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2장: 삶의 좌표

해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해야 할 일로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하나는 가나안 민족이 남겨 놓은 모든 신전과 우상을 허물어 없애는 일입니다(2-3절, 30절). 조금이라도 남겨 놓으면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영적인 올무가 될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방 민족들이 그 신들을 섬기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입니다(4절, 31절). 특별히 아무 데나 제단을 차려 놓고 제사 드리는 행위를 금지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려고 거처로 삼으신”(5절) 곳에서만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광야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저마다 자기의 소견대로”(8절) 예배를 드렸지만,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에는 더 이상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10-14절). 

또한 어디서나 짐승을 잡아 먹을 수 있지만 피는 반드시 땅에 흘려 보내야 하고(15-16절, 20-24절), 십일조로 바친 곡식과 첫 열매로 바친 것 그리고 모든 종류의 제물은 반드시 제사 드리는 곳에서 레위 사람들과 함께 먹어야 합니다(17-19절, 25-27절).

묵상:

광야 유랑을 하는 동안에도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원칙적으로는 성막에서만 제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8절과 9절에 의하면 각자 자신의 처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도 허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현실적인 필요 때문에 그랬을 것입니다. 

모세는 가나안에 정착을 하고 나서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그렇게 할 경우, 그들은 우상 숭배로 빠져 들 가능성이 컸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에도 성막은 오래도록 이동식 천막의 상태로 남아 있었습니다. 솔로몬 왕 시대에 이르러서야 이동식 성막은 고정된 건물이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이스라엘 백성이 여러 나라로 흩어져 살아가게 되었을 때, 그들은 언제나 예루살렘 방향으로 얼굴을 향하여 기도하며 하나님을 삶의 중심으로 삼았습니다. 

나침반이 없을 때 항해사들이 북극성을 좌표로 삼아 길을 찾았던 것처럼, 믿는 우리는 늘 하나님을 삶의 좌표로 삼아 방향을 찾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우리 삶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할 수 있게 해 주는 가시적인 상징물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우리는 길을 찾고 중심을 찾습니다.  

5 thoughts on “신명기 12장: 삶의 좌표

  1. 시도하다! Try it! 라는 말은 언제나 큰 유익을 가져오는 것 같습니다. 어떤일에 주저하기 보다는 시도함으로써, 실패를 경험하면 그로 인해서 유익을 얻고, 시도를 통해서 성공을 얻어도 유익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묵상에서는 죄와 유혹에는 절대 시도도 궁금중도 가지지말라고 권고 합니다. 불같은 죄성을 가진 존재인 내가 새로운 죄들인 종이들과 마주한다면 그 종이들(유혹들)은 금방타버리게 될 것입니다. 죄에 대한 유혹은 자신이 경험하고 안만큼 유혹받게 되어있습니다. 아예 모른다면 그런 종류의 유혹을 받지도 않겠지요. 오늘도 죄의 유혹앞에 담대히 뿌리치고, 마주하지도 않기를 원합니다. 호기심이나 시도함으로 인해서 더 많은 죄와 유혹을 감당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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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코로나 위기가 여전한 가운데 오늘 본문을 읽으니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지 못해 마음이 너무나 이상하던 기억도 나고, 이제 한, 두 주 뒤부터는 교회를 다시 열 준비를 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마음이 벅차거나 손꼽아 그날을 기다리지 않는 내 자신이 또 이상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코로나 대응에 필요한 절차적인 변화부터 시작해 예배 자체에 대한 이해도 달라져서 전과 다른 교회가 되기를 바라고 전과 다른 신앙 생활을 하는 교인이 되고 싶습니다. 모세가 명하는 예배의 모습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12절에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기뻐하라고 권고합니다. 기쁨이 있는 예배를 드리고 싶습니다. 생존의 기쁨. 노후의 기쁨. 노동의 기쁨. 책임의 기쁨…의무요 짐으로 느껴지던 일상이 감사와 기쁨의 증거로 바뀌는 예배를 드리고 싶습니다. 엿새 일하고 안식일에 안식하는 하나님의 리듬이 내 삶의 리듬으로 바뀌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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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우리가 생활환경이 좋아지면 우리가 마음대로 살게되고 그러면서 죄에 물들기 쉽습니다. 그러한 모습을 본문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당부하십니다. 하나는 그곳에 남아있는 신전과 우상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있던 우상은 그때 당시에 값어치가 나가는 문화재였지만 모두 파괴하라고 하십니다. 인간은 쉽게 물질적인 이득과 우상에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민족의 풍습에 따라 하나님께 제사지내지 말라고 하십니다. 덧붙여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각자 마음대로 제사를 지낸 풍습을 버리고 한 곳에서 같이 재사하라고 하십니다. 새문명을 접하면 사람들은 대게 두부류로 나뉘어서 새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오래된 풍습을 지키려 합니다. 분명 그런 텐션이 이스라엘 민족을 갈라놓기 쉬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양극화 페러다임을 뒤집고 한 곳에서 제사의 정수를 지키라 하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같이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원하신 것이죠. 

    한국, 미국, 그리고 다른 선진국가에서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나라마다 모습이 좀 다를 뿐이지 그 밑을 들춰보면 개인의 이득과 우상을 쫓는 죄성과 내 마음대로 살고 싶어하는 욕망이 모여 들끓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고 예배받기를 원하십니다. 단지 개인적으로 회개하고 끝나는게 아니라 다른 이들과 연대해서 한마음으로 예배하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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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코로나 사태로 어쩔수없이 집에서 영상 예배를 드립니다, 하루속히 모두가 대면 예배
    드리는 시간을 간절히 기도합니다. 모든 행함과 언어와 삶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헛된 잡 신들에게 한눈 팔지않고 주님께 향한
    일편단심 믿음이 필요합니다. 질병과 혼란한 시대에서 방황하는 양때들을 선한 목자
    께서 인도하시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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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모세가 누누히 강조하는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반드시 지키며 자손 대에도 열심히 가르켜 지키게 하라는 말씀 속에 우리의 마음이 산만해 지는 일이 없이 늘 중심을 잡고 주님의 길을 따라야 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어떤 형식에 치우치는 것은 옳지 안 지만 형식을 통해 마음 가짐을 옳바로 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교회에 뫃여 예배를 못 드리고 버추얼 형식으로 보는 예배의 한계를 느끼고 있습니다, 빠른 시일 안에 정상적인 예배로 돌아 갈 수 있도록 주님의 은혜를 간구합니다, 빠른 시일 내에 코비드에서 해방 될수있도록 주님의 자비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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