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5장: 절대 거룩의 하나님

해설:

앞(4-5장)에서 욥이 고난을 당한 것은 필시 그의 숨겨진 죄 때문이라고 했던 엘리바스가 두 번째로 입을 엽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도 않고 회개하지도 않는 욥을 책망합니다(1-4절). 그가 하나님을 향해 독설을 쏟아놓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의 죄라고 말합니다(5-6절). 엘리바스가 보기에 욥은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7-9절). 하지만 지혜는 조상들로부터 전해져 내려 온 가르침에 있습니다(10절).

엘리바스는 하나님께서 욥에게 위로를 베푸시는데도 마다하고, 부드럽게 말씀하시는데도 불평하고 있다고 책망합니다(11-13절). 욥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의 눈에는 천사들도 깨끗하지 않은데 하물며 “죄를 물 마시듯 하는 사람”은 어떠하겠느냐고 묻습니다(14-16절). 이어서 그는 조상들로부터 전해 내려 온 가르침을 전해 줍니다. 그 가르침이란, 하나님을 떠나 죄악을 일삼는 사람들은 결국 불행 가운데서 인생을 마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17-35절). 지금 욥이 고난을 당하고 있는 이유는 그의 죄 때문이니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불행 속에서 죽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묵상:

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라도 그의 말이 백 퍼센트 진리를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그의 말이 모두 틀리는 것은 아닙니다. 엘리바스의 충고는 조상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단순한 믿음의 공식을 복잡한 현실에 들이 대고 있다는 점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하는 말에는 번득이는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하나님의 ‘절대 거룩’에 대한 통찰입니다. “그분의 눈에는 푸른 하늘도 깨끗하게만 보이지는 않는다”(15절)는 말은 인간의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이 얼마나 다른지를 잘 표현해 줍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 없다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 있다 싶은 순간 가장 먼저 자신의 죄성에 압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을 때 “재앙이 나에게 닥치겠구나! 이제 나는 죽게 되었구나”(사 6:5)라고 반응했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섰을 때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눅 5:8)라고 반응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거룩과 우리의 절대 부정을 생각한다면, 십자가 외에는 소망이 없음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설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에 의지함으로써만 가능한 일입니다. 

3 thoughts on “욥기 15장: 절대 거룩의 하나님

  1. 엘리바스의 충고를 읽으면서, 적지 않은 부분에 동감을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잘못된 충고일까? 라는 질문과 함께 다시 읽어보니, 그 안에는 충고만 있을 뿐이지, 공감과 사랑이 없었습니다. 또한 이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만약 엘리바스와 욥이 오랜 친구된 사이지만 서로를 신뢰하는 사이, 즉 서로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믿음을 준 사이였을까? 만약 그렇다면 서로의 대화 가운데에서 더 진실함이 드러나지 않았을까?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엘리바스의 충고는 가시가 박힌 회초리와 같습니다.

    또한 거룩한 하나님에 대한 엘리바스의 말은 논리적이기는 하나, 동시에 놓치 말아야 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심판은 배심원들 같은 동역자들로 판단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만 심판을 받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충고는 필요할 때가 있지만, 동시에 신중하며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충고가 오히려 독이 되어서 심판과 정죄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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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티끌보다 못하고 벌레보다 못하고 도저히 가망이 없는 존재에게 십자가의 은혜를
    허락하신 사랑에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십자가없이는 한순간도 살수없는 인생입니다.
    충고 보다는 주님의 사랑으로 품어주는 지혜를 원합니다. 같이 울고 웃는 믿음이 필요
    합니다. 코로나 사태로 어두움에 허덕이는 이들에게 이웃과 함께 진리의길을 보여주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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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엘리바스는 처음 충고할 때 많은 사람에게 신앙을 가르치고 약한 자들을 도와주던 욥이 재앙이 닥치자 감당하지 못하고 좌절한다고 지적하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오늘 두번째 말할 대는 지혜로운 욥이 헛된 말을 늘어놓는 것은 속에 있는 죄가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에는 악한 자들이 반드시 멸망 당하는 통쾌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음을 상기 시킵니다. 하나님의 판단에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말이지만 욥에게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성실하게 잘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가짜요, 사기꾼 죄인이었구나. 그러니 그런 고통을 받아 마땅하다”는 식의 정죄를 하기에는 욥과의 세월이 길고 두텁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깨끗한 것도, 의로운 것도 없다는 말 속에는 하나님 만이 절대자이시요 궁극적인 진선미라는 최종 결론이 담겨 있습니다. 욥과 친구들의 대화를 읽으며 떠오르는 이미지는 강물에 빠진 욥과 강기슭에서 발을 구르는 친구들의 그림입니다. 그 누구도 욥에게 밧줄을 건네주거나, 서로 몸을 묶고 물에 들어가 그를 구해보려 하지 않고 그저 발만 구르고 있습니다. 너 헤엄칠 줄 알잖아. 왜 깊은 데까지 들어가는 만용을 부렸는데. 움직이지 말고 그냥 있어 봐. 물살에 몸을 맡겨 봐…욥의 고독이 깊어만 갈 뿐 입니다. 때론 망망대해에 혼자 떠 있는 것 같은 인생, 깊은 물살에 떠밀려 가는 것 같은 인생살이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기대어 살기를 원합니다. 수동적으로, 미온적으로 어정쩡하게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필사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고 매달리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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