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1장: 회개하라!

해설:

예언자 이사야는 “유다 왕 웃시아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주전 7백년 후반에서 6백년 중반까지)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해 예언을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당시 유다 백성의 타락상을 책망하며 그들이 죄로 인해 받을 심판에 대해 예고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백성을 다시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희망을 주십니다. 1)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에 대한 고발, 2) 그 죄에 대한 심판 그리고 3) 회개와 회복의 희망은 이사야서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입니다.

이사야는 앗시리아의 공격으로 인해 유다 전체가 심각한 타격을 입고 일부만이 간신히 살아 남은 상황에서 예언의 말씀을 전합니다. 먼저 그는 그렇게 심판 받을 수밖에 없었던 시온의 타락상을 고발합니다(2-17절). 예언자는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저를 어떻게 먹여 키웠는지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3절)라는 하나님의 탄식을 전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맞을 짓만을 골라 행해 왔습니다(4-6절). 그로 인해 땅은 황폐해지고 성읍들은 불에 타버렸습니다(7-8절). 그나마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들 가운데 얼마라도 살아 남은 것이 다행입니다(9절).

하나님은 특별히 그들의 영적 타락을 신랄하게 고발하십니다(11-14절). 그들의 제사와 제물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성전에 모여 제사 드리는 일에는 열심이지만, 실제 삶에 있어서는 부정과 불의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팔을 벌리고 기도한다 하더라도, 나는 거들떠 보지도 않겠다”(15절)고 하십니다. 그들의 손에 피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15절). 제사 드리기에 앞 서 그들은 스스로를 정결하게 하고 악한 행실을 버려야 합니다. 정의를 추구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도와 주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밥 먹듯 악을 행하면서 성전에 모여 제사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역겨운 일입니다.

그들이 살 길은 오직 회개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죄가 많고 크더라도 진실로 회개하면 양털같이 씻김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회개 하기를 거부하고 계속 죄악을 즐긴다면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18-20절). 

이어서 예언자는 “신실하던 성읍”(21절) 곧 예루살렘 도성이 폐허가 된 것에 대해 탄식합니다. 정의가 충만하고 공의가 가득하던 그 성에 살인자들이 판을 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부정과 거짓을 일삼고 정의와 자비를 외면하고 있습니다(22-23절). 이런 상황을 보시고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 해서라도 깨끗하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24-26절). 그럴 때 시온은 다시금 정의의 도시가 될 것이고, 회개한 백성은 공의를 행하는 백성이 될 것입니다(27절). 반면, 하나님의 손길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28-31절).

묵상:

예배와 일상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참된 예배는 일상의 삶에 영향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일상의 삶은 또한 예배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신실한 예배자는 일상 생활에서 신실한 사람으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일상 생활에서 진실하게 산 사람은 예배의 자리에 신실한 마음으로 설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울 사도가 말한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롬 12:1)입니다. 하나님 앞에 따로 드리는 예배가 일상 전체를 예배처럼 살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원리는 그러한데, 실제로는 예배와 일상이 분리되어 따로 도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예배를 드리는 일에는 정성을 다하는데, 일상 생활에서는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처럼 자신의 욕망을 따라 죄악을 일삼습니다. 양손에 피가 가득한데 그 손으로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립니다. 일상 생활에서 추하고 거짓된 말을 쏟아내던 입으로 하나님 앞에서 찬양하고 기도를 올립니다. 그렇게 되면 예배는 자신의 불의와 부정을 감추는 위장술이 되어 버립니다. 혹은 불편한 양심의 도피처가 되어 버립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역겨운 일이고 예배자 자신에게는 해로운 일입니다. 

이사야는 회개를 촉구합니다. 예배와 삶이 분리된 것에 대한 뼈아픈 각성을 요구합니다. 불의한 삶을 위장하는 수단으로 예배를 오용한 것에 대해 옷을 찢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의 자리에만 가두어 두려 했던 불신앙에 마음을 깨뜨려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함께 모여 신령한 예배를 드릴 수 있고 흩어져서 산 제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4 thoughts on “이사야서 1장: 회개하라!

  1. 코비드-19 때문에 교회에 가지 못하게 된 지 5개월이 넘었습니다. 교회를 가지 않으니 예배만 “중단”된 것이 아니라 선교도 교육도, 친교와 구제도 중단입니다. 교회로서 같이 하지 못할 뿐 개인이 하고자 하면 할 수는 있으니 딱히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방법이 달라졌으니 개념도 달라져야 하는데 앞뒤 바뀐 순서에 적응을 하기가 쉽지 않아 여전히 헤매고 있습니다. 어제도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평일 아침이나 주일 아침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배를 마친 뒤 남편과 나누는 대화도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는 대화와 비슷합니다. 분주함이 없어 다행인 것 같기도 한데 친교가 없으니 재미가 없습니다. 전화로 듣는 이야기와 마주 보며 나누는 얘기는 같아도 같은게 아니구나 싶습니다. 줌으로 소그룹 모임을 하지만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 부분이 늘 아쉬움으로 걸립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비현실적인 현실이 여전히 낯설고 무섭습니다. 이사야서 첫 장을 펴니 제목이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환상을 보여 주시다” 입니다. 이사야도 코로나 뉴스가 몰고온 낯선 현실 같은 시간 속으로 들어간 걸까요. 우리의 현실도 이사야에게 보여 주신 환상 같은 걸까요. 회개라는 공통언어를 들고 묵상하는 하루가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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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말로 다 할수없는 추하고 냄새나는 죄를 갖고 십자가에 무릎을 끓었습니다.
    한없이 큰 사랑과 신실 하신 주님을 의지하고 감히 나왔습니다.
    지난날 주님을 등지고 헛된 삶을 되풀이 않기를 원합니다.
    모든 생각과 언어와 행동과 삶이 주님께들이는 거룩한 산제물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모든 성도들이 함께모여 기도와 찬양과 예배를 들이는 시간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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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오늘날 회개를 선포하는 말씀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수준높은 예배는 많아지고 있지만, 진실로 드려지는 예배 그리고 회개가 함께 있는 예배가 부재함을 봅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도 동일합니다. 수준있는 예배를 추구하지만, 회개와 진실을 추구하는 예배에 더 집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 용서하시옵소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며, 삶과 예배가 하나되는 신앙을 가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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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예배가 내 삶을 이끌어 주기를 기도하며 항상 내가 내 자신을 주장하며 하나님의 길에서 멀리 떯어져있나를 점검해 봅니다, 신실 한 예배가 내 삶으로 이어지는 지 가늠해 봅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위선이 오히려 내 안에 있슴을 발견하고 십자가 앞에 무릅을 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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