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51장: 하나님의 의

해설:

1절부터 8절까지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의’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의로우시다”라는 말은 하나님은 모든 일을 올바르게 행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의는 만백성의 빛이 될 것이다”(4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만이 모든 것을 보시고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바르게 판단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의가 모두의 희망입니다. 악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그분의 의는 심판이 되고, 신실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됩니다. 하나님은 “나의 의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고, 나의 구원이 이미 나타났으니, 내가 능력으로 뭇 백성을 재판하겠다”(5절)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의를 아는 사람들” 즉 “마음 속에 내 율법을 간직한 백성들”(7절)은 죄악 된 현실을 보고 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영원하며” 그분의 “의는 꺾이지 않을 것”(6절)이기 때문입니다.

9절부터 11절까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사야의 응답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영원하며 그 의는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듣고 이사야는 속히 그 구원을 이루어 주시기를 호소합니다. 

12절부터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이것은 이사야에게 하는 말씀이 아니라 이사야를 통해 유다 백성 전체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망각하고 이 땅의 압박자들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압박하는 사람들은 “죽을 인간들”이며 “한갓 풀에 지나지” 않습니다(12절). 반면, 하나님은 온 천지를 지으신 분이며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신 분입니다(15-16절).

17절부터 23절까지는 이사야가 유다 백성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마치 술에 취해 곯아 떨어진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전쟁으로 땅은 황폐해지고 자녀들은 모두 포로로 끌려 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제까지나 그대로 두고 보지 않으십니다. 이제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마신 진노의 잔을 거두어 그들을 압제한 사람들의 손에 쥐어 주실 것입니다. 

묵상: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 정의를 생각하고 요구합니다. 인간에게는 상황을 제대로 보는 능력도, 그 상황을 바르게 판단할 능력도 부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정의는 너의 불의가 되는 일이 허다합니다. 정의를 이루겠다고 세를 결집하고 때로 혁명을 시도했지만, 온전한 정의는 실현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내 편의 정의’ 뿐이고, 우리가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은 ‘한 편의 정의’뿐입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갈망합니다. 그분은 전지하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제대로 보십니다. 또한 그분은 진리 자체이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바르게 판단하시고,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바로 잡으십니다. 그것이 그분의 ‘쩨데크’ 즉 의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를 행하실 때면 그 앞에서 변명하거나 항의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신실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의는 구원의 빛입니다. 궁극적인 희망의 이유입니다.  

4 thoughts on “이사야서 51장: 하나님의 의

  1. 하나님의 의로움이 내 삶과 가정, 그리고 교회와 사회에 일어나기를 갈망합니다. 각자의 의를 가지고 남을 비판하고 판단하게 됩니다. 오늘 하루, 나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가 내 삶에 드러나기를 소망합니다. 겸손히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 입과 생각을 덮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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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버드의 마이클 센덜 교수가 하는 Justice 정의 강좌는 엄청나게 인기있는 클래스입니다. 교실이 아니라 공연 무대장 같이 큰 공간에 학생들이 빽빽합니다. 완전한 정의를 볼 수 없는 세상이기에 이론만이라도 철저하게 공부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사랑과 정의를 갈망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사랑을 주고 받으며, 정의를 이루며 산다는 뜻입니다.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크리스찬은 하나님의 정의를 구하는 사람입니다. 정의로운 사회가 되면 좋고, 안되면 할 수 없지 정도에 그칠 수 없습니다. 적극적으로 정의를 이루기 위해 애를 써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사회 참여 방식이나 개입 정도는 서로 다르더라도 정의를 향한 마음은 하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목사님 해설이 가리키듯 “나의 정의가 너의 불의가 되는 일이 허다”한 데 있습니다. 욕심이 끼어 들기 때문입니다. 죄가 정의를 변질시킵니다. 죄가 사랑을 오염시킵니다. 정의의 실현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정의를 아는 백성 (7절)” 답게 살게 하소서. 정의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며 나 또한 정의의 편에서 정의로운 판단과 선택을 하며 살게 하소서. 사랑과 정의를 행하며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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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의인은 없다 하나도 없다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자기의 의와 업적을 자랑하는 사람 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어리석게 살아 왔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오직 십자가의 은혜로 순종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추구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진노의 잔을 거두시겠다는 격려의 말씀에 위로를 받습니다.
    코로나 예방약과 치료제를 속히 허락하시는 소망을 품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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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기 보다는 시야에 들어오는 우상들을 편애한 이스라엘의 편협한 믿음에서 탈피해서 진정 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이땅에 이루어지기를 희망합니다.
    하나님 만을 의지하며 하나님 만을 경외하는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의 불꽃이 꺼지는 일이 없게 늘 깨어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는 습관으로 이끓어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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