 2020년의 충격은 우리의 심리 깊숙한 곳까지 흔들었습니다. 의지나 선택에서 비롯되는 변화도 변화 그 자체를 거부하는 관성 때문에 다루기가 어려운데 급작스럽게 공포를 동반하고 달려든 변화를 겪어낸다는 것은 실로 전존재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일입니다. 절대자를 찾고 의지할 때가 이 때가 아니면 언제란 말인가 싶습니다. 하나님은 필요 없어 라고 말하던 사람도 올해에는 생각이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욥이 왜 이런 고난이 나를 찾아온 것일까 묻는 것이나, 2020년의 우리가 왜 이런 팬데믹이 온 것일까 묻는 것이나 암담한 심정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코비드-19가 사람이 자초한 위기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습니다. 지구촌이 공동으로 잘못 살아온 결과입니다. 욥은 의지할 데가 없습니다. “주님께 부르짖으나 응답하지 않으시고, 주 앞에 섰으나 주께선 바라보기만 (20절)” 하신다고 흐느낍니다. 구세주로 오시는 예수님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하나님 앞에 우리와 함께 서 주시려 예수님이 오십니다. 영혼이 허물어지고 고난의 날들만 기다리는 (16절) 것 같은 우리 사이로 예수님이 오십니다. 할렐루야! 주님이 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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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비천한 사람으로부터 경멸을 받으며 한탄하는 욥기를 읽으며 가장 높으신 그리스도께서 로마
    군인들에게 채찍을 받으시며 비천한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으시며 십자가를 아무 불평없이 감당
    하시는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말로만 감사하지말로 이웃과함께 삶으로 감사
    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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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욥이 기술하는 어린 것들, 쓸모가 없는 자, 가난하고 굼 줄인자 사람축에 끼지 못 하는 자 들에 대한 서술에서 욥의 한계를 배웁니다, 즉 사람은 아무리 많이 배우고 수련을 해도 거기서 거기로 밖에 즉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미물같은 존재임을 배웁니다.
    끝내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음을 깨달고 하나님과 소통하며 의지하는 지혜로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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