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3장: 죽기를 각오하고

해설:

계속하여 욥은 소발과 두 친구에게 답합니다. 그들이 자신에게 들이대는 믿음의 공식 혹은 지혜를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1-2절). 하지만 그는 지난 몇 개월 동안의 경험을 통해 그 공식이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에 눈 뜨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다 안다고 말하지만, 실은 환자의 증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처방전을 내미는 돌팔이 의사와 다름이 없습니다(3-5절). 그들은 하나님을 변호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하나님의 뜻을 가리고 있는 셈입니다. 그들도 자신과 같은 일을 겪는다면 자신의 심정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기를 갈망합니다(6-13절).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죽는 일이 될지라도 그분 앞에 자신의 사정만은 아뢰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런 불행을 당해야 할 죄가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확신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14-18절).

13장 19절부터 14장 끝까지는 욥의 기도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두 가지를 구합니다. 하나는 자신을 징계하시는 손을 거두어 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두려워 떨지 않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20-21절). 그는 하나님이 먼저 말씀하시면 자신이 대답하겠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먼저 말씀 드리겠다고 제안합니다(22절). 그가 드리려는 말씀의 요지는 자신의 죄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징계하시느냐는 것입니다(23-24절). 하나님께 자신은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 같고 마른 지푸라기 같이 하찮은 존재인데, 왜 이토록 집요하게 공격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25절). 그는 하나님께서 어릴 때 행한 죄까지도 혹은 발바닥이 닿는 자국까지 다 찾아내어 징벌하시는 것처럼 느낍니다(26-27절).

묵상:

웬만한 사람 같았으면 소발과 두 친구의 고발 앞에서 “그래, 내가 지금 당하는 불행이 내 죄 때문이라고 하자”고 물러섰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해서도 “주님, 저의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주님은 언제나 옳으시니 제가 당하는 고난을 정당한 징계로 받아 들이겠습니다”라고 포기했을 것입니다. 이 불행을 당하기 전에 욥은 그렇게 하는 것이 신앙적으로 옳은 처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의 고발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았고, 죽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을 대면하여 따져 묻기를 결심합니다. 

그것이 욥으로 하여금 마침내 하나님을 대면하고 살아 있는 신앙으로 도약하게 만들었습니다. 만일 욥이 중도에 포기하고 ‘고분고분’ 해지기를 택했다면, 그는 계속하여 교리로 박제된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그도 역시 세 친구들처럼 자신의 고정 관념으로 다른 사람에게 훈계를 해 대는 신앙적 꼰대가 되었을 것입니다. 세 친구를 격노하게 할 정도로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죽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쏟아 놓아야겠다는 결의를 내려놓지 않았기에, 그는 굳어 버린 신앙의 껍질을 깨고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4 thoughts on “욥기 13장: 죽기를 각오하고

  1. 저희들의 중심을 아시는 주님과 세상에 솔직해지기를 원합니다. 힘든 친구를 뻔한 말로
    위로 하려고 하지말고 친구의 사정을 듣는 지혜와 모든 사정을 잘아시는주님께 기도할때 간구만
    하지말고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코로나 사태가 더 나빠 집니다. 주위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웃과함께 어려움에 처해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소망을
    주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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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어렸을 때 부터 질문은 안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질문은 어른에게 혹은 선생님에게 말대꾸를 하는 것이며, 고분고분 순종하지 않는 아이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 안에서는 더 더욱 심했습니다. 감히 목사님, 선생님 말씀에…하나님 말씀을 의심하는 아이로 여겨지기 때문에, 질문을 하는 것은, 결국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낙인되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좋은 질문을 사람을 살릴수도, 죽일 수 도 있는 큰 힘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질문은 단순히 정보를 얻는 것을 넘어서, 좋은 소통의 자리로 대화를 나눈 사람의 딱딱하게 굳어진 마음을 여는 오프너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좋은 질문은 그 사람의 인생을 후벼 팔 수 있는 귀한 도구가 되어지기도 합니다. 오늘 욥의 질문들은 비대면으로만 만났던 하나님을 대면하는 귀한 첫 발걸음이 되었습니다. 질문들이, 드디어 갇혀있었던 비대면 하나님을 대면하는 오프너의 역할을 한 셈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질문은 많이 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알아가는 단추가 되어집니다. 단추를 찾아야, 헌옷을 벋고, 새 옷을 입을 수 있듯이, 하나님에 대한 또한 나에 대한 질문을 통해서, 그 크신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경험되어짐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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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성경을 연대기적으로 보면 욥은 아브라함과 동시대적인 인물이라고 합니다. 창세기보다 먼저 쓰여졌다고 하는 의견도 있다니 욥기에서 드러나는 사상은 실로 오래된 신학입니다. 그렇지만 표현이나 비유가 문학적입니다. 욥의 입에서 나오는 인간의 조건과 한계는 너무도 절절합니다. 미끄러져 가는 그림자, 품꾼, 증발하는 바닷물…”초원의 빛”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60년대 초반에 나온 영화라서 그때는 어려서 못보고 십여년 뒤에 본 것 같은데 줄거리도, 의미도 기억에 없지만 윌리엄 워즈워드의 시에서 제목을 빌렸다는 것과 청춘의 덧없음, 이루어질 수 없는 첫사랑, 생각과 전혀 다르게 펼쳐지는 인생여정 등등이 기억납니다. 욥은 우리 인생이 잠깐 빛났다 스러진다고 탄식합니다. 빛나도록 아름다운 때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인생은 쓸쓸하게 빈손으로 남을 뿐이라고 한탄합니다. 그런데 욥은 절망 속에서혹시라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하는 희망을 품습니다.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다시 살아날 때까지 아무리 어려워도 기다리겠습니다 (14절)” 메세지 성경은 부활을 기다린다고 표현합니다. “I keep hoping, waiting for the final change – for resurrection!” 욥은 고통의 심연에서 소생과 영생의 꿈을 꾸었습니다. “저의 허물을 주머니에 넣고 묶어서 제 잘못을 덮어주십니다 (17절)”에서는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을 보게 합니다. 엄격한 재판관 같은 하나님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는 걸까요. 욥은 끝으로 인간은 다만 자기 몸의 고통 만을 알 뿐 자기 자손의 미래는 알 수 없다면서 말을 마칩니다. 죽으면 끝이라는 체념으로 돌아갑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탄식입니다. (지금, 여기) 고통의 자리에서 (내일, 하늘) 주님의 자리를 기다릴 수 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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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하나님이 나를 죽이려 하셔도 나로서는 잃을게 없다는 믿음의 바탕에서 끝까지 하나님을 만나 자기 사정을 말해야 겠다는 철저한 믿음을 배우면서도 한때 내 죄가 없다는 확신이 있다고 말할때는 인간의 한계를 깨달게 됩니다.
    나뭇잎이나 지푸라기 같은 나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내 가는 길을 낱낱이 지켜보시는 주님게 경배를 드립니다.
    잠간 왔다 가는 그 길에서 안내자가 되어주시고 길잡이로 인도해 주시는 주님게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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