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44장: 우상숭배의 어리석음

해설:

1절부터 5절까지에서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실 것에 대해 예언합니다. 그 때가 되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에 대해 자랑하며 자부하게 될 것입니다.

6절부터 20절까지에서 이사야는 참된 하나님은 오직 한 분 뿐이며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은 모두 헛된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우상은 다만 사람이 만든 것이며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섬기는 일은 어리석고 헛된 일입니다. 그들은 모두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인간이 섬기고 예배할 신은 “이스라엘의 왕이신 주, 이스라엘의 속량자이신 만군의 주님”(6절) 밖에 없습니다. 

21절부터 28절까지에서 이사야는 다시금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해 주실 것을 예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실 것이며(22절) 폐허가 된 유다의 성읍들과 예루살렘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26절).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을 목자로 세우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27절). 

묵상:

당시 나라들은 각각 그들이 섬기는 신의 형상을 만들어 그 위세를 과시했습니다. 한 나라의 국력은 곧 그들이 섬기는 신의 힘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나라들은 경쟁적으로 신상을 크고 화려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패전 국가의 국민으로 유배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눅 들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섬기던 하나님이 이방 나라들이 섬기는 우상보다 약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 중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내려 놓고 우상을 섬기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상황을 내다 보시고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크고 화려하게 만들었다 해도 우상은 우상일 뿐이며, 역사를 주관하는 참된 신은 오직 한 분, 당신 밖에 없다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우상은 무엇일까요?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사람이 새겨 만든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하지만 우상 숭배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우상 숭배로 옮겨갔을 뿐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예배하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그 자리에 다른 것을 세웁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람들 중에도 우상 섬기듯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불신의 땅에 유배 생활을 하는 우리는 진실로 하나님을 하나님 답게 섬기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봅니다. 

4 thoughts on “이사야서 44장: 우상숭배의 어리석음

  1. 너의 죄를 안개처럼 사라지게 하시고 짙은 구름을 거두듯 없애 버리신 하나님, 주님앞에선 벌거숭이가 되는 자신을 봅니다, 분홍같은 죄도 양털같이 하시며 눈과같이 희게 하시는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을 비추어 봅니다.
    우상이 되어버린 욕심과 분노에서 해방시켜주시고 오직 경건한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신실 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기를 갈망합니다.
    오늘 하루도 귀를 열고 눈을 떠서 하나님을 직시하는 은총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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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내가 예배하고 섬기는 신은 누구인가? 각 나라가, 각 가정이 섬기던 우상을 만들고, 신성하게 여기며, 자신의 목숨만큼 소중하게 여겼듯이, 내 삶에, 가정에 나도 모르게 섬기고 신성히 여기는 것이 있는지 돌아봅니다. 눈에 보이는 물체가 아닐 찌라도, 물질욕, 건강욕, 과시욕 등… 내 안에 선하지 않은 것으로 우상을 만들고, 그 것을 내 목숨과 같이 여기지 않은지 생각해봅니다.

    하나님만이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지금도 역사하고 계신 영원하시며 내주하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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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주님과 나 사이에 끼어있는 모든것이 우상입니다, 자식, 재물,명예, 혹은 권세 가
    우상이 될수있습니다. 영적으로 항상 깨어 있지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에
    못되고 헛된 우상이 들어와 작동하여 함께하시는 성령을 슬프게하는 경험을 종종
    합니다. 십자가 없이는 1초도 살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예루살렘이 회복 되듯이
    지금 멸시받는 교회가 회복되는 시간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이웃과 더불어 성도들이
    세상에서 높힘을 받는 삶을 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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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숲에서 저절로 자란” 나무로 몸을 덥히는 땔감으로, 음식을 해 먹는 연료로 쓰고 또 나머지 나무로는 우상을 만들어 자기 신이라 부르며 절하고 섬기는 인간의 어리석음은 일견 우습게도 보입니다. 우리 눈에는 취미 활동 정도로 밖에 안되는 일의 결과물이 어찌 숭배의 대상으로까지 확장되었을까요. 뭔가에 “빠져” 있으면 그 일에 지배 당할 때까지 마음을 내어주는 인간의 취약성 때문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은 안 믿는게 아니라 잘못 믿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믿지 않고 사는 것이 아니라 믿어야 할 여호와는 무시하고, 이방민족의 풍습을 따라 바알과 앗세라와 마르둑을 믿고 의지했습니다. 왕과 제사장부터 강한 군대를 가진 왕, 금과 은이 많은 부자나라를 부러워하고 그들을 따랐습니다. “너희도 하나님 같이” 라는 속삭임은 죄의 18번 애창곡입니다. 나와 하나님의 자리가 뒤바뀌게 만듭니다. 하나님 없이는 나도 없다는 진리를 망각하게 만듭니다.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을 잊게 만드는 헛된 신들 false gods 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특히성공과 인기가 인생의 최정점인 것으로 몰고가는 문화는 헛된 신들의 제조공장입니다. 능력과 재능이 주도하는 사회(meritocracy)는 혈통이나 계급으로 발전하는 사회보다 민주적이긴 하지만 그런 능력주의 사회의 가치관도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아이돌과 루저를 골라냅니다. 이런 문화 속에서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잊지 않고 인내하며 사는 것이 도전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우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흔히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통장과 연금, 보험증서…를 더 믿는 것 아닌가” 회개한다는 말들을 합니다. 나도 수시로 하는 질문입니다. 엄마가 안 보이면 두렵고 불안해서 자기 담요나 인형을 끌어안는 어린이나, 세상이 뒤숭숭하면 은행 잔고를 체크해보는 나나 똑같습니다. 엄마가 안 보여도 엄마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아이는 담요를 졸업합니다.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돈을 모으는 것은 죤 웨슬리의 당부이기도 합니다. 돈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면 여전히 담요를 만지작거리는 아이입니다. 능력과 인기가 사람의 값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면 들꽃과 시로부터 위안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헛된 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음성에 집중하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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