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장: 욥의 축복과 불행

해설:

“우스”(1절)은 에돔 남쪽에 있던 지역 이름입니다. 욥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동방”(3절) 사람이었지만 이스라엘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모범 신앙인이었습니다. 먼저 그는 신앙적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사람”(1절)이었고, 인격적으로는 “모든 일에 늘 신중한”(5절) 사람이었으며, 그 결과로 엄청난 물질 축복과 자녀 축복을 누렸습니다. 게다가, 그의 가족은 생일마다 온 가족이 모여 즐길만큼 화목했습니다. 그는 자녀들과 잔치를 즐길 때마다 자식 수대로 일일이 번제를 드립니다. 혹 자식들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죄를 지었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욥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사람이며 그로 인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복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6절에서 저자는 장면을 바꾸어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나는 대화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아들들”(6절)은 천사를 가리킵니다. 천사들이 하나님 앞에 서 있을 때 사탄이 나타납니다. 이 장면을 통해 저자는 사탄 조차도 하나님의 통치 하에 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사탄이 이 세상을 두루 살피고 왔다고 보고 하자, 주님께서는 욥처럼 신실하고 정직하고 의로운 사람이 없다고 칭찬하십니다. 그러자 사탄은 욥이 그렇게 신실하게 사는 이유는 그가 누리고 있는 물질적인 복 때문이라면서, 그가 가진 모든 것을 가져가시면 그는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라고 반론을 제기합니다(9-11절). 그러자 주님께서는 사탄이 원하는 대로 행하도록 허락하십니다. 다만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라고 하십니다(12절).

13절에서 장면은 다시 우스로 바뀝니다. 주님께 허락을 받은 사탄은 욥이 누리고 있던 복을 하나씩 가져갑니다. 불행한 일은 한꺼번에 닥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연 재해와 외적의 침략으로 인해 욥은 며칠 사이에 그 많던 가축들과 종들을 잃어 버립니다. 그뿐 아니라 큰 아들 집에서 잔치를 즐기고 있던 자녀들이 자연재해로 인해 몰사합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정도로 바닥에 떨어지자 욥은 “일어나 슬퍼하며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민 다음에, 머리를 땅에 대고 엎드려 경배하면서”(20절) 고백합니다. “모태에서 빈 손으로 태어났으니, 죽을 때에도 빈 손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가져 가신 분도 주님이시니, 주님의 이름을 찬양할 뿐입니다”(21절). 이렇게 그는, 그의 믿음이 물질적인 복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묵상:

‘신정론'(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이론)은 신학의 문제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문제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입니다. 그분은 우주 운행의 원리나 에너지가 아니라, 생각하고 느끼고 판단하고 선택하고 울고 웃는 인격체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불행을 당할 때, 팔자소관이라고 혹은 운명이라고 체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 하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당한 불행이 우리의 잘못으로 인해 발생한 것일 경우에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징계로 받아 들입니다. 하지만 그런 잘못이 우리에게 있지 않다고 느낄 때면 그 이유를 따져 물으며 항의합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선하시고 의로우시며 전능 하시다면 왜 무고하게 고난을 당하게 하시는지를 묻고 싶어집니다. 그 불행의 정도가 심하고 그 기간이 오래될수록 의문은 더욱 강해집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저자는 가장 완벽한 한 인물을 내세웁니다. 그는 신앙면에서, 인격적인 면에서, 윤리적인 면에서, 사회적인 면에서 흠 잡을 데 없는 모범인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아무 잘못도 없이, 인간이 당할 수 있는 최악의 고난 즉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것을 박탈 당하는 불행을 만납니다. 그 엄청난 불행을 당하고 나서도 하나님께 대한 그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기서 독자는 여러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어떻게 인간이 이럴 수 있을까? 과연 이 고백을 할 때 욥은 제 정신이었을까? 욥의 믿음은 정말 흔들리지 않은 것일까? 이런 질문은 다음에 어떤 이야기로 이어질까 궁금증을 가지게 합니다.  

5 thoughts on “욥기 1장: 욥의 축복과 불행

  1. 자녀들이 죽고, 가졌던 모든 재산들이 없어지는 좌절되는 상황과 환경에서 욥은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20절). 그리고 오히려 하나님 앞에 고백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1절).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라는 물음과 대단한 존경이 함께 합니다.

