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7장: 죽은 자들의 땅으로 내려갈 때에

해설:

하늘에도, 땅에도 자신을 변호해 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로 인해 욥은 깊은 절망을 느낍니다. 무덤으로 내려 가는 것 밖에는 다른 길이 없어 보입니다. 친구라는 사람들은 충고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을 조롱합니다(1-2절). 욥은 주님을 향해 호소합니다. 진실을 아시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3-4절). 사람들은 그에게 숨겨진 죄가 있기에 그런 불행을 당하는 것이라면서 그를 정죄하고 모욕합니다. 그로 인해 그는 마음에 더욱 심한 고통을 겪습니다(5-9절).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진실을 알지 못하고 있음을, 욥은 압니다(10절).

욥은 자신에게 아무런 희망도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를 에워싸고 있는 어둠은 결코 가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인생에는 더 이상 아침이 밝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유일한 희망은 죽은 자들의 세계로 내려가 육신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겪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 외에는 다른 희망이 없습니다. 유일한 희망이 무덤으로 내려가는 것인데, 무덤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는 “내가 죽은 자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갈 때에, 희망이 나와 함께 내려가지 못할 것이다”(16절)라고 탄식합니다. 

묵상:

오늘도, 살아 있을 아무런 희망이 없어서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 절망 가운데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서 절대 절망의 자리인 무덤을 택해야 하는 마음이 어떨지, 그런 자리에 서 보지 않은 사람은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욥은 비록 스스로 목숨을 취하지는 않았지만 죽는 것 외에는 다른 희망이 없다고 느낍니다. 절대 절망의 자리인 무덤이 유일한 소망이라니! 혹시 우리 주변에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이 없는지 긍휼한 마음으로 돌아 보아야 하겠습니다.

욥이 마지막으로 한 말(16절, “내가 죽은 자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갈 때에, 희망이 나와 함께 내려가지 못할 것이다”)이 마음에 울립니다. 이것이 죽음의 문턱 앞에 선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두려움으로, 어떤 사람은 체념으로 그 문턱을 넘어섭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죽은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죽은 자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갈 때에 희망이 함께 내려갑니다. 믿는 이들에게 무덤은 절대 절망의 땅이 아니라 영원한 소망으로 나아가는 통로입니다. 그렇기에 바울 사도는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고전 15:55)고 묻습니다.  

4 thoughts on “욥기 17장: 죽은 자들의 땅으로 내려갈 때에

  1. 비록 친구들로부터 오해와 조롱을 받더라도 모든것을 정확하게 이해하시는 주님을 기억
    하기를 원합니다. 어두움이 심하여 갈길이 보이지 않더라도 빛이신 주님을 잠잠히
    기다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질병에 찌달리고 죽음의 문턱에 나왔을 때에도 영생의
    주님,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하시는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이웃과 함께 하늘나라의
    소망을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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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코로나 미국내 사망자수가 25만명을 넘었습니다. 10만명이 목숨을 잃었을 때 뉴욕타임스가 부고를 알린 것이 5월 말이었는데 이제는 25만명으로 껑충 뛰었습니다. 백신이 보급되어 전국민의 절반 이상이 맞을 때까지 40만명이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예측을 하기도 합니다. 코비드-19 변종이 생기는 속도도 무시할 수 없고, 또 앞으로 언제라도 다른 바이러스로 인한 위험한 유행병이 일어날 수 있으니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경고하는 목소리들도 많습니다. 위기의 중심에 있을 때, 위기가 지나고 한시름 놓을 때,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 갈 때, 그리고 그 일상에 젖어 위기를 망각할 때… 인생은 이런 싸이클의 연속입니다. 욥은 처음 고난이 닥쳤을 때 의연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부인마저 곁을 떠날 때에도 담담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사탄이 “졌다! 욥은 물질의 축복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구나” 하고 인정했다면 욥의 고통은 거기서 끝났겠지요. 하지만 하나님도, 사탄도 비극이 계속되도록 내버려 둡니다. 육신의 아픔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욥은 병을 고쳐 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무덤에 내려가는 순간은 바짝 다가오는데 자기의 결백을 증명할 수 없는 것을 아파하고 있습니다. 그가 죽으면 사인은 피부병이나 장기손상이 아니라 홧병일 것입니다. 그는 죽음을 희망과의 결별로 정의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특별함”은 희망을 꼭 붙잡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꼭 붙잡고 사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는, 때가 되면 열매를 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이유가 내 삶의 안위라는 작은 테두리를 넘어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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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절망 가운데 소망! 죽음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친숙한(?) 단어입니다. 종종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나의 옛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사는 삶과 함께 육적인 죽음 이후에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있다라는 사실을 새기며 소망을 품기도 합니다. 그러나, 죽음 같은 절망 속에서는, 낙담하며 소망을 찾기 어려울 때도 많습니다. 욥의 17장 고백은 멀리 있는 이야기 혹은 저 멀리 누가 한 고백 같지 않아보입니다. 때로는 내가, 혹은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절망과 낙담으로 죽음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17장 10절의 말씀처럼, 욥은 절망 속에서 한 조각의 지헤조차 친구들중에 못찾았다고 했는데, 이 질문을 거꾸로 나에게 질문 해봅니다. 만약 욥 같은 상황을 가진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한 조각의 지혜를 줄 수 있을까? 혹은 내가 그 상황에 있게 될 때, 어떻게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있을까? 라는 물음을 가지며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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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끝이 안보이는 고통속에 처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비참한 현실에 주님의 절대적인 긍휼을 구합니다, 주님은 인간의 한계를 통찰하시니 불행한 사람들이 Boiling Point 에 도달하기 전에 주님의 자비가 함께 해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어려움이 닥처 주님께 부르짓기 전에 늘 주님과 소통하며 교통하는 믿음으로 이끌어 주시고 죽음 넘어에 있는 구원에 소망을 두며 주님 곁에서 떠나는 일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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