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9장: 모세와 예수님의 차이

해설:

모세는 도피성에 대한 지침을 다시 강조합니다(1-13절). 이 지침에 대해서는 민수기 35장에 이미 제시된 바 있습니다. 거기서 주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되면 요단 강 동쪽에 셋, 서쪽에 셋, 합하여 여섯 개의 도피성을 두라고 지시하십니다. 이 시점에 요단 강 동편에는 이미 토지 분배가 끝났으므로 도피성도 마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요단 강 서쪽에 둘 도피성 세 개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2절). 도피성은 과실치사(2급 살인)를 범한 사람들이 목숨을 보존할 수 있게 한 배려입니다. 1급 살인을 범한 경우에는 율법에 따라 엄하게 처벌해야 합니다.

이어서 모세는 이웃의 경계선을 옮기지 말라고 지시합니다(14절). 가나안 정착 시에 분배 받은 토지의 경계선을 그대로 지키라는 뜻입니다. 그 경계선을 옮기려는 시도는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의 표시이고 이웃의 것을 탐내는 죄입니다.

모세는 판결에 있어서 증인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한 사람만의 증언으로는 절대 판결하지 말아야 합니다(15절). 거짓 증언에 대해서는 엄밀하게 재판하고 엄중하게 징벌해야 합니다(16-20절). 이웃을 상해 했을 경우, 원칙은 받은 만큼의 피해를 되돌려 주는 것입니다(21절).

묵상:

“목숨에는 목숨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 갚으십시오”(21절)라는 말은 일견 잔인한 복수를 허용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렉스 탈리오니스’라는 동종상해법은 복수를 허용하는 법이 아니라 복수를 제한하는 법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억울한 손해나 상해를 입었을 경우, 그 이상으로 갚아 주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은 복수를 허용하되 받은 손해나 상해의 범위를 넘지 않도록 규정합니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이 말씀을 인용 하시면서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아라. 누가 네 오른쪽 빰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 너를 걸어 고소하여 네 속옷을 가리려는 사람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누가 너더러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가 주어라. 네게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네게 꾸려고 하는 사람을 물리치지 말아라”(마 5:39-42)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모세와 예수님의 ‘다른 클라스’를 봅니다. 율법의 차원은 인간의 죄성을 인정한 상태에서 넘어서지 말아야 할 한계를 그어 준 것입니다. 예수님은 은혜의 차원에서 하나님의 뜻을 전해 주셨습니다. 은혜의 차원은 인간의 죄성을 넘어서는 것을 말합니다. 복수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를 단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 5:4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뜻에서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마 5:17)고 하셨습니다.     

4 thoughts on “신명기 19장: 모세와 예수님의 차이

  1. 현대법에서 사형제도의 존속과 폐지 여부가 첨예한 쟁점입니다. 종교의 가르침이 국가법의 기반이 되든 안되든 사회의 구성원으로 시민이 갖는 의무와 권리를 제한하는 문제는 한 번 정하고 나면 끝인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법이 바뀌는 것도 문제지만 개념이나 정의가 시대의 변화를 외면하고 박제된 듯 부동으로 남아 있는 것도 큰 문제일 것입니다. 모세의 법은 사람의 한계를 충분히 잘 알기에 정해진 규범입니다.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다수의 의견을 사회의 진실로 삼는 법입니다. 예수님이 보이신 법은 사람의 한계와 평행선이라도 긋는 듯, 각각의 상황이 곧 기준이요 진실이 되는 법입니다. 중재자, 변호인, 보호자 같은 법정 용어가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인 것을 여기서도 봅니다. 타인의 잘못으로 내 마음이 상할 때, 모세가 허락한 보복의 권리를 포기하고 그를 내 마음속 도피성으로 보내기를 원합니다. 나 또한 무수히 잘못하며 사는 것을 아시는 주님 앞에 상한 마음을 내려 놓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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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수없이 사람들을 혀로 헐뜯고 살해했습니다 실수로 또 고의적으로 살해했습니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가 저희들의 도피성입니다. 앞으로 더 헐뜯지 않기를 바랍니다.
    더이상 주님을 십자가에 저로인해 못 박히지않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허락하신 기업에 자족하며 다른 사람들이 추구하는 부귀영화에 한눈팔지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주님을 등지고 바벨탑을 쌓는사람 들을 흐트셨던 주님 !
    허락하신 사회적 거리를 사랑과 믿음과 소망으로 가득채우도록 도와주십시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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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도피성의 의미와 뜻, 그리고 지침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그당시에 사회적인 약자들을 위한 보호시스템이라고 한다면, 내 자신이 살아있는 도피성이 되는 모습이 있으면 어떨까? 혹은 도피성(예수님)으로 인도해주는 가이드 표지판의 역할이라도 함으로써, 소외받고 약한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함께해주는 도피성의 모습이 오늘 내 삶에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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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율법시대와 은혜의 시대를 배웁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라는 말씀을 들을 때 다양한 감정이 작동하지만 네 원수를 용서뿐만 아니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인간으로 할 수 없는 영원한 차원이기에 다시한 번 예수님을 내 주님으로 모십니다, 율법의 완성 뿐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완성이라 믿고 주님을 따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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