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26장: 우리는 구원하지 못한다

해설:

1절부터 6절까지는 남왕국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를 노래합니다. 이사야는 “주님께서 친히 성벽과 방어벽이 되셔서”(1절) 예루살렘 성이 안전하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유다 백성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보다 강한 나라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교만한 자들을 비천하게 만드시는”(5절)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당신을 한결같이 의지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평화에 평화를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3절). 그래서 이사야는 “주 하나님만이 너희를 보호하는 영원한 반석이시다”(4절)라고 말합니다.   

7절부터 15절까지에서 이사야는 주님께 기도합니다. 먼저 그는, 주님께서는 의로운 사람의 길을 평탄케 하시는 분이기에(7절) 율법을 따르며 주님께 희망을 걸겠다고 고백합니다(8절). 그는 주님께서 심판의 팔을 펴실 날을 기다립니다. 그 때에야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비로소 의가 무엇인지 배우게 될 것”(9절)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악인들은 여전히 의롭게 살기를 거부할 것입니다(10절).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은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주님의 대적에게 보여 주시는”(11절) 수단이 될 뿐입니다. 그 날이 오면, 하나님은 이 세상의 권세자들을 모두 꺾으실 것이고(12-14절) 당신의 백성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15절).

16절부터 21절에서 이사야의 기도는 계속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진행되는 동안 하나님의 백성은 해산하는 여인처럼 주님을 간절히 찾으며 몸부림 칠 것입니다(16-17절). 그러나 그들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을 것입니다(18절). 유다 백성도 그 심판으로 인해 멸망 당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회복하는 것은 그 이후의 일입니다. 심판 후에 일어날 유다의 회복은 마치 죽어서 땅에 묻혔던 사람들이 일어나는 것처럼 놀라운 일이 될 것입니다(19절).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면 그 심판이 끝날 때까지 견뎌야 합니다(20절). 그 심판으로 인해 죽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살아 남는다면 하나님께서 쓰실 거룩한 그루터기로 남아야 합니다. 

묵상:  

인간의 능력은 한계가 없어 보입니다. 과학 문명이 완성되는 때가 오면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데우스’가 될 것이며, 인간의 마지막 한계였던 죽음까지 극복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구원은 과학에서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읽는 이사야의 예언 즉 “우리가 임신하여 산고를 치렀어도, 아무것도 낳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이 땅에서 살 주민을 낳지도 못하였습니다”(18절)라는 말씀은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우리가 갈망하는 구원은 인간에게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전능자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그분이 말씀하시면 죽어서 땅 속에 묻혀 흙이 되어 버린 사람들이 일어날 것입니다(19절). 그것이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는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증명되었습니다. 인간의 손으로 과학 문명을 완성하는 날이 온다면 그 날은 낙원을 이루는 날이 아니라 지옥문을 여는 날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가 바랄 것은 오직 하나님의 다스림입니다. 그분을 믿고 의지하며 그분의 의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미래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비입니다.  

4 thoughts on “이사야서 26장: 우리는 구원하지 못한다

  1. 평강의 왕으로 오신 하나님,감사합니다.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으로 지키신다 (v4)” 그 이유는 그가 주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평안, 평강은 단순히 편안함, 편리함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오는 신뢰임을 기억합니다. 오늘도 평안함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하루를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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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읽는 것을 멈추고 머물러 생각하게 만드는 구절이 연이어 나옵니다. “영원토록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여호와는 우리의 영원한 반석이시다 (4절)” “주께서 교만한 사람들을 낮추시고…그 성을 땅박닥에 으깨셔서, 먼지로 만드신다 (5절)” “가난한 사람과 억눌린 사람들이 발로 그 성을 짓밟을 것이다 (6절)” “내 영이 밤새도록 주님을 찾는 이유는, 주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 악을 물리치시고 이 땅에 정의를 가져오실 것이기 때문 (9절)” “주께서 악한 사람에게 선하게 대하셔도 그들은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10절)”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다른 주인들이 우리를 지배하였으나, 우리는 오직 주님의 이름만 기억합니다 (13절)”…..인간의 과학 문명이 끝을 모르게 발전하여 불치병이 없어지고 불로장생, 혹은 불로불사까지 간다해도 사람이 과연 신이 될 수 있을까요. 사람이 자신에게 삶의 동기와 목적을 부여할 수 있으며, 악을 이기고 고통의 근원까지도 없앨 수 있을까요. 나의 의식과 무의식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면 “꿈”은 사라지지 않을까요. 내가 다 할 수 있게 된다면 남도 다 할 수 있다는 뜻이고 결국 인간종은 거대한 단일 생명체가 되어 죽지도 않고 그저 있기만 한 그런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인간이 인간인 것은 죽음이 있기 때문이라는 역설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죽지 않는다면 지금 우리가 살아 있는 일, 살면서 하는 일이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을 것입니다.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면, 시간의 속도에 맞추려고 달리지 않아도 된다면 정지한 것이나 다름이 없고, 생명의 정지는 영생이 아니라 죽음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신론자들은 신이 없다고 믿지만 그것은 유신론자들이 믿는 신을 부정하는 것이지 신의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신의 자리에 다른 무엇인가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을 묵상하게 하는 본문입니다. 영원하신 분. 나의 인생에 끝이 있기에 그분의 영원하심을 찬양합니다. 나의 성은 무너져서 먼지가 될 수 밖에 없음을 알기에 영원한 반석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직 주님 만을 기억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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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호모 데우스 되려고 발악을하는 세상을 보며 오래전에 하나님같이 되려던 천사와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의 심판을 기억합니다. 너무 늦기전에 십자가의 은혜를 꼭
    붙잡고 문어지지 않는 성벽, 반석과 같은 요새안에 모두 들어오기를 원합니다.
    코로나로 산고를 치르는 세상에 평강의 주님을 이웃과 함께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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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의로운 사람의 길을 곧게 트이게 하시고 평탄하게 하시는 주님 , 주님의 의를 갈망하며 주님의 의를 구하는 많은 당신의 백성들이 코비드에서 해방되기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밤에 주님을 사모하며 간절하게 주님을 찾습니다,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주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며 주님의 자비를 구합니다.
    헛되이 한 평생을 살다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게 주님의 그림자로 보호하여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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