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3장: 두렵지만 경이로운!

해설:

욥은 엘리바스의 독설에 대해 응대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욥은 하늘을 향하여 답답한 마음을 토로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엘리바스를 통해 자신을 짓누르신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그분이 무거운 손으로 여전히 나를 억누르시는구나!”(2절)라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직접 뵙고 말씀 드리기를 갈망합니다(3-4절). 적어도 하나님은 친구들처럼 자신을 억울하게 비난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5-6절). 그분은 자신의 말을 다 들어 주시고는 죄가 없다고 선언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7절).

하지만 그 어디를 찾아 보아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습니다(8-9절). 엘리바스는 “하나님이 너무 높이 계셔서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르신다”고 욥이 오해하고 있다고 했지만(22:13-14), 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니 자신의 모든 행동을 알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10절). 그렇다면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흠 없이 살아 왔다는 것을 하나님이 알고 계실 것입니다(11-12절). 하지만 욥은 자신이 어떻게 살든 상관 없이 하나님은 높고 큰 계획을 세우시고 그 계획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것이 그를 두렵게 합니다(13-17절).

묵상:

8절과 9절에서 욥은 동서남북 어느 곳을 가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다고 답답함을 토로합니다. 이 구절은 시편 139편의 한 구절을 생각나게 합니다. 거기서 다윗은 동서남북 어디를 가도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가 없다고 고백합니다(7-12절). 하나님의 임재 방식은 동일한데, 그것에 대한 경험은 이렇게 다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에 따라 그분의 임재가 천하에 가득해 보이기도 하고 어느 곳에도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나중에 보겠지만, 지금 그는 하나님의 부재를 느끼고 있지만 그분은 내내 그와 함께 계셨습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얼마나 흠 없이 살았는지를 아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에게는 이런 재앙을 벌로 받을만한 잘못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받는 재앙이 하나님의 거대한 계획과 뜻으로 인한 것이라면 자신으로서는 어찌 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획이 자신의 선악에 의해 좌우될 정도로 작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에게 자신은 많고 많은 피조물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 만물을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그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높고 깊은 계획으로 역사를 다스리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선악과는 전혀 상관 없이 재앙을 만날 수도 있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도 있습니다. 그 생각이 욥을 두려워 떨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한 개인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 보시고 그에 대해 상과 벌을 주기도 하시지만,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서 온 인류와 온 우주를 향한 거대한 계획 안에서 일을 행하십니다. 그렇기에 때로는 나의 죄와는 상관 없이 고난을 겪어야 할 경우도 있고, 때로는 나의 의와는 상관 없는 축복을 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욥이 고백한 대로, 내가 하나님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은 우리를 두렵게 만듭니다. 하지만 우리가 완전히 통제하거나 조종할 수 있다면 그것은 참된 신이 아니라 우상일 따름입니다. 하나님이 전지전능한 창조주이시라면 당연히 그분은 크고 높은 계획을 따라 인류와 우주를 통치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참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두렵고도 경이로운 일입니다.    

4 thoughts on “욥기 23장: 두렵지만 경이로운!

  1.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항상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때로는 침묵하시며 어떻게
    주워진 어려움에서 대응하는가를 뚜려지게 보시는 주님을 생각하며 견더내기를 기도
    합니다, 좋으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마음속에 깊게 새겨 감사히 기다리는 인내심을
    간구합니다. 오로지 십자가의 은혜로만 의인이 태어나는 기쁜 소식을 이웃과 함께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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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참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두렵고도 경이로운 일이라는 목사님의 해설을 아멘! 하며 받습니다. 사람의 의지 밖에 계신 하나님이시기에 그분을 생각할 때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친숙한 곳을 떠나 알 수 없는 이방의 땅으로 아브라함이 떠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믿음이 아닌 다른 것일 수 없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생각하며 믿음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나를 시험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되겠지 (10절)”라는 소망까지 담아 고백합니다. test 를 보는 것, 시험을 치루는 것이라는 개념이 생겼습니다. 이 어려움을 거친 뒤에 있을 좋은 일을 상상하는 여유가 조금 생긴 듯 합니다. 여섯살 손녀 앞니가 빠졌습니다. 제법 흔들거리던 이를 제 손으로 흔들다 어느 순간 쏙 빠진겁니다. 얼마 있지 않아 새 이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옆의 이도 뒤따라 빠졌습니다. 그 자리에도 새싹같이 새 이가 자라고 있습니다. 새 이가 아직 보이지 않을 때에도 “베이비 투스”가 빠진 자리에 “리얼 투스”가 나온다는 걸 믿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베이비가 아니라는 사실을 세상에 증명이라도 한 듯 좋아합니다. 언니가 하는대로 뭐든지 따라하던 둘째는 심각한 자기한계를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이빨이 빠지는 일은 자기가 따라하고 싶다고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욥은 성장하고 있습니다. 육신이 쇠하고 무덤 앞까지 와 있는 것 같은 두려움 속에서도 욥의 영혼은 소망의 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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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때로는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을 내가 만든 경험과 이성의 박스에 가다둘 때가 있습니다. 그 박스 안의 하나님만이 내가 알고 있는 전부의 하나님이라는 착각과 함께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마치 알라딘 램프의 지니처럼, 나의 필요 혹은 나의 이성과 경험안에서 만나고 이해하는 하나님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온 우주를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내가 믿고, 의지한다는 것은 상상이상의 은혜이며 놀라운 여정입니다.

    한 부족을 선교하다가 순교하신 짐엘리엇 선교사님의 편지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내가 삶에서 원하는 단 한 가지는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 것입니다.” 이 고백이 오늘 하루도 겸손히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섬기며 신뢰하며 하나님을 더 알아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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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동서남북 어디에서도 찾아 뵐수없는 막막한 심정이지만 그 동안 방황하지 않고 오직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며 그 분의 길로 성실하게 살아온 욥의 심정을 통해 하나님의 광대함과 원대하심을 새겨 봅니다, 때론 아주 작은 것 까지도 챙기시지만 따론 한없이 무언으로 대하시는 하나님 앞에 그저 머리를 숙일 뿐 입니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 모든 것이 있음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으로 오늘 하루도 평화로운 하루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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