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28장: 농부이신 하나님

해설:

1절부터 6절까지는 북왕국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예언입니다. “에브라임”은 북 이스라엘의 다른 이름이고, “사마리아”는 북 이스라엘의 수도입니다. 이사야가 활동할 당시에 북 이스라엘은 이미 앗시리아에게 멸망 당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예언이 아니라 애가라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는 사마리아에 있는 “주님의 남은 백성”(5절)을 위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줍니다.

7절부터 13절까지는 남왕국 유다에 대한 예언입니다. 유다 백성은 마치 술에 취해 주정 부리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그 책임은 “제사장과 예언자”(7절)에게 있습니다. 그들은 독한 술에 취한 사람처럼 “환상을 제대로 못 보며, 판결을 올바로 하지”(7절) 못합니다. 그들은 이사야의 예언을 비난하고 조롱하고 거부합니다(9-10절). 영적 지도자들이 이렇게 타락하니 백성도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이방 민족의 손에 부치실 것입니다.

14절부터 22절까지에서 이사야는 유다의 실책을 지적합니다. 그들은 앗시리아로부터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이집트와 협약을 맺으려 합니다. 이사야는 이집트와 연맹하는 것을 “죽음과 언약을 맺고” “스올과 협약을 맺는”(15절)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이집트의 도움을 받으면 절대 안전할 것이라고 그들은 믿었지만15절), 절대 안전은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16-17절). 하나님을 등지고 이집트와 언약을 맺은 유다는 결국 앗시리아로부터 큰 재앙을 맞게 될 것입니다(18-20절). 그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입니다(21절). 따라서 이사야는 자신의 경고를 비웃지 말라고 덧붙입니다(22절).

23절부터 29절까지는 하나님을 농부에 비유합니다. 농부는 밭을 갈기도 하지만 씨를 뿌리기도 하고 기르기도 합니다. 추수할 때 농부는 곡식단을 때리지만 씨앗이 으깨질 정도로 심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처럼 하나님은 때로 밭을 갈듯 심판도 하시지만 씨를 심고 가꾸기도 하십니다. 추수하듯 징계도 하시지만 씨앗이 깨질 정도로 심하게 하지는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에 있기 때문입니다. 

묵상:

이사야는 여기서 하나님을 농부에 비유합니다. 이스라엘이 유목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기에 목자의 비유는 흔히 보지만 농부의 비유는 보기 드뭅니다. 농부의 비유와 목자의 비유는 하나님의 성품의 서로 다른 면을 드러내 보여 줍니다. 

농부가 씨앗을 가꾸거나 나무를 가꾸는 것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보살피는 과정과 닮았습니다. 농부의 궁극적인 목적은 심은 씨앗과 가꾸는 나무가 많은 열매를 맺게 하는 데 있습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농부는 때로 아픈 결정을 해야 합니다. 땅을 갈아 엎어야 하고, 싹을 솎아 내기도 해야 합니다. 나무 가지를 잘라 주어야 하고, 열매가 너무 많이 열리면 일부를 따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농부에게도 아픈 일이고 희생 당하는 싹이나 나무 가지에게도 아픈 일입니다. 하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입니다. 

그것처럼 하나님도 당신의 백성을 “열매 맺는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 때로 징계도 하고 심판도 하십니다. 잘려 나가는 나무 가지가 농부에게 항변할 수 없는 것처럼 심판과 징계를 당할 때 하나님께 항변할 수 없습니다. 묵묵히 하나님의 처분을 받을 뿐입니다. 나무를 자르는 농부에게 계획이 있는 것처럼 심판하시는 하나님께도  계획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사야의 고백처럼 “주님의 모략은 기묘하며, 지혜는 끝없이 넓다”(29절)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4 thoughts on “이사야서 28장: 농부이신 하나님

  1. 29절의 말씀이 마음에 울립니다. “하나님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리라” 농부는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서 최선의 방법으로 땅과 열매를 경영하며 여러 지혜들을 사용합니다. 곡식의 입장에서 보면 “왜?” 라는 물음이 있을 때도 있지만, 농부의 궁극적인 목적은 좋은 열매를 많이 얻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곡식인 입장인 저는 “왜?”라는 물음이 있을 수 있지만, 순종하며 하나님의 선하심, 기묘하심과 지혜를 믿고 바라보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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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내가 하는 말이 지혜의 말인지 “단순한 말을 똑같은 방법으로 되풀이 하는” 것인지 생각해 봅니다. 생각이 말이 되어 나올 때는 소통을 하는 데 목적이 있지, 소음 밖에 안되는 가치 없는 말이 되면 안될 것입니다. 말을 “잘” 해서 소통에 능한 것도 중요하지만 한 발 더 나아가 진정과 지혜를 담은 양식의 말이 되는지도 생각해 봅니다. 어린아이의 말이 단순하고 똑같은 되풀이일지라도 진실을 담기도 하고 어른의 변론과 연설이 시간의 낭비가 되기도 합니다. 16절에 나오는 주춧돌, 얼마나 견고하지 시험해본 모퉁잇돌에 대해서도 생각해 봅니다. 거짓말로 몸을 피하고 속임수를 써서 숨는 사람은 홍수가 닥치면 휩쓸리고 맙니다. 홍수가 오기 전에는 다 튼튼해 보입니다. 좋은 시절에는 빈 말인지 진심인지 가려지지 않습니다. 어려운 때를 거쳐 믿음직한 주춧돌, 단단한 모퉁잇돌과 같이 된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속이 꽉 찬 사람, 자아의 자랑거리로 찬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지혜가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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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스라엘과 유다의 상황이 지금 우리가 격고있는 남북한의 처지를 연상하게 하는 말씀이고
    주님의 경고입니다. 두나라 지도자들이 술에 취해있습니다, 공의의 주님께서 거짖으로 위기를
    모면한자, 속임수로 몸을 숨긴자를 심판하실것을 믿습니다. 주님의 경고에 비웃지말고,주위의
    강국에 눈치보지말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을 원합니다. 끝없이 지혜로우신 주님의
    가르치심을 이웃과 함께 배우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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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예나 지금이나 독한 술에 취한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환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며 휘청거리면서 주님을 욕되게 하는 사례가 종종 있슴을 보아왔습니다, 하나님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며 이단으로 흘러가 주님의 백성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잘 못된 길로 가는 많은 사람들을 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시온에 모퉁이 돌을 놓고 주춧돌로 삼으사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님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지혜를 믿고 예수님만을 의지하며 따르는 믿음으로 성장하기를 간구합니다.
    주님의 묘락은 기묘하며 지혜는 끝없이 넓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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