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43장: 하나님의 집요한 사랑

해설:

1절부터 7절까지에서 이사야는 유다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을 속량 하셔서 당신의 소유로 삼으실 것입니다(1절). 그분은 당신의 백성이 고난 받을 때 그곳에 함께 하실 것이며(2절) 결국 그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3-4절). 하나님께서는 이방 민족들 사이에 끌려가 유배 생활을 하던 당신의 백성을 다시 불러 모으실 것입니다(5-7절).

8절부터 13절은 하늘의 법정에 모든 민족의 대표들을 모아 각각 자신이 섬기는 신에 대해 변호하게 하는 장면입니다. 이 법정에서 이방 민족들이 섬기는 우상은 모두 헛것으로 밝혀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을 이 법정에 불러 참된 신은 당신 뿐이라는 사실을 증언하게 하십니다. 

14절부터 21절까지에서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에게 하실 일을 구체적으로 예언합니다. 그분은 바빌론에 군대를 보내어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는 것과 같은 사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바빌론에게 하실 일은 이집트에게 하신 일보다 훨씬 더 놀라운 일입니다. 18절의 “지나간 일”은 출애굽 사건을 의미하고, 19절의 “새 일”은 바빌론에서 해방되는 일을 가리킵니다. 

22절부터 28절에서 이사야는 죄악에 빠진 당신의 백성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전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싫증을 느끼고 죄악에 스스로를 넘겨 주었습니다. “너희 죄로 나를 수고롭게 하였으며, 너의 악함으로 나를 괴롭혔다”(24절)는 말씀은 죄의 본성을 잘 표현해 줍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죄를 용서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시는 이유는 그들에게 그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속되게 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25절). 그러므로 하나님이 심판 하신다고 해도 그들에게는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26-28절). 

묵상:

성경을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하나님의 집요한 사랑과 인간의 집요한 배반’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기에 피로를 느끼시지 못합니다. 반면, 인간은 그분의 사랑에 대해 너무도 자주, 너무도 쉽게 싫증을 느낍니다(22절). 그것이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된 일입니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집요한 사랑은 인간에게 그런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본질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를 멈춘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이기를 멈추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짓는 죄는 하나님을 수고롭게 하고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24절). 외도하는 것이 배우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행위가 되는 것처럼, 죄악을 탐하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죄로 인해 상처 받으십니다. 인간의 죄악에 대해 하나님은 때로 심판하십니다. 하지만 그 심판도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렇기에 심판 후에 그분은 반드시 그들을 용서하시고 회복 시키십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마음에 각인 시키려는 메시지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우리 죄로 인해 상처난 하나님의 마음을 보는 동시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그분의 사랑을 봅니다. 

4 thoughts on “이사야서 43장: 하나님의 집요한 사랑

  1. “끝없는 사랑으로 추하고 벌레보다 못한 저희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고
    고백은하지만 그 사랑과 은혜를 도저히 갚을수가 없습니다. 주님과 같은 다른신은 없습니다. 저희들은
    주님의 백성이고 주님은 우리들의 유일한 하나님이되어주신 주님께 감사를드립니다. 이웃과 함께 말씀을
    순종하며 열정으로 주님사랑 이웃 사랑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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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스라엘의 변심을 한심하게 보다가 나 자신에게도 똑같은 죄의 그늘이 있음을 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뿐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 뒤에 가득 쌓인 인간의 죄의 모습은 내 안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죄에 눌려 쓰러지거나 주저 앉지 않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손이 나를 붙잡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입니까?” 늘 주님께 묻습니다. “온갖 허물로 나를 지치게 (24절” 하는 이스라엘의 죄의 무게는 시지프스가 어깨에 메고 가는 돌덩이처럼 무겁고 산 정상에 내려놓으면 다시 굴러내려가 처음부터 또 새로 해야 하는 끝모를 허무의 연속이지만 “너희 죄를 용서하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니, 너희의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 (25절)”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기대어 나 또한 어제의 나를 잊기로 합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 한 분 뿐입니다. 이스라엘의 죄는 기억해야 할 것은 잊고, 잊어야 할 것은 기리며 사는 공허한 인생살이를 조장하고 권한 지도자에게 먼저 물어야 할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참 사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며, 제대로 사는 인생은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야 하는 것인지…하나님께 묻습니다. 매일 새 일을 시작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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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아주 유명한 말씀이고, 많이 들었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사야 43장만 읽었을 때 느끼는 감정과 사뭇 다릅니다. 이사야서 전체를 스토리로 전개하다보면, 오늘의 묵상 말씀이 더 새롭게 다가옵니다. 한 마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단어가 묵상이 됩니다. 사실은 그러하나, 상황과 환경의 조건은 그러하나,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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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너희 죄로 나를 수고롭게 하였으며, 너의 악함으로 나를 괴롭혔다” 인간의 본질을 Remind 시켜주시며 끝까지 사랑으로 다스려 주시는 하나님을 마주합니다, 틈만 나며 돌아서는 이스라엘의 고질병을 생각하며 나는 좀 다른가 비춰보면 별로 다르지 않는 것을 인정합니다.
    있는 그 대로 주님앞에 나가는 뻔뻔 스러움이 있지만 예수님의 보혈을 으지하며 하나님께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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