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32장: 공의로 다스릴 왕

해설:

1절부터 8절까지에서 이사야는 “공의로 통치하고” “공평으로 다스릴”(1절) 지도자를 염원합니다. 백성의 필요와 요구에 귀를 기우리고 사려 깊게 행동하며(3-4절) “고귀한 일을 계획하고, 그 고귀한 뜻을 펼치며 사는”(8절) 지도자는 백성들에게 “광풍을 피하는 곳과 같고, 폭우를 막는 곳과 같게 될” 것이며 “메마른 땅에서 흐르는 냇물과 같고 사막에 있는 큰 바위 그늘과 같을”(2절)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지금 유다를 다스리고 있는 지도자들은 불의로 통치하고 공정하지 못한 결정을 일삼고 있습니다.  

9절부터 20절까지에서 이사야는 다시 현실로 돌아옵니다. 불의와 불공정을 일삼는 지도자들을 남편으로 둔 덕분에 지금 호의호식하며 걱정 거리 없이 사는 아내들은 일 년도 되지 않아서 참혹한 재앙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지금은 웃고 즐길 때가 아니라 베옷을 입고 몸부림 쳐 회개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회개할 때 주님께서는 다시 영을 보내 주실 것이고(15절), 그렇게 되면 “광야에 공평이 자리잡고, 기름진 땅에 의가 머물 것”(16절)입니다. 공평과 의가 자리를 잡으면 평화와 안전이 찾아옵니다. 

묵상:

“기회는 평등할 것이며, 과정은 공정할 것이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 우리 모두는 가슴 설레었습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바라는 세상이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마땅한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이 경제적인 번영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의 열매는 평화요, 의의 결실은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다”(17절)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쉽지만 그것을 실제로 이루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역사 상 어느 통치자도, 어떤 정권도 만족할만큼 평등과 공정과 정의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상과 목표를 높게 제시하는 정권일 수록 더 큰 실망감과 배반감을 안겨 주었습니다. 현실 정치에서 이룰 수 있는 평등과 공정과 정의는 지극히 제한적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실 정치인에게 그리 큰 기대를 걸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조금 더 나은 지도자를 택하는 것 뿐입니다. 

완전한 평등과 공정과 정의는 오직 하나님 나라에만 있습니다. 그것을 이루어 주실 분도 오직 하나님 뿐입니다. 그래서 현실 정치에 실망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또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립니다. “장차 한 왕이 나와서 공의로 통치하고, 통치자들이 공평으로 다스릴 것이다”(1절)라는 예언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온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4 thoughts on “이사야서 32장: 공의로 다스릴 왕

  1. 공의와 정의는 각 나라마다, 각 기관 마다, 각 개인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공의 그리고 정의의 개념과 사상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정의가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기준이 되어지는 나라가 성취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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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세상에 조금 선한 군주는 아주드물고, 덜 선한 군주는 귀 하고 악한 군주는 흔합니다.
    오직 주님만이 완전하시고 정의와 공의와 공평으로 다스리시고 저희들이 안전과 평안을
    누리도록 하실것입니다. 저희들의 왕은 오직 주님 이십니다
    질병이 없고 눈물이 없는 하늘나라를 이웃과 더불어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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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현대 강대국 중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최고의 권력을 장악한 사람은 정해진 임기 없이 오래오래 통치를 합니다. 투표를 통해 국민의 뜻을 묻는 일은 아예 없거나, 있어도 형식일 뿐입니다. 투표는 민주주의를 돌리는 동력입니다. 표에서 힘이 나오고, 그 힘으로 민주사회가 돌아갑니다. 국민이 능동적인 위치에 서는 때가 투표권을 행사할 때입니다. 투표일에는 국민이 “갑”입니다. 새로운 정부가 탄생해 몇 년 동안 나라를 이끌어 나가는 동안 국민은 적극적이거나 능동적으로 나랏일에 참여하게 되지 않습니다. 그 일을 하라고 뽑아준 사람들에게 맡기고 국민은 각자 생업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투표에 올인하는 쪽은 국민입니다. 좋은 사람으로 보여 뽑아주지만 어떻게 변할 지도 모르고, 또 표를 받으려고 좋은 사람인척 했을 뿐 딴 마음이 있을 수도 모르니 그저 “믿는 마음으로” 투표할 뿐입니다. 오늘 본문 중간에 여자들에게 하는 예언이 나옵니다. 왜 여자들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수동적으로 사는 존재, “을”의 집합이 여자들이라서 그랬을 것 같습니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어렵게 살던 사람이 더욱 어려워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예비해 둔 양식, 비축해 둔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약자는 스스로 일어날 길이 없습니다. 연못에 물이 동해도 그 안까지 누군가가 데려다 주어야 합니다. 남을 도와 주었다 후회를 하는 편이 안 도와주고 후회를 하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서로를 따뜻한 눈으로 보는 세상을 꿈꿉니다.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 일이 자연스럽고 편한 세상이 오기를 원합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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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꿈에만 있을 수 있는 공정과 공의를 생각해봅니다, 과거에도없었고 현실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미래에도 존재 할 수 없는 공정과 공의를 주님의 나라에서 기대해 봅니다.
    주님 오시는 그 날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며 어떠한 경쟁도 없고 서로가 서로를 즐거워하며 하나님만을 찬양하는 주님의 나라를 꿈 꾸어 봅니다, 주님 내 꿈을 현실로 옮겨놓아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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