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3장: 이것으로 네게 족하다

해설:

앞에서 아모리 족속을 점령한 과정을 설명한 모세는 계속하여 바산 왕 옥이 다스리던 영토를 점령하게 된 과정을 설명합니다(1-11절). 이 경우에도 바산 왕 옥이 먼저 이스라엘을 공격 했고, 이스라엘은 반격하여 모든 성읍을 점령하고 주민을 전멸시킵니다. 모세는 점령한 영토에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지파의 절반을 정착시킵니다. 대신 남자들은 가나안 점령을 위한 전쟁에 참여해야 했습니다(12-22절). 

그 즈음에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을 하나님에게서 들은 바 있습니다(민 20:12). 물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분노를 터뜨린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책망 하시면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민수기의 기록에는 없지만, 모세는 이 때 하나님께 “부디 저를 건너가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요단 저쪽 아름다운 땅과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여 주십시오”(신 3:25)라고 간청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것으로 네게 족하니, 이 일 때문에 더 이상 나에게 말하지 말아라”(26절)고 답하십니다. 가나안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것은 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할 일이었습니다(28절).

묵상: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모세는 “그 땅을 한 번이라도 밟아보고 죽게 해 주십시오”라고 간청 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손주를 간절히 기다리던 사람이 예정일을 며칠 앞 두고 세상을 떠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그럴 경우 누구든 “제발 태어날 손주 얼굴이라도 보고 죽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으로 네게 족하다”(26절)는 말씀으로 모세의 청을 거절하십니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일은 가나안 점령 과정에서 치뤄야 할 전쟁에 비하면 수월한 일이었습니다. 조상들에게 약속된 땅을 밟아 보는 것은 감격적인 일이지만, 그 땅을 점령하고 정착하는 것은 엄청난 희생이 필요한 일입니다. 따라서 “이것으로 네게 족하다”는 말은 “이만큼 겪은 것으로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모세에게 영광의 순간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그에게 더 이상의 짐을 지우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이제는 새로운 도전 앞에 있고, 그 도전은 새로운 지도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네게 족하다”는 말씀에서 우리의 연약함과 필요를 아시고 채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그 사랑이 오늘 우리에게 있습니다. 

4 thoughts on “신명기 3장: 이것으로 네게 족하다

  1. 완전한 사랑 이시고 온전하고 선하신 주님을 믿습니다. 오랫동안의 간구에 응답이
    없을지라도 좋으신 주님을 꼭 붙잡고 자족하며 사는 결단을 원합니다.
    항상 함께하시는 주님을 깨닫고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오물로 여기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질병과 혼란의 시대 이지만 이웃과함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주님께드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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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음을 기억합니다. 무엇인가 행동하기 위해서는 이해와 이성이 작용되어지면서 행하기 때문이지요. 때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에도 순종하여야 하는 때에도 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님 말씀 앞에 순종하는 믿음이 더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가나안의 모든 족속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대신 싸워주신다는 말씀이 참 다가옵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아가는 일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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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사람이 죽을 때를 모르기 때문에 열심히 산다는 말을 합니다. 언제 죽을 지를 알면 삶의 의지가 없어지고 그저 죽을 날을 기다리다 갈 것이라고 합니다. 모세가 꼭 가고 싶어한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하나님께로부터 이것으로 만족해라, 이제 그만, 여기까지! 들었을 때 그의 마음이 착잡했을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목표를 정하고 열심히 일하는데 거의 다 온 지점에서 손을 놓아야 할 때, “고지가 바로 저기인데” 지점에서 발이 묶일 때 사람의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는 것과 힘주었던 손을 놓아야 하는 때의 찰나적인 경계를 확대해서 펼치면 우리 삶의 스토리라인이 됩니다. 어찌보면 성공하는 삶, 순종하는 삶은 힘을 줄 때와 뺄 때를 아는 것, 내 의지로 할 때와 그저 몸을 맡길 때를 아는 것에 달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지혜가 있다면 아픔이나 슬픔이 덜하겠지요. 지혜가 부족하니 감사의 덕을 키워야 합니다. 여기까지 이만큼 온 것만도 감사하다는 마음을 지닐 수 있기를 원합니다. 문득,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 힘들게 기도하시던 예수님이 떠오릅니다. “그 때가 지나가 버리기를” 기도하실 만큼 괴로운 중에 이 잔을 없애 달라고 하십니다. 모세와는 반대의 청원을 올리십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역시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라는 순종의 마음으로 산을 내려오십니다. 하나님 앞에 부어진 제주로 마지막 한 방울까지 온전히 드립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는 것이 곧 죽음을 완전히 이기는 것임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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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살감의 욕심을 채울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주지의 사실을 모세가 모를 리 없었겠지만 우리의 정서 속에는 한번 더 라는 갈등이 늘 있게 마련인데 복된 삻이건 척박 한 삶이 건 좀더 살아보고 싶은 미련 때문에 주님의 한계를 넘는 어리석음을 끊어버리고 남은 삶에서는 주어진 것들로 만족하며 감사하며 살수있기를 간구합니다.
    내 욕심이 아니라 주님의 범주에서 만족 할 줄 아는 지혜를 주시고 이번 코비드도 잘 이겨내는 인내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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