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16장: 신실과 사랑으로

해설:

이사야는 15장에서 시작한 모압에 대한 심판의 예언을 계속 이어 갑니다. 심판의 날이 다가 올 때 모압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유다의 통치 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1-5절). “다윗의 가문에서 왕이 나와 신실과 사랑으로 그 백성을 다스릴 것”(5절)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다 백성은 모압 백성을 받아 주지 않을 것입니다(6절). 모압은 요단 강을 사이에 두고 이스라엘과 대치했던 나라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유랑을 거쳐 가나안 땅으로 향할 때 모압 왕 발락은 그들의 길을 막아섰던 적이 있습니다(민 22-24장).  그래서 모세는, 모압 사람은 영원히 주님의 총회에 들지 못하게 하라고 명령합니다(신 23:3). 

모압 백성은 한 때 화려하게 세력을 확장해 나가던 과거를 생각하며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현재를 두고 통곡하게 될 것입니다(7-8절). 그들의 참담한 운명을 미리 내다 보면서 이사야는 다시금 통곡합니다. “모압을 생각하니, 나의 심장이 수금 줄이 튀듯 떨리고, 길하레셋을 생각하니 나의 창자가 뒤틀린다”(11절)고 말합니다. 이사야는 삼 년 안에 이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고합니다(13-14절).

묵상:

모압에 대한 심판 예언 중에 이사야는 유다의 미래에 대한 짤막한 예언을 더합니다(4-5절). 모압이 유다의 통치 하에 들어가려는 이유는 유다의 군사력이나 경제력 때문이 아닙니다. 지금의 유다 역시 심판에 직면해 있습니다. 유다가 희망이 되는 이유는 “다윗의 가문에서 왕이 나와 신실과 사랑으로 그 백성을 다스릴 것”(5절)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가 되면 그 땅에서 “폭력이 사라지고, 파괴가 그치고, 압제자들이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출 것”(4절)이며, “옳은 일이면 지체하지 않고 하고, 정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 줄 것”(5절)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가 되면 모압 뿐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민족이 그 나라로 모여 들 것입니다. 

유다 백성처럼 우리도 신실과 사랑으로 백성을 다스릴 왕을 기다립니다. 폭력과 파괴가 그치고 정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 줄 지도자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의 가문에서 나온 왕” 즉 메시아가 다시 오실 때에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지만, 온전한 마음으로 그 이상을 추구하는 지도자들을 보고 싶습니다. 

5 thoughts on “이사야서 16장: 신실과 사랑으로

  1. 본문 마지막 절에 “품꾼이 정해놓고 일하는 햇수와도 같다”는 표현에서 우리 삶의 끝을 봅니다. 우리 또한 다 품꾼이요 비정규 계약직과 다름 없습니다. 그 날은 모르지만 끝이 정해져 있음은 분명합니다. 계절을 따라 옮겨 다니며 노동을 하는 이주 노동자, 날마다 작업 현장에 뽑혀 가는 일일 노동자, 일정 기간 고용되어 근무하는 계약 직원…너그러운 포도원 주인의 비유를 들어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 주시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심판을 앞둔 “너희들을 위한 내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며 “수금처럼 모압을 생각하며 통곡하는” 이사야의 마음에 연한 새 순이 돋아나는 희망의 자리가 있음을 봅니다.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눈물로 부드러워진 땅에서 올라오는 싹을 보기를 원합니다. 삼 년 안에, 그러나 하룻밤이면 (gradually and suddenly) 날라가버릴 심판 앞에서 눈물로 회개하며 공평과 정의로운 일만 하는 진실한 왕을 기다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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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하는 신실한 왕, 지도자를 꿈꾸게 됩니다. 모압과 같은 적대적인 나라들도 품을 수 있고, 그들이 존경할 수 있는 그런 지도자, 하나님의 신실함과 사랑으로 다스리는 지도자가 여러나라에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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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세상이 심판대앞에 서는 날을 생각하며 애통하는 선지자의 마음을 원합니다.
    언젠가는 주님앞에 서야 하는데 천국 잔치에 초대받는 믿음의 삶이 필요합니다.
    메일 일상 생활에서 오신 주님과함께 영생과 천국을 미리땡겨서 사는 십자가의 길을
    세상에 선포하고 다시오실 예수님을 간절히 기다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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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주님을 등지고 살아가던 모압의 비참 한 운명을 보며 주님 곁을 벗어나면 어떤 어려움이 닫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끝나는 것이 아니고 다웃의 뿌리에서 전능자가 나와 인류에 새 희망을 주며 주님의 정의가 실천되는 그 날을 예시해 주고있습니다.
    정의가 흐르고 평화가 넘치는 주님의 나라가 빨리 도래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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