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3장: 거룩함에 이르는 길

해설:

“주님의 총회원”(1절)는 오늘로 하면 시민의 자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환이 터졌거나 음경이 잘린 사람”(1절)은 이교적인 문화에서 거세된 사람을 가리키고, “사생아”(2절)는 성적인 질서를 어긴 결과로 태어난 사람을 가리킵니다.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3절)은 광야 여정에서 이스라엘을 냉대하고 박해 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총회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반면, 에돔 사람과 이집트 사람의 자손인 경우에는 삼 대 자손부터 이스라엘 국민의 자격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7-8절).

이어서 모세는 전쟁을 하는 동안에는 진을 부정하게 하지 않도록 주의를 줍니다(9-14절). 이스라엘의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진영 안에서는 어떤 악한 일도 삼가야 합니다. 몽정을 한 경우처럼 부정하게 하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에는 진 바깥으로 나가 있다가 해가 질 무렵에 목욕을 하고 해가 진 다음에 진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진 안에서 대변을 보는 일도 피해야 합니다. 이렇게 사소한 일까지 챙겨야만 이스라엘 진영은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고, 그럴 때에만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계속하여 몇 가지의 일상적인 지침들을 제시합니다. 도망친 종을 주인에게 돌려 보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주인에게 보복을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15-16절). 이스라엘의 자녀들 중에는 누구도 창녀나 남창이 될 수 없고, 그렇게 번 돈을 제물로 드릴 수 없습니다(17-18절). 당시의 창녀와 남창은 가나안 신전 제사와 관계가 있었습니다. 풍요와 다산을 비는 신전 제사는 그 이후로 집단적인 혼음파티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그곳에서 직업적으로 성을 파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또한 동족끼리 이자를 받지 말고(19-20절) 맹세한 것은 필히 지키라고 지시합니다(21-23절). 이웃 사람의 포도원에 들어가 포도를 따 먹는 것은 허락하지만, 그릇에 담아가면 절도가 됩니다(24절). 이웃 사람의 밭에 들어가서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은 허락되지만, 곡식에 낫을 대는 것은 절도가 됩니다(25절). 한끼의 허기를 면하는 정도는 이웃끼리 서로 허락해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이상을 넘는 것은 죄입니다. 

묵상:

율법은 거룩함을 이루고 지키기 위한 지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룩함’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카도쉬’는 ‘구별하다’라는 뜻입니다. 제사장 민족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은 다른 민족과 구별되어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율법은 깨끗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분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율법에서 부정한 것으로 판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1)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적인 상태를 상실 했느냐”와 2)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깨뜨렸느냐”에 있습니다. 율법은 이 두 가지 기준으로 부정한 것을 규정하고 그것들로부터 구분되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따르는 온전한 백성을 세우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따라 살아가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본래적인 상태를 회복해 가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주어진 과제입니다. 그것이 가장 자유로운 삶의 방식이요, 나와 이웃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삶의 방식입니다. 그러기 위해 예수님은 외부를 보지 말고 자기 자신을 보라고 하십니다. 사람이나 물건을 주목하지 말고 자기 자신의 마음을 주목하라 하십니다. 거룩해지기 위해 구별하고 구분짓고 차별하고 배척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거룩 해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성령으로 변화되고 그 능력 안에서 살아갈 때 가능한 일입니다.  

4 thoughts on “신명기 23장: 거룩함에 이르는 길

  1.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사람이 되기가 참 어렵습니다. 율법 앞에 섰을 때는 더더욱 그렇지요. 한없이 부족하며, 죄들이 보여지는 거울 앞에섰으니 당연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율법을 완성시키시고, 하나님앞에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는 통로가 되신 예수님을 믿고, 그 보혈을 의지하며 오늘도 성령의 능력안에서 살아갑니다.
    율법의 말씀을 볼때마다 한없이 초라해지지만, 예수그리스의 보혈을 의지하며 나아갈때 은혜안에서 능력안에서 자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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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카톨릭 수도원이 배경인 드라마를 보다 주워들은 말입니다. Ora et Labora (pray and work) 기도와 일 (노동)은 수도원 생활의 핵심인데 기도 (ora)는 일 (lab-ora) 안에도 들어가 있으니 기도하듯 일하고 일하듯 기도한다는 설명입니다. 우리의 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일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농사를 짓거나 바다에 나가 고기 잡는 일 뿐 아니라 콘크리트 빌딩 안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일도 다 하나님의 사업에 종사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존중하고 이어가는 길은 그분의 뜻이 그 일 속에서 드러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다 상업적인 목적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는 지금 세상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뜻을 발견하기는 그만큼 더 어렵습니다. 그래도 기도와 일의 일치를 이루며 살고 싶습니다. 내가 하는 이 일이 하나님의 세계, 진선미의 세계 한 구석을 찰나같이 잠깐 만이라도 채운다고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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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인종을 가리지 않고 모든 민족을 십자가로 초청해 주님의 백성으로 삼는 사랑에
    영광을 드립니다. 영적 싸움임을 깨닫고 몸과 영혼을 깨끗이 지켜 승리로 끝나는
    일상생활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이웃과함께 이민자들을 진심으로 맞아주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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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우리가 자랄 때 농촌에서 참외 서리하던 생각이 오늘 말씀과 함께 생각이 납니다, 밤에 몰래 남의 참외 밭에 들어가 몰래 따 먹던 기억이 남의 포도밭에 가서 따먹는 것은 용서되지만 담아오는 것은 허락하지 안는 말씀을 통해 장발쟝의 기행이 동시에 떠오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궁극적인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 속에서 서로를 돌보며 그 질서를 잘 지켜나가고 자연에 피해를 주면 끝내는 우리 후손들의 삶에 큰 부담으로 돌아올 것을 마음에 두고 자연을 아끼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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