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1장: 하나님은 신비다

해설:

이번에는 나아마 사람 소발이 입을 엽니다. 그는 다른 두 친구와 같은 입장입니다. 그렇기에 욥이 다른 두 친구의 충고를 받아 들이지 않자 자신들을 비웃는다고 생각합니다(3절). 

그는 욥이 받고 있는 벌이 그의 죄보다 가볍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면서(6절) 하나님의 지혜로 그 사실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너무나도 높아서 인간으로서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고, 그분의 능력은 너무나 커서 인간으로서는 감히 맞설 수 없습니다(7-9절). 그분에게 드러나지 않을 죄는 없고, 따라서 그분의 심판은 언제나 정당합니다(10-11절).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들나귀처럼 고집 세고 어리석은 사람입니다(12절).

이런 근거에서 소발은 욥에게, 마음을 바르게 먹고 그분을 향해 기도하며 악에서 손을 떼라고 충고합니다(13-14절). 그렇게 하면 욥은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고 비로소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15-19절). 만일 그렇게 하기를 거부한다면 그의 희망이라고는 다만 마지막 숨을 잘 거두는 것이 될 것입니다(20절). 소발이 이렇게 충고한 이유는 욥이 하나님에게 등지고 죄를 범해 왔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묵상:

소발이 하는 말은 모두 옳은 말처럼 보이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모순이 발견 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이 너무도 깊어서 아무도 알 수 없고, 그분의 무한하심을 아무도 측량할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7절). 그것은 하늘보다 높고 스올보다 깊으며, 땅끝보다 길고 바다보다 넓습니다(8-9절).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온 우주의 창조자이시라면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신으로 섬길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니 소발은 하나님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발은 앞에서 말한 내용을 잊은 사람처럼 말을 이어 갑니다. 그에 의하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처사는 너무도 분명하고 단순합니다. 잘 믿고 바르게 살면 복을 누리고, 죄악을 탐하면 벌을 받습니다. 그것은 그가 조상으로부터 전해 받은 믿음의 공식입니다. 욥 자신도 그 공식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것을 믿지 못합니다. 지금 당한 일에 비추어 보면 그 공식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잘 못 믿어 왔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욥은 하나님의 신비를 향해 더듬어 나가고 있는데, 소발과 친구들은 그를 다시금 공식 안에 구겨 넣으려 합니다.  

4 thoughts on “욥기 11장: 하나님은 신비다

  1. 소발의 세계는 검정색과 하얀색만 있습니다. 그 중간 지대인 회색이 없는 것처럼 말을 하고 행동을 합니다. 소발의 논리와 체계는 옳은 말만 하지만, 다시 한번 자신의 준거틀 가운데에서만 생각을 하고, 욥에 대한 공감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도덕적인 규칙만 따르는 교사처럼, 욥의 지금 결과는 검은색 부분의 삶때문에 그렇게 된것이라고 판단하며 이야기 합니다.

    제 안에는 지금도 소발과 같은 흑백논리의 신앙, 신학 개념이 있습니다. “차던지, 뜨겁던지, 미지근하면 안된다” 라는 말처럼 흑백논리의 신앙이 더 믿음이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내 신발을 먼저 벗은 후에, 그 고통과 심정을 함께 이해함이 있어야함을 기억합니다. 내가 보지 못하는 회색의 지대가 있음을 겸손히 인정하며, 오늘도 주님의 귀, 주님의 혀, 그리고 주님의 마음이 내 안에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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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소발의 말은 친구가 아니라 피고자를 다루는 검사 같이 들립니다. 엘리바스 빌닷 소발의 말은 겉으로는 다 맞는 말 같고,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우리도 대체로 그리 믿는 하나님 모습 같아 보입니다. 진실로 감사한 마음, 사랑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올린다기 보다 혹시라도 화를 내거나 벌을 줄까봐 무서워서 올리는 제사일 때가 있습니다. 이쯤되면 뇌물과 다를 바 없습니다.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제사상의 화려함에 더 주목하시는 분으로 여깁니다. 소발이 믿는 하나님은 콩 심은 데서 콩 나고, 팥 심은 데서 팥이 나는 원칙에서 어긋남이 없는 기계 같은 하나님입니다. 악을 심었으니 악을 거두고 있다는 소발의 주장은 죄인을 다루는 검사의 입에서 나올 법한 말입니다. 오히려 욥의 죄를 얼마쯤 제하시고 내리신 것 같다 (6절) 고까지 말하는 소발은 위로가 목적이 아니라 꾸짖음이 목적입니다. 욥은 지금 하나님께 잔뜩 화가 나 있는 상태입니다. “왜 나를 치시는지 이유라도 알려 주십시오 (10:2)”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친구들과 욥은 다같이 하나님을 보면서도 전혀 다르게 그리고 있습니다. 내 마음에 있는 하나님이 바깥으로 나오는데 다른 모습입니다. 소발은 하나님의 지혜와 신비를 말하지만 아직 깨닫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관념의 하나님, 하늘에서 내려다 보시는 하나님입니다. 욥과 친구들이 말을 많이 할수록 하나님의 침묵은 더욱 깊어갑니다. 아직도 터널 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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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전지전능하시고 거룩하시고 공의의 하나님만 아는 욥의 친구들과 같이 친구들을 정죄 해 왔습니다.
    더 중요한 인내하시고 함께 하시며 같이 울고 같이 기뻐하시며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을 잊지 않기를 원합니다. 힘들어하는 믿음의 형제 자매들의 눈물을 닥아주고 마음의 상처를
    싸매어주는 지혜와 위로가 필요합니다. 혼란한 세상과 병들은 사회를 위해 이웃과 더불어 간절히
    기도 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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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옳은 말을 할 때가 있고 잠잠 할 때가 있듯이 소발의 옳은 말은 듣는 사람에게 거부감을 일으키듯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만나 때 내가 취해야 할 태도가 어떻게 해야할지 공부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별에 별 지식을 동원해서 설명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언어로 표현 할 수있는 분이 아님을 깨달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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