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0장: 죄의 속성

해설:

앞(11장)에서 죄가 없다면 그런 고난을 당할 이유가 없다면서 욥을 몰아 세웠던 소발이 두 번째로 입을 엽니다. 그는 욥이 하는 말이 모두 자신에게 반박하는 말이라고 받아들입니다(2절). 그는 “깨닫게 하는 영이 내게 대답할 말을 일러 주었다”(3절)면서 악한 자가 당하게 되어 있는 불행한 운명에 대해 길게 말합니다(4-29절). 그는 악한 자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욥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11장)에서는 “죄가 없다면 그런 고난을 당할 리가 없다”며 완곡하게 말했던 소발이 이제는 “네가 당하고 있는 고난은 네가 행한 죄악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발에 의하면, 악한 자의 번영은 한 순간의 일입니다(4-11절). 한 때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해도 꿈처럼, 밤에 본 환상처럼 사라져 버릴 것이며, 결국 패가망신에 이르게 됩니다. 처음부터 악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악의 맛 만을 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한 번 맛 보고 나면 더 맛보고 싶어집니다. “그가 혀로 악을 맛보니, 맛이 좋았다. 그래서 그는 악을 혀 밑에 넣고, 그 달콤한 맛을 즐겼다”(12-13절)는 말은 죄악에 우리가 반응하는 상태를 잘 묘사해 놓았습니다. 그 악은 뱃속으로 들어가 독이 되고 온 몸을 중독 시킵니다. 자신이 먹은 그 악이 그를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14-16절). 그렇게 되면 그동안 누려 왔던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 합니다(17-19절). 악에게 중독 되고 나면 탐욕에 얽매이게 되고, 그 탐욕의 끝에서 재앙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20-22절).

그러므로 악한 사람이 번영한다고 시샘할 일이 아닙니다. 그가 하고 싶은대로 그냥 두어도 하나님께서 그를 징벌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23절).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하늘이 그의 죄악을 밝히 드러내며, 땅이 그를 고발할 것”(27절)입니다. 하나님이 진노 하시는 날에 그는 홍수 만난 사람처럼 될 것입니다(28절). 바로 이것이 악한 사람이 하나님께 받을 몫입니다.

묵상:

소발은 욥의 말에 의해 모욕감을 느낀 나머지 악담을 쏟아 놓습니다. 그를 악인으로 규정하고 그가 당하고 있는 불행이 그의 악행 때문이라고 고발합니다. 그는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믿음의 공식을 되풀이하면서 욥을 고발하고 있지만, 그의 말 가운데에는 번득이는 통찰도 담겨 있습니다. 죄의 속성과 죄에 대한 우리 마음의 반응 방식이 그것입니다. 

‘죄 관리'(sin management)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징벌 받지 않을만큼 죄의 수위를 조절하려는 노력을 가리킵니다. 죄를 전혀 짓지 않고 살 수는 없고, 그렇다고 해서 죄로 인해 하나님께 징벌 받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진노를 사지 않을만큼만 죄를 즐기며 살 길을 찾는 것입니다. “그가 혀로 악을 맛보니, 맛이 좋았다. 그래서 그는 악을 혀 밑에 넣고, 그 달콤한 맛을 즐겼다”(12-13절)는 소발의 말은 그러한 인간의 음흉한 속셈을 드러냅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거니…”라고 생각하면서 탐한 죄와 악이 바이러스처럼 부지불식 간에 그 사람 전체를 마비시키는 것입니다.

입에 단 것이 건강에는 독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에 만족을 주는 죄는 우리의 인생에는 독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뱃속으로 내려가서는 쓴맛으로 변해 버렸다. 그것이 그의 몸 속에서 독사의 독이 되어 버렸다”(14절)는 소발의 말은 죄의 속성을 잘 묘사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해 심판하기 이전에 우리의 인생은 우리 스스로 택한 죄로 인해 중독되고 그로 인해 불행을 겪게 되어 있습니다. 

인생에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하고 선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타락한 우리의 마음에는 쓰게 느껴질지 몰라도 우리 인생에는 영약이 됩니다. 

7 thoughts on “욥기 20장: 죄의 속성

  1. 악의 속성에 대한 소발의 말을 통해 인간의 뿌리를 드려다 보는 듯 합니다, 권선징악으로 세상사를 판단하려는 소발에 대한 거부감도 동시에 일어나는 감정을 마지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근본을 믿고 끝까지 소밣의 맗을 듣는 욥의 인내에 동정심이 더 가는 심정입니다.
    오늘하루도 옳지 못 한 생각과 행동에서 지켜주실 것을 간구하며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감사하는 하루로 은총내려 주실 것을 구하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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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늘이 높은줄도 모르고 끝없는 교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늦지만 그래도 주님의 온유와 겸손
    하심을 깨닫게 하는 기회에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부터라도 주님의 눈으로 저희들이 세상을
    보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고 순종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함께 굶주리고 핍박받는자에게 평안과 진정한 위로를 주는 친구가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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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소발의 말 가운데에는 엄연히 맞는 말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논리도 이해가 되어집니다. 만약 제가 이 대화속에 들어간다면, 저는 오히려 욥의 세 친구 입장에서 이야기 할 수 도 있겠습니다. 오늘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남을 함부로 판단을 하지 않아야겠다.” 어려서부터 익히 들어온 말이고 다짐했던 문장이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을 비추어보면서 새롭게 생각되어집니다. 나의 논리와 생각, 그리고 경험이라는 준거틀을 가지고 사람들을 판단하다보면 (욥의 세친구), 당연히 내가 모르는 하나님의 일하심과 계획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욥의 상황)

    사람들을 정죄하고, 비판하고, 불평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쉽고, 간단해 보이지만, 이런 것들이 오히려 독이 되어서, 마음과 영혼을 빼앗기는 것과 같음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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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소발이 하는 말 중에 “악인은 항상 만족할 줄 모르고, 욕심이 가득해서 아무 것도 놓지 않으려 하네 (20절)” 말씀을 놓고 묵상을 합니다. 안분지족의 수동적(으로 보이는) 지혜가 바울 사도가 로마서에서 말하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로마서 12:3) 의 지혜와 어떻게 만나는지, 혹은 어디에서 서로 갈라지는지 좀 더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감사할 일이 많은 중에도 오히려 감사를 잊고, 불만족과 자기 연민의 쳇바퀴를 돌리는 나의 모습을 회개합니다. 마음을 낮추고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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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매일 아침 마치 해가 돋듯이 신실하게 사귐의 소리로 하루를 열어주시는 목사님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사귐의 소리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도록 목사님께 하나님께서 건강과 장수를 주시기 기도드립니다.
    아울러 댓글로 은혜를 더해 주시는 형제자매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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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소발 안에 제 자신이 보이는군요. 영성과 죄에 관한 책을 접하면서 신학이론 하나 둘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걸 마음에 안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적용시켜 분석하여 되새김질 합니다. 어느새 이론이 법칙이 되고. 떠벌릴 기회를 찾습니다. 그런 걸 관중들에게 토로할 용기는 없고. 가장 편한 가족이나 친한 친구가 상심할 때 사용합니다. 정의감에 큰 소리로 얘기할 때도 있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없고. 오직 저 자신을 위한 말일뿐이죠. 그런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남을 향한 쓴말은 달콤합니다. 나도 모르게 그 달콤함에 익숙해 지는 거 아닌지 반성합니다. 제 마음에 인과와 정죄가 아니라 긍휼한 마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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