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2장: 인간의 지혜와 하나님의 섭리

해설:

앞에서 소발은 들나귀처럼 어리석고 고집 세다는 말로 욥에게 모욕을 주었습니다. 욥은 분개하여 소발과 다른 두 친구에게 “지혜로운 사람이라곤 너희밖에 없는 것 같구나”(2절)라고 빈정 댑니다. 그들이 말하는 신앙의 공식에 대해서는 욥 자신도 그들만큼이나 잘 알고 있습니다(3절). 한 때 그는 그 공식이 들어 맞는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공식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4절). 그들은 고통을 당해 보지 않았기에 그렇게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5절). 믿음의 공식에 맞지 않는 일들이 현실에서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그들은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6절).

세상 만사가 믿음의 공식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땅의 짐승도 알고 공중의 새도 압니다(7-9절).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인간으로서는 그분이 행하시는 일을 모두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오래 산 사람에게 지혜가 있다고 하지만, 그 지혜는 하나님의 행사에 대해 지극히 작은 조각만을 설명할 수 있을 뿐입니다(10-13절). 그분은 전능의 능력과 절대적인 지혜로써 우주의 운행과 역사의 흐름을 만들어 가십니다. 인간으로서는 어떤 공식으로도, 어떤 논리로도 그분의 행사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로서는 다만 그분의 통치 앞에 고개 숙일 뿐입니다(14-25절).

묵상:

노인에게 지혜가 있고, 오래 산 사람이 이해력이 깊다(12절)고 말하는 이유는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 때문입니다. 인생 여정에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세상사와 인간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저절로 그런 지혜와 통찰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조하면서 끊임없이 묵상해 갈 때 세상사와 인간사의 흐름을 보는 눈이 만들어집니다. 그런 경험이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되어 표현된 것이 속담이요 격언입니다. 

하지만 인생 경험을 통해 얻은 통찰과 지혜가 모든 상황에 대한 대답은 되지 않습니다. 세상사와 인간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무한한 지혜를 따라 펼쳐 가시는 것이므로 인간 편에서는 다 파악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인생 경험을 통해 배우고 깨닫는 지혜는 그분의 신묘막측한 섭리의 아주 작은 일부를 본 것일 뿐입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충고하지 않습니다. 반면,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세상 원리를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함부로 판단하고 충고합니다. 그것이 ‘꼰대’가 되는 첩경입니다. 

4 thoughts on “욥기 12장: 인간의 지혜와 하나님의 섭리

  1. 욥이 친구들에게 화살을 쏩니다. 듣고만 있자니 화가 납니다. 하나님의 침묵도 견디기 어렵지만 방문한 친구들이 쏟아내는 충고 또한 들어주기 힘이 듭니다. 사람은 자기 관점에서 자기 생각과 느낌 만을 말할 수 있습니다. 내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만 주체자로서 말할 수 있을 뿐 타인의 처지에 대해서는 언제나 관찰자일 뿐입니다. 내 안에 지금 타인이 처한 상황과 비슷한 경험의 기록이 있으면 그것이 공통 주제가 됩니다. 욥이 고독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친구들 중에 아무도 욥과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서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일반적이고, 원칙적인 이야기 밖에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해설에서 “꼰대”가 나옵니다. 늙는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니 사람을 공통으로 묶어주는 주제로서 이만한 것이 없습니다. 꼰대는 추하게 늙어가는 사람을 통틀어 부르는 속어입니다. 한국에서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라떼 시리즈가 유행할 만큼 꼰대행진이 심하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도 베이비 부머세대가 “When I was young…”으로 시작하는 미국판 라떼 시리즈가 있는데 뉴질랜드 의회에서 94년생 밀레니얼 의회원이 자기 발언을 계속 끊는 68년생 Z 제너레이션 의회원을 향해 날린 “OK boomer!” 일침이 한 예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라떼 시리즈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 경험의 창고에 들어있지도 않은 일을 놓고 왈가왈부하고 있습니다. 욥은 두 가지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고통을 거두어 주시는 것과 자기에게 답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두 가지가 서로 맞물려 있음을 봅니다. 답을 몰라 더 고통스럽고 고통이 사라진다면 그것 자체가 답이라는 마음이란 것을 봅니다. 욥의 고독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내 짧은 지식과 경험이 다인 것처럼, 특별한 것처럼 여기고 함부로 훈수를 두려는 마음을 없애 주소서. 나보다 어리면 나보다 못하다는 디폴트 설정을 지우고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부터 살피는 예민한 관찰력을 새로 깔아 주소서.

    Like

  2. 꼰대같은 신앙생활! 말로는 이것 해라, 저것 해라, 혹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살아야 한다! 라는 이야기를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상황이 닥쳐오면, 그렇게 살아가야하고 저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많은 크리스챤들이 저를 포함해서, 꼰대같은 신앙생활을 했던 것 같습니다. 즉, 여러 상황들이 갖추어졌을때, 정말로 내가 말했고, 주장했던 대로 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거나, 자신의 준거틀에서 다른사람을 말로만 이야기하는 것을 꼰대라고 합니다. 소통이 아닌, 한 쪽 방향에서의 일방적이거나 모순이 있기 때문이지요. 욥의 친구 소발도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사고, 경험만으로 만들어진 신앙의 공식을 가지고 욥을 비판하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소통이 아닌, 일방적인 잔소리로만 여겨지는 겁니다. 다르게 보면, 소발도 욥을 생각하는 마음에 충고를 한 것 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감하지 못한 충고, 소통하지 못한 가르침은 오히려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Like

  3. 나이가 들면서 지혜를 제치고 옹고집이 따라온것을 고백합니다.
    어려운 친구의 눈문물을 닦아주고 같이 안타까워하며 진정한 위로를 주는 지혜를 원합니다.
    모든 힘든 상황도 배후에서 주관하시는 사랑의 주님임을 깨닫고 인내하며 소망을 갖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함께 말로만 감사하는것이 아니라 삶으로 감사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Like

  4. 지혜와 권능, 슬기와 이해력, 능력 이 또한 그분의 것이라고 고백하는 욥의 믿음을 거울 삼아 나의 믿음을 가늠해 봅니다, 뭔가 알것 같기도 했던 지난 날들을 되돌아보며 부끄러움이 앞을 가려 묵상이잘 되지를 않는 것이 일상이 되고있습니다.
    편향된 경험들이 쌓여 잘 못된 지혜로 늙어가지나 않을까 염려되며 주님의말씀 안에서 쌓아지는 지혜를 간구합니다.

    Like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