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47장: 순식간에 당할, 생각지도 못한 파멸

해설:

바빌론이 세력을 떨치고 있을 때 그 제국은 “민족들의 여왕”(5절)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빌론을 향해 “처녀 딸 바빌론아”(1절)라고 부릅니다. 여왕처럼 행세하던 바빌론이 이제 여염집 아낙처럼 추락할 것이고(2절), 알몸을 드러내며 피신하게 될 것입니다(3절). 하나님께서는 잠시 동안 당신의 백성을 징계하기 위해 바빌론을 ‘진노의 몽둥이’로 사용하셨는데, 바빌론은 그 모든 것이 자신들의 능력 때문이라고 여겼고(6-7절) 그 결과 야만성과 잔인성의 끝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은 바빌론을 심판하기로 정하신 것입니다(5절).

바빌론이 심판 받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 하나님을 자처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나보다 더 높은 이가 없다”(8절, 10절)라고 생각하고 “악한 일에 자신만만”(10절) 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위세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심판이 이를 때 그들은 경악할 것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파멸이 순식간에” 그들에게 이를 것이기 때문입니다(11절). 그 때에는 그들이 그렇게도 의지했던 모든 점술과 복술이 무익하게 될 것이며, 곁에서 돕던 사람들도 모두 달아나 버릴 것입니다(12-15절).

묵상:

우리 같이 아무런 권력도, 권세도 없는 사람들도 조금만 편안해지면 마치 하나님이라도 된 것처럼 자만하고 교만해지는데, 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얼마나 더 그럴까 싶습니다. 권력에 숨겨진 최악의 함정은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게 만든다는 점에 있습니다. “나 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개역개정) 혹은 “나보다 더 높은 이가 없다”(새번역)고 생각하게 되고, 그 생각은 “악한 일이 자신만만” 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어느 정도까지는 지켜 보며 기다리십니다. 끝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악행을 계속할 때 하나님은 심판의 칼을 드십니다.  

어떤 권력이나 권세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자신에게 잠시 맡겨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자만심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악한 일을 하라고 그 자리에 앉힌 것이 아닙니다. 바빌론은 그 사실을 망각하고 자만에 빠졌습니다. 그로 인해 잠시 동안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 되고는 생각지도 못한 파멸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국가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역사 속에서 수 없이 반복되어 온 패턴입니다. 혹시 “생각지도 못한 파멸”이 다가 오고 있는 줄 모르고 주어진 권세로 악한 일에 자신만만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 봅니다.   

4 thoughts on “이사야서 47장: 순식간에 당할, 생각지도 못한 파멸

  1.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여 주신 주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그러나 주님의 백성
    답게 살지못하고 주님을 등지고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만 따랐기에 이방나라로 부터
    핍박과 곤욕을 당했읍니다만 신실하신 주님께서 가장 높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이방
    나라를 벌하시고 자녀들을 구해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부터 주님과 항상
    동행하며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이웃과 함께 오늘의 삶이 주님께
    드리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Covid 19 Vaccine 과 치료제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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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소셜미디어로 세계가 연결되니 예전에는 모르고 지나가거나 시간이 지난 뒤에 알았을 일들을 이제는 빨리 알게 되었습니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젠이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 (아르삭 독립국)을 놓고 격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일도 한 예입니다. 유명인이나 일반인이나 가릴 것 없이 페북이나 인스타그램 등에 올리는 사진과 짧은 글은 투명성과 접근성이 확연하게 좋아졌습니다. 물론 진실의 순도, 과연 몇 퍼센트가 진실이고 몇 퍼센트가 미혹 (눈가림, 과장, 포장, 오보) 인지는 그것을 보는 사람이 판단해야 하는 새로운 부담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2천 5,6백년 전이라면 너무나 먼 과거의 일입니다. 페르시아가 쓸어 버리기 전까지 바빌론은 세상의 꼭대기에 서있었습니다. “내려와 티끌에 앉아라”라고 1절에 명령하십니다. 이 말씀은 세상을 호령하는 권력자에게 우선적으로 하시는 말씀인 동시에 내게하시는 명령으로 듣습니다. 마음이 교만해지는 것은 왕 만의 병이 아닙니다. 내 안에서도 수시로 일어납니다. “기억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나도 남을 제압하고 이기고, 나만 옳다고 주장하고 싶어집니다. 남의 마음이 되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구약을 묵상하면서 느끼는 시간적 한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역사적인 지식이 부족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참 많습니다. 말씀을 읽었으면 실생활에 적용해야 한다는 교회의 가르침은 때로 억지춘향적인 답을 만들게도 합니다. 결론, ‘엑기스,” 요점정리 등의 단어가 성경을 공부하는데 도움 대신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소셜미디어를 지혜롭게 사용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데 유익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 시야 안으로 가까이 들어온 세상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우리를 생각하시는 하나님, 잘못 가고 있으면 돌이키게 하시고, 길을 못 찾고 있으면 보게 하시고, 지쳐 앉아 있으면 새 힘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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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바벨론의 교만과 자신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루었다라는 착각과 자만의 모습에서 제 삶을 돌이켜 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신 내 삶에, 나의 악함과 교만으로 인해서 내 삶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있지는 않는지 고민해보고 회개합니다. “Your wisdom and knowledge mislead you. (v.10). 교만하지 아니하고, 자만하지 아니하고, 겸손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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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오늘 주시는 말씀을 읽으며 과대 망상에 빠져 공중보건을 무시하고 제 멋 대로 나대는 사람이 눈에 선합니다.
    특히 잘 나갈 때 더더욱 조심하며 겸손히 행하는 지혜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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