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8장: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해설:

모세는 계속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라고 권면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광야를 지나 온 사십 년 동안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곧장 걸으면 열흘 걸릴 광야길을 40년 동안 떠돌게 하신 이유는 그들을 “단련시키고 시험하기”(2절) 위한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그들은 만나의 교훈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나는 “사람이 먹는 것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3절)을 가르치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그들이 광야 40년 동안 여러 가지로 결핍과 고난을 당했지만 결국 그 모든 여정을 통과해 냈습니다(4절). 광야 유랑은 그들을 고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훈련시키고 단련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5절).

따라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키고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6절)해야 합니다.    그 땅은 참으로 기름진 땅입니다(7-9절). 하나님께서 주신 그 땅에서 그분의 명령을 잘 지켜 행하면 그들은 그 땅에서 두고두고 복된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10절). 하지만 그 땅에서 번성하여 풍요를 구가하게 되면 그들은 필경 교만에 치우칠 것입니다.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신 하나님을 망각하고 그들이 누리는 번영이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 자신들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라고 착각할 것입니다(11-18절). 그렇게 되면 그들도 그들이 몰아낸 가나안 민족들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19-20절).

묵상:

3절 즉 “사람이 먹는 것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말씀은 예수께서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시던 중에 사탄의 시험을 받았을 때 인용하신 말씀입니다. 40일 동안 굶주린 예수님께 사탄은 돌을 떡으로 만들어 보라고 유혹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능력을 자신의 사적인 필요를 채우는 데 사용하라는 유혹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3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그 유혹을 거부하십니다(마 4:4). 

사람은 먹는 것으로 삽니다. 기본적인 생존 조건이 오래도록 결핍되면 목숨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또한 먹는 것으로만 살지 않습니다. 매슬로우의 ‘욕구의 단계’를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기본적인 생존 조건이 충족되면 인간은 의미를 찾고 보람을 찾으며 또한 기쁨을 찾습니다. 그런 것이 결핍되어 있으면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허무감에 사로잡힙니다. 그 허무감이 깊어지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의미 없는 삶은 지속할 가치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삶에 참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인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할 때 비로소 살아야 할 이유과 목적과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사실을 망각하게 만드는 것이 물질적인 풍요입니다. 물질적인 풍요에 탐닉하게 되면 우리는 자신의 배를 신으로 삼고 육체적인 탐욕에 눈 멀게 됩니다. 때로 금식을 하고 때로 물질적인 결핍을 견디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물질적인 결핍은 영적인 감각을 깨우고 갈망을 키우기 때문입니다. 

3 thoughts on “신명기 8장: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1. 영의 양식, 말씀을 먼저 구하여 듣고 읽고 보고 먹어 영혼이 강건 하기를 원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여정을 지나 기름진 땅에 도착했을때 지난날 보호와 인도하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와 예배를 들이는 변치않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명령과 법도를 이웃과함께 세상에 가르켜 지키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질병과 혼란의 터널에서 지쳐있습니다, 하루속히 빠져 나오기를 간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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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어제 본문은 가나안 땅 사람들을 다 없애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잔인하신 분인가 하는 질문에 막혀 신앙의 길에서 진전을 보지 못하는 대표적인 본문이었습니다. 25절이 마음에 스며 들었습니다. 그들의 우상을 불에 태워라, 우상에 입힌 은이나 금을 탐내지 말고 갖지도 말라, 네게 덫이 될 것이다…아닌 척 하지만 남이 가진 좋은 것, 남이 중하게 여기는 것에 약해지는 내 모습을 보았습니다. 심지어 하나님마저도 내 하나님보다 남의 하나님이 더 크고 위대한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나의 가나안 정복은 그래서 어려운 전쟁입니다. 광야 생활보다 그 다음에 오는 가나안 정복이 더 어렵게 느껴집니다. 오늘 본문은 광야에서도 살아봤는데 앞으로 어려움을 만나도 이겨내지 못하겠느냐고 격려합니다. 만나를 내려 주시어 생리적인 허기를 채워 주시고, 공동체에 필요한 말씀을 주시어 사상과 사회가 틀을 잡게 하셨습니다. 이집트에서 정신없이 나오던 무리가 아닙니다. 성장과 성숙의 터널을 통과한 백성입니다. 나도 그런가, 내 삶도 이런 과정을 거쳤는가 물으면서 본문을 읽었습니다. 광야 같은 때가 한 번으로 끝나는 것 같지 않습니다. 한 번 학습이 되었으면 그 다음엔 좀 더 잘할 것 같은데도 여전히 헤맵니다. 하나님 은혜가 만나처럼 매일 충분하다는 사실을 잊어 버리기도 합니다. 좋은 땅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광야에서 만난 하나님이 새로운 땅에서도 만나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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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나님의 명령과 율례를 강조하고 또 강조하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흔히 하는 말로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를 비교하듯 우리의 모듯 삶에서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지내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탐심이 발동해서 불만과 불평이 따르게 되는데 같은 경험을 어려번 해 봐도 역시 마찮가지인 것은 우리안에 있는 죄성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안에 포함 된 주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좀더 이해하고 따르기를 간구합니다, 늘 넘어지는 내 자신을 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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