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4장: 구별된 삶

해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1절)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요 “귀중한 백성”(2절)입니다. 그렇기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 때 그 신분에 걸맞게 살아야 합니다. 

여기서 모세는 하나님의 자녀 된 백성이 구별됨을 보여야 할 세 가지 영역을 다룹니다. 첫째는 애도 방식입니다. 애도할 때 몸에 상처를 내는 것 혹은 앞머리를 미는 것은 당시 가나안 주민들이 행하던 이교 풍습이었습니다(1절). 이 풍습은 죽음에 극단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사고 방식에서 나왔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인생의 한 과정입니다. 그렇기에 지나친 애도는 불신앙의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음식의 영역입니다(3-21절). 이 율법은 레위기 11장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부정한 짐승과 정한 짐승을 나누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합의된 의견이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음식 규정도 역시 가나안 주민들의 음식 문화와 관계가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먹는 음식과 조리 방식에 있어서도 구별되어야 했습니다.

셋째는 물질적인 소유의 영역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소득의 십분의 일을 나누는 것으로 가나안 주민들과 구별되어야 했습니다.  

먼저, 해마다 얻은 소출에서 십분의 일을 구별하여 성소에 모여 예배 드리고 함께 나눠야 합니다(22-27절). 그렇게 하는 이유에 대해 모세는 “이렇게 함으로써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23절)라고 말합니다. 소득의 십분의 일을 구별하는 것은 자신의 소득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임을 인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그 과정에서 땅을 분배받지 못한 레위 사람들을 기억하라고 당부합니다(27절).

매년 드리는 십일조에 더하여 모세는 삼년마다 드리는 십일조에 대해 지침을 줍니다(28-29절). 이것은 출애굽기에도, 레위기에도 나오지 않는 규정입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삼년 마다 십분의 이를 드려야 했습니다. 십분의 일은 성소에 가지고 가야 하고, 다른 십분의 일은 동네에 한 데 모아 놓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구제물로 사용해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는 재산의 정도에 차이는 있어도 굶는 사람은 존재하지 말아야 합니다.

묵상:

하나님의 자녀요 그분의 백성이 되었다면 당연히 그렇지 않는 사람들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예배하는 대상을 닮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대상이 사랑과 진리와 정의와 거룩의 하나님이시라면, 그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도 그분을 닮아 살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믿는 우리는 일상 생활의 모든 면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과 구별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구별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닮아 사는 삶이 저절로 구별됨을 드러내게 만듭니다.

만일 우리의 구별됨이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식탁에서 고개 숙여 기도하는 정도에 그친다면 우리는 아직 하나님의 자녀 된 백성으로 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모세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애도하는 방식에서도, 음식을 먹는 방식에서도, 돈을 벌고 사용하는 방식에서도 구별됨이 드러나야 옳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주일이라는 시간과 예배당이라는 공간에서 해방되어 매일의 시간과 일상이라는 공간에서 드러날 수 있어야 합니다.   

4 thoughts on “신명기 14장: 구별된 삶

  1. 구별된 삶은 외형적인 행동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술을 안먹고, 담배를 하지 않는 것. 혹은 십일조를 내고,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것인 외형적인 행동으로만 구별된 삶이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삶의 방식의 태도와 마음자세도 함께 동반되어야 합니다. 외형적인 행동으로서 구별된 삶만 강조한다면 율법주의 바리새인과 같이 될수 있습니다. 나의 내적인 태도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구별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 할때, 자연스럽게 선한 영향력을 외형적인 행동으로 드러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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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우한 폐렴이 먹지않아야할 짐승때문에 생겼다는 추측이 있습니다.
    먹고 마시고 생각과 언어와 모든 삶이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되기를 원합니다.
    허락하신 물질 십일조 뿐만이 아니라 모든것이 주님의것임을 잊지않고 청지기
    역할을 신실하게 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함께 어려움에 처한 민초들을 돌보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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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6월도 오늘로서 다 지나갑니다. 한 해의 반이 끝났습니다. 죽음을 애도하는 모습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은 달라야 하는데 시간의 흐름 앞에서도 달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특별히 올해는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며 살았습니다. 삶과 죽음이 사람에게 달린 것이 아님을 절절하게 깨달으며 반년을 살았습니다. 매일, 매주, 매달, 죽음의 위력을 목도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언제까지 더 계속될 지 모릅니다. 새로운 달을 맞아도 애도가 줄어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온 지구촌에 곡성이 울리는 어둠의 시간이 어서 끝나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내 인생은 내 것이니 내 마음대로 써도 될 것 같지만 착각이요 자기기만입니다. 60살까지 살면 장수한 것으로 여기고 이를 축하하던 우리가 이제 100살까지 살지도 모른다는 기대(반 두려움반) 속에 제이, 제삼의 직업을 생각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수명이 길어지면 그 시간을 채우는 doing에도 신경을 써야 하지만 우리의 being을 다듬는 것에도 공을 들여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믿음과 행실이 같아 가야 하듯, 인격과 일도 한 결이 되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죽음을 애도하는 모습이 달라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은 살기 위해 먹는 음식도 구별해서 먹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다르게” 먹습니다. 경제 개념도 다릅니다. 구별되게 살아야 하는 거룩한 의무감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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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하나님의 자녀로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구별된 삶으로 귀결 되겠지만 늘 부족 한 믿음을 통해 내 자신을 비추어 보며 좀더 참신하고 신실 한 삶으로 주님 앞에 나가기를 간구합니다.
    부족 함이 있어 더 주님께 매달리는 믿음이 부끄럽지 않기를 바라며 신실 한 믿음이 바탕을 이루는 삶으로 바뀌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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