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9장: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

해설:

욥은 빌닷이 한 말을 인정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깨끗하게 살았다 한들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2절).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이 크고 높으신 분입니다(3-10절). 따라서 그분의 처사에 대해 인간이 따져 물을 수 없으며, 그분의 심판은 언제나 정당합니다(11-14절).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그분의 은총을 비는 것 뿐입니다(15절). 

하지만 욥은 그것조차 염두를 내지 못합니다.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자신의 호소를 들어 주실 것 같지도 않고(16절), 자신을 그토록 잔인하게 징계하시는 분이 호소를 들어주실 것 같지도 않습니다(17-18절). 설사 자신에게 말할 기회가 있어서 그분 앞에서 변호 한다 해도 그분은 그를 정죄하실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19-20절). 그래서 욥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뿐입니다(21절). 

욥이 보기에 하나님은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아무나 심판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22절).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실을 보면 하나님이 정의를 따라 다스린다고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도 많습니다(23-24절). 하나님이 그런 분이고 인생이 그런 것이라면 욥은 더 이상 살기를 바랄 이유가 없다고 느낍니다. 그가 어떻게 살든 하나님은 그를 괴롭히기로 작정하신 것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25-31절). 

욥은 자신이 상대하는 것이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논쟁으로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낍니다(32절). 하지만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서 중재하고 판결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34절). 그러니 그는 꼼짝 없이 고통을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그가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 하나님께서 징계를 거두시는 것입니다(34-25절).

묵상:

우상은 안전합니다. 모호한 것이 없고 이해 못할 것이 없습니다. 교리도 안전합니다. 인간이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는 정도로 하나님에 대한 진실을 정리한 것이 교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은 너무나 모호하고 이해 못할 구석이 너무도 많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진실은 모호하고 혼란스럽고 때로 위험합니다. 인간의 이성에 비해 하나님은 너무도 지혜로운 분이며, 인간의 능력에 비해 하나님은 비교할 수 없이 능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교리에 안주하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이 교리의 범주 안에서 혹은 교리의 공식 안에서 움직여 주시기 원합니다.

재앙을 당하기 전에 욥은 하나님을 우상처럼 생각했고 자신이 믿는 교리의 틀 안에서 움직여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만사가 형통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는 동안 그는 자신이 제대로 믿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쌓아 올린 인생의 집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그와 함께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도 무너지고 그가 옳다고 생각했던 교리도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내 곁을 지나가신다 해도 볼 수 없으며, 내 앞에서 걸으신다 해도 알 수 없다”(11절)고 고백합니다. 

시나브로 욥은 무너져 버린 교리의 먼지 더미에서 헤집고 나와 진짜 하나님을 찾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4 thoughts on “욥기 9장: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

  1. 얄팍한 지식과 이성으로 주님을 이해할려는 어리석은 생각임을 고백합니다.
    주님앞에서 의로운 사람은 세상에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은혜의 길이 있음을
    확신합니다. 주님께 중재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합니다. 이웃과함께 보혈을 지나 아버지께
    갈수있는 길을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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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욥이 진짜 하나님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욥은 고통과 상처로 둘러싸여있습니다. 신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이미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외롭게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에 있습니다. 그 시간안에서 하나님과 자신의 차이점을 인정합니다. 그렇기에 변론을 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Jude’s mercy를 구합니다. 즉, 그 상처와 한계 가운데, 오직 희망은 하나님의 궁휼입니다. 나의 삶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면 경험할 수록 얼마나 내가 작고 보잘 것이 없는 존재임을, 또한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신 분이심을 경험합니다. 그런 하나님이 나를 자녀 삼아주심에 감사와 찬양, 그리고 은혜와 궁휼을 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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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욥의 하나님은 무심하시고 차가운 분입니다. 사람의 처지를 살펴주시지 않는 분처럼 보입니다. “죄 없는 자나 악한 자나 모두 죽이시는 분 (22절)”이라고 욥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당신 마음대로 하십니다.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거리는 우리의 이해로 좁혀질 수 있는 거리가 아닙니다. 욥의 인생이 잘 풀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며 복 받은 사람으로 살았을 때에도 욥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두려운 분, 모든 것을 지켜 보시고 보이지 않는 것도 다 보시는 분. 세상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욥이 당하는 고난이 멀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욥처럼 의로운 사람도 고난을 받는데 과연 우리 중에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하나님은 사람의 호소를 들으시는 분이요 처지를 살펴 주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내게 사랑 받을만한 것이 있어 그분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의 생각과 말, 행동은 하나님께 하는 반응입니다. 나의 삶은 하나님을 표현한 그림이요 노래입니다. 달리기 선수보다 빨리 지나가는 (25절) 삶이라고 욥은 말합니다. 연말의 시점에서 읽으니 더더욱 공감이 됩니다. 감사하며 달릴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감사 속에서 달리기를 마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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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욥을 통해 내가 알지 못하던 하나님을 그려보며 하나님의 범주가 인간의 머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수 없다는 것을 느끼며 요즘 미국에서 일어나는 분노와 갈등을 주님께서 곧 해결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도저히 이해 할수없는 일들을 보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끝내는 긍휼을 내려 주실지 답답 한 마음에 눈 감고 조용히 기도합니다, 이 모든 것을 주님의 자비와 궁휼에 의지하는 수 밖에 없음을 깨닭고 기도하며 기다리는 수 밖에 없음을 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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