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6장: 하늘의 중보자

해설:

엘리바스의 충고 아닌 충고에 욥이 응답합니다. 그의 말은 욥이 전부터 들어 알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 말들은 그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고 오히려 괴로움을 줄 뿐입니다. 고난을 겪기 전에는 다 맞는 말처럼 들렸는데, 이제는 그 모든 지혜의 말들이 “헛된 소리”(3절)요 “입에 발린 말”(5절)로 들릴 뿐입니다. 욥은, 만일 입장이 바뀌었다면 자신도 그렇게 충고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표적 삼아 공격하셨다고 느낍니다. 자신에게는 그런 징계를 받을 죄가 없는데, 사람들은 자신의 불행을 보고 죄에 대한 징벌을 받았다고 판단합니다. 주님께 버림 받은 처지가 되고 나니 사람들도 그를 함부로 대하며 공격합니다(6-14절). 하나님의 징계와 사람들의 정죄로 인해 욥은 베옷을 걸치고 통곡합니다. 하도 울어서 마치 죽은 사람처럼 되었습니다(15-16절). 그런 상황에서 욥은 “그러나 나는 폭행을 저지른 일이 없으며, 내 기도는 언제나 진실하였다”(17절)고 말합니다.

욥은 지금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버림 받아 고립무원의 상태에 있습니다. 아무도 그를 위해 변호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욥은 땅을 향해 자신이 당한 불행을 잊지 말라고 청합니다(18절). 또한 그는 하늘에 자신의 억울함을 보고 그를 위해 변호해 줄 중재자가 있기를 소망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에 내 증인이 계시고, 높은 곳에 내 변호인이 계신다!”(19절). 그는 계속하여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변호하듯이, 그가 하나님께 내 사정을 아뢴다”(21절)고 말합니다. 그런 중재자가 있다는 사실을 욥은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모두에게 버림 받은 것 같은 상황에 처하여 그는 그런 중재자가 있어 주기를 소망하며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묵상:

하늘의 중재자에 대한 욥의 소망은 그냥 던져 본 바램일 뿐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하나님을 단일체로 보았기 때문에 하늘의 중재자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잔인하게 징계 하신다고 믿었기 때문에 하늘에 또 다른 신적 존재가 있어서 자신을 변호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 본 것입니다. 

욥의 바램이 단순한 바램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드러난 것은 한참 후의 일입니다.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통해 하늘의 중재자가 나타날 것을 예언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예언은 이루어졌습니다.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이셨던”(요 1:1) 하늘의 중재자가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우리 모두의 죄를 짊어지고 죽음을 당하셨고 사흘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자리로 돌아가셔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는 늘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중재의 간구를 하십니다”(히 7:25)라고 했고,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딤전 2:5)라고 했습니다.

욥처럼 세상 모두에게 버림 받은 것 같은 상황에서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영원한 중보자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4 thoughts on “욥기 16장: 하늘의 중보자

  1. 하늘의 중재자 욥의 바램이, 하나님의 메시아에 의한 구원의 계획을 세상에 알리는 예언 되었네요,
    입에발린 위로로 어려움에 처해있는 자에게 고통을 주지않고 같이 안타가워 하며 고통을 같이
    하는 지혜를 원합니다. 땀과 수고로 순종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코로나 사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
    에게 이웃과 더불어 소망을 주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혼란스러운 미국의 정치가 주님안에서
    안정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아멘.

    Like

  2.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찾아가 입에 발린 말로 위로하였던 스테반 사역을 되돌아 봅니다, 물론 교재에 있는 대로 많이많이 들어주고 묵묵히 같이 있어주었지만 요망한 지혜가 머리를 들고 뭔가를 격려해 주던 기억들이 생생합니다.
    미처 하나님의 곁에 예수그리스도가 있어 우리를 중보해 준다는 핵심적인 은혜는 잊고 인간적인 위로로 말미암아 어느정도 도움을 주었는지는 알수없었던 지난 날들을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우편에계신 예수님 만이 우리의 참 중보자이심을 다시한번 깨닭게 해 주심을 묵상하며 오늘 하루도 성령이 함께 해 주실것을 간구함니다.

    Like

  3. 욥의 신학이 놀랍도록 발전했습니다. 예수님을 찾고 있습니다. 자기를 위해 간청해 주는 친구, 증인, 대변인을 상상하고 있습니다. 유다나 이스라엘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득히 먼 과거에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 같은데 욥과 친구들의 대화 속에는 심오하고 깊은 철학과 문학이 담겨 있습니다. 친구들의 의식이 답보 상태인데 반해 욥의 정신세계는 확장하고 있습니다. “오 땅이여, 내 피를 제발 숨기지 말아 다오 (18절)” 에서 형 가인의 손에 죽은 아벨을 봅니다. 아벨의 피가 땅에서 억울하다고 부르짖는 것처럼 자기의 억울함을 땅이라도 기억해달라고 청합니다. 또 자기 손으로 폭력을 행하지 않음으로 사람에게 죄를 짓지 않았고, 항상 진실한 기도를 올림으로 하나님께도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아무도 자기를 위로해주지도, 변호해주지도 않는 상황에서 그의 마음 속에는 구원자의 모습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어느 책에서 문학 작품의 기본 구도는 “인간 대 (v) 인간” “인간 대 자연” “인간 대 자아” 세 가지라는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 욥은 인간 대 신이라는 예외적인 구도 속에 놓여 있습니다. 마주하는 상대가 신이라면 그것은 결단코 이길 수 없는 대결입니다. 욥은 이런 상황에서 만인에게 제사장이요 중보자가 되시는 예수님을 그립니다. 자기가 그리는 구원자가 누구인지 모르면서도 놀랍도록 정확하게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깊고 깊은 어둠을 뚫고 실오라기 같은 빛이 번져오는 느낌입니다.

    Like

  4. 법정 앞에 서게 되면, 변호사가 있고 없는 것은 천지차이 입니다. 나라의 법은 어느 부분으로, 어떤 각도로, 보는가에 따라서 그 피고인의 죄의 유무 혹은 형량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살고, 그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두가지 법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살고 있는 나라에서 현행되어지는 법과 하나님 나라의 의로 세워진 하나님 나라의 법입니다. 윤리적으로나 현행법에 의해서는 죄를 안짓고, 혹은 죄를 숨길수도 있습니다.그러나 하나님나라의 법은 다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숨길 죄가 없으며, 조그만 죄도 무지막지한 심판이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를 대변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심은 은혜이며 감사입니다.

    욥은 한 낱같은 소망으로 던져진 중재자를 찾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대신하여 변호해 줄 변호인을 찾고 있습니다. 그 소망이 이미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미 이 땅에 오셨고, 지금도 중보하시며 중재의 간구를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금도 욥처럼, 그 예수그리스도의 존재를 알지도 못하고, 혹은 믿지 못하고, 죄 안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이 생각이 되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소망으로, 중보자로, 구원자로 오심을 전하는 복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Like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