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34장: 복수하시는 하나님

해설:

1절부터 4절까지는 심판자 하나님에 대한 선언입니다. 이사야는 이 세상 모든 민족과 백성에게 이 사실을 전합니다. 심판자 하나님께서 작정하시면 이 세상만이 아니라 해와 달과 별들까지도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5절부터 17절까지는 에돔에 대한 심판의 예언입니다. 에돔은 요단 강 동편, 모압 남쪽에 위치해 있던 민족입니다. 야곱의 형 에서의 자손에게서 시작된 민족으로서, 주전 7세기부터 유다의 남부 지역을 침략하고 약탈했습니다. 에돔이라는 말이 후에 로마를 상징하는 말로 사용될 정도로 그들은 잔인성과 야만성으로 유명했습니다. 하나님은 에돔의 죄악을 그대로 두고 보지 않으십니다. 때가 되면 그분은 에돔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심판으로 인해 에돔 땅은 온갖 짐승들이 들끓는 폐허가 될 것입니다.

묵상:

“이 때가 바로, 주님께서 복수하시는 날이니”(8절)라는 말이 우리에게는 이상하게 들립니다. ‘복수’란 미성숙한 인간들이나 하는 행동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 5:44)고 말씀 하셨고, 바울 사도는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려고 애쓰십시오”(롬 12:17)라고 권면 했습니다. 이렇듯, 우리에게 복수를 단념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복수를 하신다니, 모순처럼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히브리어 ‘나캄’은 감정적인 대응으로서의 복수가 아니라 악행에 대한 마땅한 보응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복수는 정의롭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복수는 정의롭습니다. 그것은 감정의 폭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판단과 분별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지하신 분이 사랑과 정의의 기준에 따라 판단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여러분은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그 일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십시오”(롬 12:19)라고 권했던 것입니다. 

4 thoughts on “이사야서 34장: 복수하시는 하나님

  1. 에돔에 대한 하나님의 잔인 한 복수를 읽으며 하나님의 정체성에 혼동이 오는 듯 했지만 목사님이 설명으로 좀 이해가 되는 듯 합니다.
    원수를 사랑히고 너를 핍박한,ㄴ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다시 정리가 되면서 사람 안에 있는 감정을 추스려 봅니다, 복수의 갑정 때문에 내가 얼마나 흐들렸고 비참 한 지경에 빠진 적을 생각하며 그런 자기 파멸의 감정에서 승화하여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는 믿음을 구합니다.
    모든 선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묵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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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목사님께서 말씀해주신 히브릿어 ‘나캄’ 이라는 단어가 위로가 되는 하루입니다. 하나님께서 악행에 대한 마땅한 보응을 하신다는 단어가 참 새롭게 다가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내가 있는 이곳과 교회와 사회에 흘러가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올바른 기준에 의한 보응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양날의 검과 같지만, 그로 인해서 하나님의 올바른 심판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와 궁휼을 구합니다. 주님의 보혈로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덮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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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구약이 그리는 하나님이 이상하게 느껴졌던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같은 부분은 여전히 불편합니다. 인간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복수극이 하나님의 드라마에도 있다는 것이 영 껄끄럽습니다. 그런데 이런 심판의 상황은 인간이 빚은 비극이지만 또한 인간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모순적인 생각이 듭니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꼬이면 수퍼히로의 활약을 그린 오락물이 넘칩니다. 오락은 현실을 잠시 잊게 만드는 진통제가 되어 주는데 오락물의 주인공이 수퍼히로라는 것은 현실에서 부족한 것을 오락으로나마 채워보려는 보상심리 때문이기도 합니다. 수퍼히로들이 하는 일은 억울함을 풀어주고 악당을 응징하는 일입니다. 인류를 위험에 빠뜨리는 “악”과 싸우고 지구를 구하는 존재들입니다. 악인이 벌을 받지 않는 것처럼 분통 터지고 진 빠지게 하는 일도 없습니다. 시편에도 어찌하여 원수를/악인을/악을 그대로 두고 보시느냐는 한탄이 여러번 나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도 그런 기대를 갖고 있었습니다. 메시야는 수퍼히로의 다른 이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일어나면 우리가 살아남을 길은 없습니다. 반역의 댓가를 치루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사야가 보는 하나님의 복수의 날은 사람이 없어진 날입니다. 34장에서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에돔이 사라졌습니다. 악의 상징 같은 에돔이 없어졌으니 평화가 와야 하는데 땅은 대신 야생 동물들로 채워집니다. 짐승들이 땅을 나누어 갖습니다. 메시지 성경은 이 짐승들이 그냥 동물이 아니라 어둡고 습한 데서 번식하고 자라는 악 (breeding, brooding evil) 이라고 번역합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왜 악을 방치하실까의 근본적인 질문은 여전히 남지만, 예수님은 “사람”을 회복하신 분이라는 관점이 새롭게 생기는 아침입니다. 사람은 무엇인가. 사람답게, 사람으로 산다는 뜻을 매일 되새기고 사는가…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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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말씀에 귀를 기울리 지않는 모든 종족이 에돔 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죄악으로 보응을
    받기전에 말씀에 귀를 기우리고 듣고 순종 하기를 원합니다. 나라의 지도자 부터 시작해서
    모든 백성이 십자가 앞에 무릎을 끓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질병으로 산불로 허리케인으로
    경고하시는 주님께 회개하는 민족이 되도록 자비를 간구합니다.
    11월3일 선거 결과를 따르지 않겠다는 News 를 듣습니다. 이웃과 함께 모국과 미국의
    장래를 위해 기도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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