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54장: 예루살렘의 미래

해설:

1절부터 3절까지에서 이사야는 유다 백성에게 희망의 소식을 전합니다. 그들은 “임신하지 못하고 아기를 낳지 못한”(1절) 여인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낳지 못하여 버림 받았던 그 여인에게 많은 자녀가 생기는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을 회복시키셔서 그 장막을 좌우로 멀러 뻗어 나가게 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4절부터 10절까지에서 이사야는 ‘버림 받은 여인’의 비유를 이어갑니다. 아기를 낳지 못한다 하여 그 여인을 버린 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7-8절). 하지만 하나님은 그 “영원한 사랑”(8절)으로 그 여인을 다시 품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만군의 주님이 남편이 되었으니, 그 여인은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11절부터 17절까지는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폐허가 되었던 예루살렘을 회복시키시고 보호하시며 높여 주실 것입니다. 또한 그 성을 “공의의 터”(14절) 위에 굳게 세우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루살렘 주민들은 “번영과 평화”(13절)를 누릴 것이며, 그 누구도 그 성을 넘보지 못할 것입니다(15-17절).

묵상:

근본주의적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11절부터 17절에 나오는 예언이 글자 그대로 예루살렘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근본주의적인 유대교인들 뿐 아니라 기독교인들 중에도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예루살렘이 온전히 유대인들의 소유로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래야만 이사야를 통해 주어진 이 예언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예언을 사도 요한이 본 환상의 빛에서 읽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대한 환상 속에서 새 예루살렘의 모습을 보면서 사도 요한은 “그 도성은 하나님의 영광에 싸였고, 그 빛은 지극히 귀한 보석과 같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과 같았습니다”(계 21:11)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그것은 팔레스타인 땅에 있는 한 도시에 일어날 일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에 일어날 일입니다. 이 지상에 일어날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날 사건입니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그 나라를 소망합니다. 그 나라가 속히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렇게 소망하고 기도하기에 우리는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 나라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4 thoughts on “이사야서 54장: 예루살렘의 미래

  1. 회복에 언약을 주신 주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주님의 언약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모든 어두움과 어려움은 저희들을 바른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허락하신 사랑입니다, 주워진 시련은 주님의 배우자로서 훈련임을 잊지않고 감사히
    그리고 성실히 시련을 이웃과 더불어 받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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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가 가득한 삶, 가정, 사회, 나라가 되기를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먼저는 내 삶에 주인으로, 왕으로 오셔서, 진리와 은혜로 통치하시며, 내 가정과 교회, 그리고 나라 가운데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회복, 즉 내면에서 외면으로 퍼지는 귀한 하나님의 진리가 드러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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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생각을 하며 살지 않습니다. 선거철에는 이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워싱턴 DC에 있는 피자가게가 민주당의 범죄조직의 온실이라는 소문에서부터 이틀 전에 터진 민주당 후보 아들의 컴퓨터 수리와 범죄기록 소문에 이르기까지 공화당 지지자들이 믿는 소문과 이론은 양과 질에 있어 엄청납니다. 한 쪽에선 어떻게 저런 거짓을 믿지? 다른 쪽에선 어떻게 저런 사실을 모르지? 묻습니다. 올해 미국 대선은 이래저래 역사적이 될 것 같습니다. 인류가 생겨나고 고대 문명이 시작할 때부터 사람과 신(들)의 관계는 일직선 모양도 아니고, 한 가지 형태도 아니었습니다. 창세기로 시작하는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관계도 이사야 시대까지 오는 동안 한 길 만을 걸어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백성을 다루시는 모습을 보며 내가 취해야 할 진리를 찾아내기를 원합니다. 성경에서 자기가 원하는 말씀, 자기가 듣고 싶은 메시지만 골라서 받아 들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배웠습니다. 편식을 하는 것과 같다는 표현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읽고 묵상할수록 내 삶의 상황이나 믿음의 수준이 내가 취하는 진리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깨달음과 지혜는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지만 그 선물을 감당하는 나의 그릇은 하루 사이에 확 커지지 않습니다. 그런 놀라운 변화를 원하지만 거북이 걸음 보다 느린 속도로 그릇이 자랍니다. 오늘도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하시고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읽습니다. 하나님이 쏟으신 진노의 잔을 받고 살아남은 백성은 산과 언덕이 옮겨지는 일이 있을지라도 주님의 사랑은 절대로 변하지 않음을, 주님이 하시는 평화의 약속은 없어지지 않는다 (10절)는 희망의 메시지를 듣습니다. 밧모섬에서 요한 사도의 마음에 그려진 하나님의 도성이 내 마음으로 옮겨올 때까지 거북이보다 더 느린 시간을 지날지라도 꼭 나에게도 오기를 기도합니다. 묵상을 마친 뒤에 듣는 세상의 소문과 이론 속에서 오직 바른 메시지를 취하며 살도록 주님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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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주님이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갈망합니다.
    어두었던 지난 날들을 회상하며 예루살렘을 회복해 주시겠다는 말씀 안에서 새 땅과 새 하늘을 바라봅니다.
    비록 산들이 옮겨지고 언덕이 흔들린다 하여도 주님의 은총은 떠자지 않고 평화의 언약을 파기하지 않겠다는 말씀위에 현실에서 이루어질 하늘 나라를 꿈꾸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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