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41장: 우상과 하나님

해설:

1절부터 7절까지는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에 대한 예언입니다. 동방에서 일어난 “한 정복자”(2절)는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킨 고레스 왕을 가리킵니다. 그는 거침없는 기세로 바빌로니아를 비롯하여 주변 민족들을 정복할 것입니다. 이사야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고 전합니다(4절).

8절부터 20절까지는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를 예언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선택한 야곱아, 나의 친구 아브라함의 자손아”(8절)라고 부름으로써 그들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표현합니다. 고레스의 침략 전쟁으로 인해 모든 민족이 떨겠지만 그것은 유다 백성에게 기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일으켜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키고 그곳에서 유배자로 살던 유다 백성을 회복시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사막에서 잣나무와 소나무가 자라는 것과 같이 놀라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유다 백성의 회복을 보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진실로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21절부터 29절까지는 이방 민족들이 섬기던 우상에 대한 예언입니다. 우상들은 과거의 일도 알지 못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더더욱 알지 못합니다(22-23절).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일으켜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안 민족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의 신은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다는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예언하셨기 때문입니다(27절). 이로써 “부어 만든 우상은 바람일 뿐이요, 헛것일 뿐”(29절)이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묵상:

우상은 개인의 길흉화복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우주의 운행과 역사의 흐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아니,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욕구를 실현시켜 줄 도구로 만들어 섬기는 것이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참으로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며, 너희가 하는 일도 헛것이니, 너희를 섬겨 예배하는 자도 혐오스러울 뿐이다”(24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상을 예배하는 자들이 혐오스러운 이유는 역사와 사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오직 개인적인 평안과 형통과 축복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하나님은 우주의 운행과 역사의 흐름을 주관하시면서 개인 개인의 길흉화복에 관심을 두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은 개인적인 평안과 형통과 축복에만 관심을 두지 않고 우주의 운행과 역사의 흐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개인적인 평안과 형통과 축복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큰 뜻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합니다. 

불행하게도 오늘의 기독교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혐오스러운 사람들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자기 중심적이고 독선적이며 배타적이고 희생할 줄 모르는 사람들로 비쳐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뜻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긴다고는 하지만 그분을 향한 우리의 태도가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유다인들이 하나님을 그렇게 섬겼기 때문에 심판에 직면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고개를 숙입니다. 

4 thoughts on “이사야서 41장: 우상과 하나님

  1.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공부하는 일은 겹겹으로 싸인 양파를 열어가는 일 같습니다. 학교를 다녔어도 공부는 그저 수박 겉핥기 식으로 했다는 것이 지금 나타납니다. 모르는 것이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신문 기사에서 흔히 보는 단어라 쉽게 차용해서 쓰면서도 실제로 어떤 뜻인지는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부끄럽지만, “천민 자본주의”가 한 예입니다. 한국의 경제개발 시절에 강남의 논밭을 사들여 투기붐이 일어난 것과 연결해 추측했을 뿐인데 원래는 막스 베버의 사회경제학 이론에서 나왔으며, 유대인들의 경제활동이 단어의 기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의 종교적인 제약과 특별한 라이프스타일에서 비롯된 일종의 생존법이자 이방사회와 교류하는 한 접점에서 만들어진 경제 활동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해설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우상처럼 만들어버린 우리의 천박함을 생각하다 보니, 이익창출을 위해서라면 도덕이나 가치를 저버리는 경제관이 문제요 인간의 필요를 넘어 욕망의 경계선을 계속해서 확장해가도록 부추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타락의 중심임을 봅니다. 하나님이 날려버리고, 흩어버릴 우상들, 하나님의 물음에 한 마디도 대답할 수 없는 우상들에게 공연히 힘을 실어주고 의미를 부여하는 허무한 시간소모를 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계신데 제국의 왕들을 무서워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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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제가 믿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길흉화복에만 갇혀있는 하나님으로 착각하지 않게 하소서! 모든 우주를 운행하시는 전지전능하시면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놀라운 하나님을 내 삶의 축복과 평안에만 가두지 아니하게 하소서! 유다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이미 이루신 회복과 희망을 보지 못한채, 이 이말씀들을 들었을텐데, 그들의 삶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이루었다라는 믿음과 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었을 테고, 그 말씀을 무시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시는 그 희망과 회복의 말씀을 간직하며, 오늘도 기쁨으로 순종하며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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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보혈을 지나 아브라함의 자손이된것을 지나치게 믿고 주님사랑 이웃사랑을 내몸같이
    하지못한것을 고백합니다. 오염된 세상, 병들은 사회에서도 함께하시는 주님을 잊지않고
    두려움없이 살기를 원합니다. 재물, 명예, 권세 (우상)에 몰두하지 않는 결단이 필요
    합니다. 대통령 내외가 Covid 19 에 감염 되었다는 News 를 들었습니다. 인류의 모든
    역사와 우주를 운행하시는 주님밖에서는 살수 없음을 확인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생명의
    주님을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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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내가 기쁜소식 전할자를 예루살렘에 주리라 하신 하나님,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으신 하나님, 기쁜 소식을 전한 예수님을 주신 것 같이 다시 이세상에 예수님을 보내주시여 기쁜 소식을 전해줄 것을 기도합니다.
    특히 많은 기독교 인들에게 있는 혼란과 불결을 깨끗이 씻어 주시고 새롭게 태어나는 시간을 앞당겨 주실것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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