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4장: 사회적 약자들을 위하여

해설:

24장은 ‘신명기의 복음’이라 부를만큼 은혜가 가득합니다. 이 장에 나오는 지침들은 모두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라는 취지에서 주어진 것입니다. 

먼저 모세는 이혼에 관한 지침을 줍니다. 당시는 남성 중심의 사회였기에 이혼의 결정권은 남편에게만 있었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서 수치스러운 일을 발견하여”(1절)라는 말은 간음을 염두에 둔 표현이긴 하지만 후대에는 여러 가지 다른 이유로도 해석되었습니다. “이혼증서”는 이혼 당한 아내가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는 증서입니다. 아내가 싫어졌거나 미워졌다고 해서 다시는 결혼할 수 없게 만들지 말라는 뜻입니다. 다른 남자에게 재혼했던 전 부인을 다시 아내로 맞아들이지 말라는 지침(2-4절)의 배경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이것도 여성의 인권을 보호해 주려는 지침이었을 것입니다.

아내를 맞은 새신랑은 1년 동안 군에서 면제 되어야 합니다. 갓 결혼한 신부를 보호하기 위함입니다(5절). 맷돌을 저당 잡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없으면 가난한 사람은 끼니를 걸러야 했기 때문입니다(6절). 같은 동족을 유괴하여 노예로 판 사람은 극형에 처해야 합니다(7절). 악성 피부병에 걸린 사람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처리해야 합니다. 그런 병에 걸렸다 하여 평생토록 소외 받고 차별 받아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8-9절). 이웃에게 무엇을 꾸어 주고 담보물을 받을 때에는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 담보물을 골라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의 인격을 짓밟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10-11절). 가난한 사람의 겉옷을 담보로 잡았을 때는 해가 지기 전에 돌려 주어야 합니다. 밤이 되면 그것을 이불로 삼아야 하기 때문입니다(12-13절). 

가난하여 품을 파는 사람을 억울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동족에게도 그렇고 외국인에게도 그렇습니다(14절). 특히 저임금 노동자에게는 그 날 품삯을 그 날로 지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의 가족이 굶기 때문입니다(15절). 자식이 지은 죄 때문에 부모를 죽일 수 없고, 부모의 죄 때문에 자식을 죽일 수 없습니다(16절). 외국인 혹은 고아와 같은 사회적 약자의 소송을 억울하게 판결하지 말아야 하고, 과부의 옷을 저당 잡아서는 안 됩니다(17절).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도 이집트에서 사회적 약자로 살았기 때문입니다(18절).

곡식을 거둘 때, 올리브 나무나 포도 열매를 거둘 때, 외국인과 고아와 과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얼마간 남겨 두어야 합니다(19-21절).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때를 기억한다면 그들을 위해 남겨 놓는 것이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22절). 

묵상:

여기서 모세는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 하던 때를 기억하라고 두 번이나 강조합니다(18절, 22절). 그들은 이집트에서 사회적 약자로 지독한 차별과 학대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이집트로부터 인도하여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독점적 사랑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을 제사장의 나라로 만들어 세상 모든 민족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로부터 구원 받았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 은혜를 생생히 기억한다면, 그들은 구원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힘썼을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과거의 그들처럼 자기들 땅에서 사회적 약자(여성, 이혼 당한 여인, 가난한 사람, 고아, 과부, 외국인 등)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잊지 말아야 했습니다. 사회적 약자가 존재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들이 약자라는 이유로 차별 받고 소외 당하고 생존에 위협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만일 그들이 고난 중에 주님께 호소하면 그들에게 죄가 돌아갈 것입니다(15절).

사회적 약자들을 돌아 보고 지지해 주고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 주는 것은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신앙적 문제라는 사실을 여기서 다시 확인합니다.  

4 thoughts on “신명기 24장: 사회적 약자들을 위하여

  1. 어두움에서 길 잃고 어렵게 방황했던 시절을 항상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병들고 어렵고 가난한 사람이 항상 주위에 있다는 주님의 말씀을 잊지않기를
    원합니다. 십자가의 구원을 감사하며 주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보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힘겹게 사는 이들과 함께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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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감사하다 혹은 고마워하다”라는 말의 반대말은 불평하고 불만을 한다가 아니라, 당연시 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감사로 다가오지 아니하고, 당연시 여겨질때, 사람은 교만해지고 자신의 의대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입니다. 감사한 일이 있으면 잠시동안은 기쁘고 감사하지만, 또 시간만 지나면 그 감사와 기쁨은 없어지고, 당연시 여깁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해 감사하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보잘 것 없는 나를 지금까지 이끄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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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약자를 약자로 보는 눈이 다 같지 않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구걸하는 거지한테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쏘아 붙입니다. 남편과 화목하지 못한 여자를 보고 “대가 쎄고 고분고분하지 않으니 남편이 싫어하지” 수군거립니다. 쌀을 꾸러 다니고, 돈을 빌리러 다니는 이웃의 등 뒤에서 “손이 여물지 못하다”거나 “평생 빌어 먹을 팔자”라고 비웃습니다. 나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업신 여기고 천하게 보는 마음이 없어지지 않는 한 정책이나 사회 안전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모세의 설교에 나타난 약자의 다양한 얼굴을 가련하게 보고 마음과 주머니를 열며 살 수 있기를 원합니다. 값싼 동정은 해결책이 되지 않지만 모진 마음 또한 아무 도움이 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중에 지극히 작은 자, 곧 내 눈에 지극히 한심하게 보이는 사람을 경멸하지 않겠다는 결심 부터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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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농경사회와 유목민으로의 삶 속에서 이주노동자, 과부, 고아들을 늘 배려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웁니다, 현세에서도 불구자를 위한 특별한 배려를 우선시 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 믿고 실천해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관심을 갖고 보살피는 일에 능동적이기를 기도합니다.
    시간이 가면 갈 수록 빈부의 차이가 더 심각해 지는 사회구조를 보며 내가 할수있는 일이 무엇인가 숙고하며 솔선수범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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