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4장: 죽음이 끝이 아니라면!

해설:

욥은 계속하여 창조주 하나님께서 왜 자신같이 미미한 인간의 죄에 관심 하시느냐고 여쭙니다(1-3절). 하나님의 영원의 시각에서 볼 때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짧은데, 그 짧은 시간마저도 편히 살지 못하도록 괴롭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4-6절). 식물은 죽은 것 같다가도 다시 살아나지만, 인간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이 납니다. 그러므로 죽음의 문턱을 넘어가기 전에 잠시라도 고통에서 풀려나게 해 달라고, 욥은 간구합니다(7-12절).

이 지점에서 욥은 엉뚱한 제안을 합니다. 주님의 진노가 가실 때까지 자신을 ‘스올'(무덤을 의미하기도 하고, 깊고 어두운 죽음의 구덩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에 감추어 둘 수는 없겠느냐고 여쭙니다(13절). ‘완전한 죽음’이 아니라 ‘부분적인 죽음’의 상태에 두셨다가 하나님의 진노가 모두 풀리고 나면 다시 깨워 달라는 것입니다(14-15절). 그를 다시 깨워 주실 때면 그는 의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설 것이고 주님께서는 그를 보고 기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16-17절).

욥은 자신의 엉뚱한 제안을 하나님이 받아 주실 것이라고 상상하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하나님의 냉정한 심판에 고통 당하다가 ‘완전한 죽음’의 세계로 내려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18-22절).

묵상:

욥은 자신이 정말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산 것이라면 자신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죄를 찾으신다면 죄 없다고 판정될 사람이 없으며, 죄에 대한 마땅한 벌을 받게 된다면 그 벌에서 살아 남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철저한 절망 가운데서 욥은, 하나님께서 그를 죽음 가운데 두셨다가 새롭게 지어 주시면 좋겠다는 상상을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 밖에는 자신에게 희망이 없다 싶습니다. 죽음에도 단계가 있어서, 임시적인 죽음으로 지금까지 지은 죄에 대한 벌을 받고, 하나님의 진노가 모두 가시고 나면 새로운 존재로 다시 지어져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싶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영원한 죽음에 부쳐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 욥은 절망의 깊은 나락에서 엄청난 진리에 눈을 뜨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욥 자신도 그것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진노를 대면한 죄인에게 희망은 오직 죽고 나서 다시 지어지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욥이 어렴풋이 소망했던 그 일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분은 인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그 자신의 죽음을 통해 해결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는 우리의 죄값으로 인해 죽음에 처해진 것입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 내려갔던 그분은 사흘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믿음 안에서 우리 모두는 그분과 함께 새로운 존재로 일으킴을 받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일으키셔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 때에 주님께서 나를 불러 주시면, 내가 대답하겠습니다. 주님께서도 손수 지으신 나를 보시고 기뻐하실 것입니다”(15절)라는 욥의 고백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 모두에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3 thoughts on “욥기 14장: 죽음이 끝이 아니라면!

  1. 욥을 통해 죄의 삯은 사망이지만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죽음을 통과한 후 새로운 하늘과 땅에 소망을 걸게해 주심을 묵상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어떻게 내 자신을 마추어 가야할지 생각해 보며 끝내는 예수님 만이 나의 지팡이가 되어주실 것을 구하게 됩니다.
    주님의 자비와 긍휼에 기대는 하루로 은총 받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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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금까지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니 진실로 피었다가 시드는 꽃같이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많은 허물과 잘못을 십자가의 자루에 넣으시고 봉 하셨는데도 그안에서 자꾸만
    꿈틀거립니다. 항상 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끓고 주님만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주님과함께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고 주님의 인격과 성품을 조금이라도 닮아가는 믿음을
    원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주님의 이름과 부활을 증언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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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성경의 장 표시를 제대로 살피지 않고 욥의 답을 계속 읽는 바람에 어제 아침에 오늘 본문까지 읽고 묵상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고통이 찾아온 이유를 붙잡고 씨름하다 이제 욥은 죽음에 대해 말합니다. 죽어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상상을 소원으로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우리가 하는 생각을 욥도 하고 있습니다. 고통의 자리에서 십자가를 보며 회개하고 주님의 은혜를 기다리며 부활의 소망을 붙잡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욥의 친구들과 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친구들은 생각해보지도 못한 것을 욥은 말하고 있습니다. 고통이 진정 인생 교사인가 봅니다. 안온한 중에는 깨달을 수 없는 것들이 고통 속에 담겨 있습니다. 전세계가 함께 고통 속에 놓여 있는 지금 개인과 사회가 깨닫고 얻은 통찰이 잘 합쳐져 선한 미래를 만들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소원이지만 타인에 대해 냉정하고 내 앞가림 하는 데만 급급했던 나로 돌아가는 것은 결코 바라지 않습니다. 엘리바스와 빌닷, 소발처럼 세상을 보는 것은 노력하지 않아도 나이 먹으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변화를 이해하거나 바라는 마음은 나의 현재의 모습을 정직하게 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가능해 집니다. 인간의 한계, 나의 연약함을 보게 만든 팬데믹의 고통 속에서 주님이 일으켜 세우실 때 겸손한 모습으로 달라져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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