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14장: 권력과 교만

해설:

1-2절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회복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그들을 거룩한 제사장의 나라로 회복시키기 위함입니다.

3절부터 23절까지는 바빌론 왕의 죽음에 대한 예언입니다. 학자들은 이 왕이 누구인지에 대해 아직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왕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예언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모든 권력자에게 해당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바빌론을 진노의 몽둥이로 사용하여 여러 민족들을 심판하신 후에 바빌론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의 손을 펼치시자 영원할 것 같던 절대권력은 한 순간에 땅에 떨어지고 맙니다. 그 왕의 폭정에 눌려 있던 사람들은 그의 갑작스러운 몰락에 놀라고 또한 기뻐합니다. 그 왕은 죽어서 음부의 세계로 떨어질 것이며, 그곳에서 그처럼 절대 권력을 누리다가 떨어진 수 많은 권력자들과 함께 참담한 운명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24절부터 27절까지는 앗시리아의 멸망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사야가 이 예언을 전할 때 바빌론은 아직 부상하지 않았고 앗시리아가 호령할 때입니다. 무서운 기세로 주변 민족들을 점령해 가던 앗시리아도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오면 역사에서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28절부터 32절까지는 불레셋의 멸망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 예언은 아하스 왕이 죽던 해(주전 712년 경)에 받은 예언입니다. “너를 치던 몽둥이”(29절)는 앗시리아를 가리킵니다. 불레셋은 팔레스타인과 이집트를 잇는 통로에 있었기에 열강들의 갈등에 자주 말려 들어갔습니다. 그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불레셋은 유다와 동맹하려 했으나 유다는 그 제안을 거절합니다.

묵상:

“권력은 타락하는 경향이 있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타락한다”는 말은 액튼 경이 한 말입니다. 권력의 맛에 도취되면 그 권력을 지키고 싶어지고 또한 키우고 싶어집니다. 그 목적을 위해 어떤 수단이라도 동원하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권력의 자리에 앉아 있다 보면 자신이 하나님인 줄로 착각하게 됩니다. 절대 권력의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예배는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예배이지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앞에 무릎 꿇는 예배가 아닙니다. 입으로는 “God bless you”라고 말하지만 그의 머리 속에서는 “당신들의 운명은 나에게 달렸다”고 속삭입니다. 

바빌론 왕의 몰락도, 앗시이라 왕의 몰락도 교만이 초래한 비극입니다. 불레셋 같은 작은 나라의 경우도 다르지 않습니다. 크거나 작거나 간에 모든 권력은 인간으로 하여금 교만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교만은 패망으로 인도합니다(잠 18:12). 

평생 갈 것 같던 아베의 오만한 권력이 건강 문제로 인해 갑자기 몰락하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으며 역사는 반복된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절대 권력의 자리에서 오만무도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권력자들이 아베의 몰락을 보고 스스로를 돌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권력의 자리에서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살펴 국민을 위해 섬기는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4 thoughts on “이사야서 14장: 권력과 교만

  1. 디지털로 시간을 보고 살지만 달력 하나쯤은 집에 걸어두고 삽니다. 새 달이 오면 달력을 한 장 넘기며, “세월 참 빠르다. 벌써 또 새 달이네…” 하던 엄마를 따라 나도 똑같이 하며 엄마를 추억합니다. 한국 뉴스에 올라오는 광화문 집회발 코로나 감염 확산과 교회 대면예배 강행 등의 소식이 마음을 착잡하게 한 지 여러날이 되었습니다. 종교 장사요, 교회와 목사라는 이름을 내걸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는 염치없는 행동으로 밖에는 볼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그것을 믿고 따라다니는 부대들의 한심한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교회가 되지 않는 한 이제 교회는 없다는 무겁고 답답한 심정이 됩니다. 미국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강남순 교수의 컬럼을 읽으며 기독교와 정치, 미디어 세 축이 함께 굴리는 서커스 공 (혹은 그 셋이 운전하는 버스) 을 떠올렸습니다. 나치 권력에 동조하며 따라간 교회와 언론의 행동이 두고두고 사죄를 받을 일이 되어버린 역사의 흐름도 기억에서 멀지 않습니다. 일본이 선진국 맞나 싶을 정도로 수상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며 호령하더니 권좌에서 물러나는 회견을 세계가 보았습니다. 크리스찬으로 산다는 것은 세상 풍조에 따르지 않고 그에 맞서는 가치, 나아가 세상을 뛰어넘는 믿음을 가꾸는 데 있지만 세상에 속한 이웃과 자연을 사랑하는 일의 어려움을 포기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랑과 정의를 한 입으로 말하고 이룰 수 있는 데 까지 가야 합니다. 한국 교회가 얻어먹는 욕과 손가락질이 나를 향한 것은 아닌지 자주 돌아보게 됩니다. 가게에서 멀지 않은 곳에 John MacArthur 목사의 Grace Community Church가 있습니다. 메가처치 입니다. 주지사 행정명령을 거부하며 대면예배를 강행하고 있습니다. 주일 아침에 가게 가는 길에 보면 마스크도 쓰지 않은 교인들이 교회 앞에 모여 있습니다. 누가 “맥아더 목사는 바이블은 사랑해도 이웃은 사랑하지 않는다”고 페북에 올렸는데 딱 맞는 지적입니다. 이제는 동네 주민들이 집 마당에 “Love thy neighbors and Wear A MASK!” 라고 푯대를 만들어 꽂아 놓았습니다. 교회가 주차장으로 쓰고 있는 땅의 임자가 더이상 빌려주지 않겠다고 통보했다는 뉴스도 들립니다. 메가처치로서, 유명한 목사요 성경교사로서 세상에 지금 어떤 메세지를 보내고 있는지 묻게 됩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왕좌의 게임” 을 하는 사람들 만을 향한 것이 아님을 보게 하시고, 교만을 경계하며 사랑과 정의를 마음에 간직하고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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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권력이라는 힘 앞에서 겸손하기를 기도합니다. 작든지, 크든지, 권력을 남용하여 사람들을 패망의 길로 이끌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리에서,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하나님께서 내 삶에, 교회에, 국가에 주인이심을 기억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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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국가나 정치가나 심지어 종교 자도자 까지도 세상의 권력을 오래 가지고 있으면 타락하고
    세상과 타협하는것이 본성이고 결국은 심판대앞에 서게되내요. 권력을 따르지않고 오직 주님
    말씀을 청종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교회와 교인들부터 회개하고 주님을 향하여 돌아서서
    세상에 거룩한길을 보여주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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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그 당시 중동 각국의 흥망성쇠를 보며 시리아, 앗시리아, 바벨론,파사 한때 중동 전체를 호령했던 권력자들도 하나님의 섭리 앞에는 추풍 낙옆 같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권력의 무상 함 속에 하나님의 섭리에 머리를 숙입니다.
    주님 만이 나의 방패이며 나의 반석임을 잊지않게 하시고 주님의 권능 앞에 잠잠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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