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5장: 인생은 공식이 아니다

해설:

엘리바스의 잔인한 고언이 이어집니다. 먼저 1-7절에서 그는 욥의 숨겨진 죄를 고발합니다. 그는 “미련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2절)에 대해 말하는데, 실은 욥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욥이 미련하고 어리석은 이유는 자신이 고난 당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기(혹은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엘리바스는 “재앙이 흙에서 일어나는 법도 없고, 고난이 땅에서 솟아나는 법도 없다”(6절)고 말하면서 욥에게 고난 당하는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아 보라고 이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다른 어리석은 사람들처럼 아무런 도움도 얻지 못하고 고난 중에 망하게 될 것입니다. 

8절부터 16절까지에서 엘리바스는 욥에게 하나님을 찾아 사정을 털어 놓으라고 권합니다. 그분은 측량할 수 없이 지혜로운 분이며, 악한 사람들을 낮추시고 낮은 사람들을 높이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자신의 지혜를 따라 살려는 사람들은 결국 암흑 가운데 떨어질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자비를 구하는 사람은 큰 죄를 범했다 해도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17절부터 26절까지에서 엘리바스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이 누리게 될 복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분은 때로 징계하시고 심판도 하시지만 또한 구원하시고 회복시키는 분입니다. 그분의 전능의 그늘 아래에 있으면 어떤 불행도 피해갈 것이며 부귀영화와 무병장수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때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그것을 복으로 알고 그 징계를 통해 주시는 훈계를 받아들이라고 권합니다(17절). 

엘리바스는 첫 번째 권면을 마치면서 “이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이니 틀림없는 사실이다. 부디 잘 듣고, 너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명심하기 바란다”(27절)고 덧붙입니다. 

묵상:

엘리바스는 욥에게 충고하면서 “내가 본 대로는”(4:8) 혹은 “이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이니 틀림없는 사실이다”(5:27)라고 덧붙입니다. 그동안 살아 오면서 악한 사람은 반드시 그에 따른 징계를 받고 선한 사람은 그에 대한 보응을 받는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했다는 뜻입니다. 그는 그 사실을, 하나님의 정의가 살아 있다는 증거로 여깁니다. 인간이 당하는 불행과 고난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으며, 하나님은 당신을 의지하여 거룩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결코 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인간사에 대한 엘리바스의 증언을 읽으며 우리는 한 편으로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 주저하게 됩니다. 인간사를 돌아 보면 엘리바스가 말하는 대로 “진정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악한 끝은 없어도 선한 끝은 있다”는 속담이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세상사와 인간사에는 “정말 하나님이 계신가?” 혹은 “정말 선한 끝은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합니다. 엘리바스는 마치 그런 예외적인 상황을 보지 못한 사람처럼 말하면서 욥을 죄인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인생은 공식이 아닌데, 그는 욥의 상황을 자신이 믿고 있는 공식에 맞추어 해석하려 합니다. 

4 thoughts on “욥기 5장: 인생은 공식이 아니다

  1.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엘리바스의 권면하는 모습 속에서 저의 어렸을때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좁은 제 사고와 어렴풋이 아는 지식으로 성경과 하나님을 모두 아는 것 같이, 사람들에게 훈계하듯 말씀들을 나누었습니다. 틀린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만의 준거틀만 가지고 사람들의 모든 인생들을 그 안으로 넣고, 크신 하나님을 제한 하는 오류를 범한 것입니다. 겸손하게 됩니다. 말을 조심하게 됩니다. 엘리바스와 같은 삶을 지금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나의 생각과 경험으로 만들어진 준거틀이 아닌, 더 크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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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엘리바스의 말에 틀린 것은 없습니다. 다 옳은 말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마땅한 일입니다. 잠언을 읽을 때 드는 느낌처럼 그의 말에는 우주의 질서와 인생의 이치가 담겨 있습니다. 질서정연한 세상, 심은대로 거두는 인생. 욥이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면 엘리바스의 말이 정확한 진단이요 해결책이라고 여겨질 것입니다. 그런데 욥은 이런 고통을 벌로 받을만한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닙니다. 도저히 알 수 없는 (하나님과 사탄 만 알고 있는) 원인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고통의 근원이 자신에게 있다고 있다고 인정하면 고통이 가벼워질 것이라고 믿고 그러는 것인지 엘리바스는 계속 권면합니다. 엘리바스 자기 속의 혼란과 공포심을 다스리려고 하는 말로도 들립니다. “욥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내게도…” 라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뜻밖에 찾아오는 불행, 고통의 무작위성에 대한 공포심이 엘리바스의 내면에도 있습니다. 욥을 읽는 독자는 누구라도 가질법한 생각입니다. 엘리바스를 보며 아무리 바른 말이라도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침묵이 더 친절한 언어라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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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어름 같이 차거운 옳은 말과 바른 충고보다 따뜻하게 품어주고 함께 안타까워하는 사랑과
    지혜를 원합니다. 생각과 언어와 행동과 삶이 주님의 사랑안에서 같이하는 믿음이 필요
    합니다. 고난과 시련과 박해는 순간적이고 영원한 주님의 사랑을 향한 통로임을 이웃과
    함께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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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Counselor 또는 목사님같이 욥의 상황을 설명해 주며 답이 뭔가를 말해주는 엘리바스를 보며 꼭 초보 Counselor또는 돌파리 목사같은 느낌이 들며 오히려 화에 부채질하는 어리석음을 보며 내가 혹 곤란을 당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비슷한 바보짓을 할까 걱정이 됩니다.
    진정한 친구라면 현 상황이 얼마나 어렵냐? 잘 견디면 끝내는 하나님이 돌봐주실 거라고 격려를 해야 하는데 그런 엘리바스같은 친구는 없느니만 못 하리라 생각이 들며 인간의 근본이 선 보다는 악에 바탕을 두고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내 삶에 악이 고개를 들지 못하게 늘 기도를 게을리 않기를 자신에게 다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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