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3장: 상속자의 신분

해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도리를 설명한 후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1-5절). 복음을 믿은 이후로 체험한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와 이적들을 기억해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그 많은 체험은, 다 허사가 되었다는 말입니까?”(4절)라는 질문을 보면, 그들이 여러 가지로 성령의 능력을 체험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바울은 그 모든 것이 율법을 지켜서 얻은 것이 아니라 순전히 믿어서 얻은 것임을 상기시킵니다. 그 모든 것이 복음을 믿음으로 일어난 일이라면 율법을 지킬 이유가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유대주의자들에게 속아 넘어가 “다른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창세기 15장 6절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 받았습니다(6절).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 사람의 조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사람들의 조상이라는 뜻입니다(7-8절).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약속된 복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9절). 만일 율법을 행함으로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저주를 경험할 수 밖에 없습니다(10절). 그 누구도 율법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기준에 부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11절). 

이 대목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율법은 인간을 죄인으로 규정하고 저주를 선언합니다. 율법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해야 할 존재들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인류가 받을 저주를 대신 짊어지신 것입니다(13절). 신명기 21장 23절에 의하면, 나무에 달려 죽은 사람은 저주 받은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인류가 받을 저주를 대신 지신 것은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고 성령의 선물을 받게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14절).

이어서 바울은 유언장의 효력을 비유로 삼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변개될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15절).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에 대해 말할 때, 그 후손은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16절).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430년 후에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이 취소하거나 변개시킬 수 없다는 뜻입니다(17-18절). 

“그렇다면 율법은 무슨 소용이냐?”는 질문이 나옵니다. 율법은 인간의 죄성을 치유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죄에 물든 인간에게 ‘타락의 한계’를 정해 준 것입니다(19-20절). 죄를 짓되 이 이상은 넘어가지 말라는 한계를 정해 준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은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다만 생명에 이르는 길을 가리켜 보게 해 줍니다(21-23절). 그렇기에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개인교사”(옛 번역에서는 “몽학선생”)의 역할을 한 셈입니다(24절).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었으니 더 이상 율법에 매일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24절).

갈라디아 교인들은 이렇게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로 옷 입은” 것입니다(27절). 거기에는 어떤 차별도 없습니다. 인종과 신분과 나이와 성별에 아무런 차이도 없습니다(28절). 누구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약속을 따라 정해진 상속자들”(29절)입니다. 그것은 율법으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된 것입니다. 

묵상: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의 백성이 되었고,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약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모두에게 열렸습니다. 그분을 영접하고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 일에는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아버지에게 속한 모든 것은 자녀들에게 유산이 됩니다. 그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그분에게 속한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안다면, 믿음 안에서 그분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사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엄청난 신분입니다. 나같은 하찮은 존재에게 그런 엄청난 신분이 주어졌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습니다. 그 신분은 나에게 자격이 있어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으셨다고 믿고 고백함으로 그 신분이 값없이 주어진 것입니다. 

값이 없어서 값없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로서는 그 값을 치룰 수 없도록 값비싼 것이기에 값없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은혜로 인해 감사하고 감격하는 것입니다. 

4 thoughts on “갈라디아서 3장: 상속자의 신분

  1. 그 한없는 은혜가 내 삶을 통하여, 오늘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과 십자가의 대속함으로 인해서 우리가 구원받았고,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복음이 삶을 통해서 능력으로 전해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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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난날의 체험이 점점 흐려저가고 있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더럽고
    추악한 죄의 종을 보혈로 깨끗이 속량하시고 주님의 자녀로 입양하시고
    만왕의 왕의 상속자로 택하여주신 믿기어려운 은혜를 꼭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체험보다 확신을 꼭 붙잡고 이웃과 함께 상속자의 걸 맞는
    삶을 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질병의 세대에서 허덕이는
    세상에 십자가를 높이들어 병자들이 치유받는 은혜를 간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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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믿음 안에서 받는 자유와 율법 안에서 경험하는 속박을 잠시 생각해 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남도 나처럼 자유한 사람으로 살기를 바라고 그렇게 되도록 돕는 데 애씁니다. 이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삶은 믿음으로 사는 데 치명적으로 해가 되는 삶입니다. 누가 이인인가 하는 질문은 늘 던지게 되는 질문입니다. 이웃에게 다가가는 방법도 자주 묻게 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슼크 착용을 하며 사는 요즘엔 믿음을 따라 산다는 뜻이 교회라는 안전하고 정다운 공간이 아니라 거칠고 불안한 거리에서 치뤄야 하는 시험처럼 되었습니다. 믿음의 나무는 교회에서 모종을 해 바깥 거리에 심어야 하는 나무인데 온실화초처럼 된 것은 아닌가 생각도 해봅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 물어보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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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율법의 한계를 다시한번 상기시켜 주며 믿음 외에는 어떤 길로도 의에 이르지 못 한다는 바울의 가르침을 통해 더시한번 내 믿음을 점검해보며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 많은 율법을 우리 인간이 다 지켜 행할수 없다는 것이 자명하지만 바울을 통해 결정체로 우리에게 전달해 준 바울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믿음과 의를 깊이 묵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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