    이전에 읽었던 책 중에서, 빅터 프랭클이라는 사람이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서 삶과 죽음을 오고가는 그 긴급한 상황과 환경에서도, 매일 긍정적이고,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는 선택을 했다고 고백합니다. 즉 상황과 환경 (자극)으로 인해서 우리의 선택이 항상 그 자극으로 인한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황과 환경 (자극) 과 우리의 선택에는 공간이 있고, 그 공간 안에서 우리는 언제든지 자극과 상관없이 우리의 신념대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의 욥도 동일한 선택을 한것 같습니다. 불평하고 불만을 할 수 밖에 없는 자극과 상황에서도, 공간을 만들어내어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하는 선택을 한것입니다. 나도 오늘 하루 여러 자극가운데, 공간을 만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선택, 기쁘게 하는 선택을 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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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 닥쳐와도 사랑 이시고 좋으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잊지않고 주님께 찬양하는 결단을 원합니다. 세상이 조롱하고 비웃어도 십자가의 은혜로
    영생과 천국을 약속하신 주님께 진정으로 감사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최근에 별세한
    한국 재벌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신문을 통해
    읽었습니다. 순간적인 재물이 우상이 되지 않기를 간구합니다. 오직 주님만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고 흠없이 정직하게 이웃과 더불어 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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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20년 11월에 욥을 묵상합니다. 기다리던 (!) 대통령 선거 투표일이 내일로 다가왔습니다. 투표 다음날이면 결과를 알았던 예년과는 달리 올해에는 사전투표와 우편투표의 개표 결과를 포함해 당락의 윤곽이 잡힐 때까지 며칠, 몇 주간이 걸릴 것이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산사태 (landslide) 같이 압권적인 우승이면 몰라도 팽팽한 대결이라면 패자가 순순히 승복하는 때까지 시간이 더 걸릴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앞을 보기 어려운 때에 고통의 책 욥기를 읽습니다. 성경 66권 중에 복음서와 시편, 창세기 다음으로 “유명한” 책이 욥기일 것 같습니다. 구약의 주요 인물들은 왕이거나 선지자인데 욥은 일반인입니다. 아버지요 남편이며 사업가입니다. 욥이 받는 고통은 이유 없는 고통입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개인 재앙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과 사탄이 내기를 한 결과에서 나온 재앙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나 나올 법한 신들의 게임입니다. 하늘의 회의에서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는 사탄의 말 속에 담겨 있습니다. 욥이 하나님을 그냥 사랑하는 줄 아십니까 식의 발칙한 질문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뒤를 봐 주시니 승승장구하는 것일 뿐 하나님이 버리시면 그도 하나님을 버릴 것이라는 참으로 정확한 예측을 합니다. 그럴까요? 욥은 하는 일마다 잘되는 인생길을 보호하려는 뜻에서 하나님을 믿었을까요. 하나님이 자기의 신심을 보시고 기특하게 여기시어 복을 주신다는 확신으로 살았을까요. 자녀와 재산을 잃는 어이 없는 비극 앞에서 욥은 주신 분도 여호와, 가져가신 분도 여호와라는 찬양을 합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자기는 잠시 맡았던 종이고 원래 주인이 되찾아 가셨다는 고백입니다. 욥의 처음 반응이 놀랍습니다. 이런 고백을 하는 사람이니 그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을 어둠 속에서 길을 찾게 하고, 힘을 얻어 일어나게 했나 봅니다. 욥기의 끝은 해피엔딩입니다. 사탄은 내기에서 지고, 욥은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고 보상도 받습니다. 21세기에 들어와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수퍼히어로 이야기처럼 통쾌한 결말인데 다만 우리의 히어로 욥은 스스로 무엇을 함으로써 악을 무찌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지 않음으로 사탄을 제압하는 것이 다릅니다. 팬데믹의 해에 욥을 읽으면서 겹겹이 쌓인 죄의 덮개를 벗겨내기를 원합니다.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믿으며 조심스러운 소망을 갖고 11월을 시작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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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경재적 빈곤. 만성질환, 폭력과 억압에 눌린 삶, 어린나이에 죽음 등은 우리의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습니다. 그 아픔을 바라보는 거 말로도 하나님이 과연 게실까 하나님이 정의로우신 분이신가 하며 의문을 하게 됩니다.

    욥기를 읽으면 우리 인간이 얼마나 세상의 복을 쫓으며 사는지 알게됩니다. 세상의 복을 누리며 사는 건 자신이 했던 올바른 행실의 결과라고 곧 잘 생각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갑작스런 재난에 대해선 하나님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따집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잘 살펴보면 복의 형태도 자신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고. 복의 원천도 자신이 한 행동에서 나온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획하신 세상의 흐름을 다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을 통해서 우리가 죄로부터 구원 받기 원하심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믿음 붙들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셨습니다. 비록 삶의 풍파속에서 흔들리고 넘어지더라도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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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욥기는 읽기도 전에 선입관이 따라 붙어 어떻게 묵상하며 이해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농경 시대의 유목 민들의 축복은 자녀와 가축과 농토가 아인가 생각해 봅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축복이 최 악의 저주로 돌변할 때 하나님에 대한 욥의 자세를 통해 내 믿음을 점검해 봅니다, 아주 작은 환경의 변화를 맞으면서도 주님을 등지는 내 자신을 보며 욥을 통해 믿음의 근본적인 바탕을 옳게 이해할수있게 주님의 지혜를 구합니다, 욥기를 잘 이해하고 내 안에서 변화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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