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8장: 악의가 마음을 사로잡을 때

해설:

수아 사람 빌닷이 두 번째로 입을 열어 말합니다. 처음 입을 열었을 때 그는,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 온 지혜에 근거하여 욥이 그런 고난을 당한 것은 숨겨진 죄 때문이니 그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구해 주실 것이라고 충고했습니다(8장). 이번에 그는, 욥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에게 충고하는 친구들을 “짐승처럼 여기며”(3절) 어리석은 사람 취급하는 것에 분개하여 독한 말을 쏟아 놓습니다. 

5절부터 21절까지 빌닷은 “악한 사람”이 당하게 되는 운명에 대해 여러 가지 비유를 사용하여 묘사합니다. 그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 낭패를 볼 것이고(5-10절), 재앙을 만나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힐 것입니다(11-14절). 그가 가진 것은 모두 약탈 당할 것이고(15-16절),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잊혀질 것입니다(17-18절). 그리고 마침내 그의 대를 이을 자손이 영원히 끊어지고 말 것입니다(19절). 이 모든 일을 전해 듣고 그를 알았던 사람들은 겁에 질릴 것입니다(20절). 빌닷은 “악한 자의 집안은 반드시 이런 일을 당하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사는 곳이 이렇게 되고 말 것이다”(21절)라고 말을 끝냅니다. 

악한 사람이 당할 운명에 대한 빌닷의 묘사는 욥이 당한 운명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는 욥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욥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이 욥의 마음에 얼마나 아프게 와 닿았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묵상:

빌닷은 욥의 고집스러움으로 인해 답답했을 것입니다. 친구들의 애정 어린 조언을 무시할 뿐 아니라 그들을 어리석은 사람으로 혹은 악의를 가진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으로 인해 마음 상했을 것입니다. 그런 감정이 그로 하여금 독한 말을 쏟아내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말에는 욥에 대한 애정도, 배려도 없습니다. 독설과 악담과 저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는 “악한 사람들”이 겪게 되어 있는 운명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꾸몄지만, 실은 욥의 불행이 그의 악행으로 인해 얻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이렇게 잔인 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비틀어지면 평소에는 상상도 하지 않았던 악의가 솟아 나오고 그로 인해 눈빛과 혀를 통해 독을 품어냅니다. 그런 일은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더 자주 일어납니다. 그래서 때로 말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꽂히고 얼음같은 눈빛 하나가 사랑하는 사람의 뇌리에 각인됩니다. 그래서 다윗은 “주님, 내 입술 언저리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 앞에는 문지기를 세워 주십시오.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지지 않게 해주십시오.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어울려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도와 주십시오”(시 141:3-4)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5 thoughts on “욥기 18장: 악의가 마음을 사로잡을 때

  1. 다윗도 스스로를 자신할 수 없어 자신의 입과 마음을 지켜달라고 기도했듯이, 저 또한 오늘 하루 제 마음과 제 입술에 파수꾼이 필요함을 겸손히 받아들이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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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주님께향한 절대적인 믿음을 원합니다. 더 심하게 고통을 안겨주는 친구에게 주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대응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95% 이상 효과가 있다는 Vaccines 의 소식에 감사를
    드립니다. 만일 Vacinne 이 예방을 하지못할지라도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감사하는 결단을
    허락해주십시오. 이웃과 함께 힘든 상황 속에서도 진정으로 주님께 감사하는 주간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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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쯤되면 친구들이 욥을 위로한다고 “심방”한 것이 오히려 오지 않은 것만 못한 모양이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욥과 함께 먹고 자면서 이런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인지, 욥의 집(움막) 으로 계속 방문하면서 나누는 대화인지 추측하기 어렵지만 비대면의 코로나 시대에서는 부럽기까지 한 여건입니다. 빌닷은 처음보다 수위를 높여 욥을 꾸짖습니다. 욥이 받는 형벌에 죄를 맞추어 몰아가고 있습니다. 악인의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하나님이 욥을 통해 보여주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욥이 지금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답변인데 하나님은 침묵하시고, 듣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말소리는 계속해서 귀를 때립니다. 폭풍 속에서 마침내 하나님이 말씀을 시작하실 때까지는 아직도 많이 기다려야 합니다. 빌닷의 말은 친구로서는 매섭고 잔인하지만 우리가 보통 갖고 있는 생각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노숙자를 볼 때 빌닷이나 다른 친구들이 하는 말과 비슷한 말을 하고 얼추 같은 생각을 갖기도 합니다. 지금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은 자기 손으로 만든 결과라고 치부합니다. “잘못 살았으니까 저렇게 됐지” 정도로 간단하게 정리합니다. 한 때 한국에서 엄마들이 어린 자녀에게 공부 잘해야 한다고 닥달할 때 쓰는 말이 “커서 반지하에 살래, 고층 아파트에 살래?” 였습니다. 가난은 개인의 책임이요, 나아가 죄의 결과라는 공식을 심어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온통 경제 위주로 돌아가고 사람의 가치는 점점 바닥으로 떨어지는 시대에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애쓴 욥이라는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완전히 망해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사는 이야기를 읽으며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기다리며 살 것인지 다시 또 묵상합니다. “나”라는 집을 밤마다 허물고 아침마다 새로 짓기를 원합니다. 옛 생각, 조상의 가르침, 세상의 지혜, 시대의 풍조…다 허물고 아침마다 새 집을 짓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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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빌닷의 생각과 신학적 사고는 아주 협소합니다.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에 대해서 단순한 한 가지의 논리로만 설명합니다. 안수과정 인터뷰 중에 받은 질문이 생각납니다. “사람들이 고통받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고통과 아픔의 모든 것이 단순히 죄로 인한 결과라고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인간의 죄들 혹은 옳지 못한 결정으로 받는 고통과 아픔도 있겠지만 (예를 들면, 마약 혹은 옳지 못한 행동들), 동시에 정확한 이유를 모르나 고통과 아픔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암이나 코로나 바이러스).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은, 고통 받는 이유를 찾으면서 판단과 악담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아프고 힘들어하는 자와 함께하는 사랑과 은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이유도 모르는 고통 혹은 억울한 상황들이 우리 삶에 펼쳐집니다. 우리는 ‘이유’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 상황과 내 반응 가운데 있는 선택의 공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내 삶이 편협한 사고와 판단이 아닌, 사랑과 은혜로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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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마음을 같이 할 수있는 친구가 그리워지는 시기입니다, 번지르르한 말 속에 질시와 저주가 숨어있는 빌닷 같은 친구들이 이 세상에는 더 많은 현실을 마주합니다, 나 스스로 그런 악한 마음이 들지 않게 지켜주실것을 주님께 기도합니다.
    겉으로는 선하게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마음 속에 숨어있는 불결 한 생각이 잉태되지 않도록 내 마음을 지켜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허튼 소리가 없는 하루로 은총내려 주십시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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