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36장: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해설:

우리는 27장에서 므낫세 지파의 자손인 슬로보핫의 딸들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슬로보핫에게는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에게 분배된 토지는 사후에 다른 사람에게 넘겨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광야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전혀 문제되지 않았던 상황이 가나안 정착으로 인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들을 두지 못한 경우에 딸들이 토지를 물려받게 하고 딸도 없으면 가장 가까운 친족이 그 토지를 물려 받게 하도록 지시하십니다. 

36장에서는 슬로보핫이 속한 지파의 지도자들이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합니다. 슬로보핫의 딸들이 토지를 물려 받은 후에 다른 지파 남자에게 시집을 가면, 그가 물려받은 토지는 남편의 소유가 되어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처음에 분배 받은 토지의 일부를 다른 지파에게 빼앗기는 상황이 되어 버립니다. 므낫세 지파 지도자들은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을 세우 달라고 모세에게 요구합니다(1-4절).

모세는 이 문제를 주님 앞에 여쭈었고, 주님께서는 자신의 지파 안에서 결혼 상대를 찾게 하라고 하십니다(5-9절). 슬로보핫의 딸들은 이 규정에 따라 므낫세 지파 남자들 중에서 결혼 상대자를 찾았고, 그로 인해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에 정해 준 각 지파의 토지는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10-13절).

묵상:

므낫세 지파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분배 받은 영토의 일부가 다른 지파에게 넘어가게 될 것을 염려하여 모세를 찾았습니다.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노력은 비난 받을 일이 아닙니다. 정당하게 얻은 권리를 정당한 방법으로 지키고 누릴 수 있어야 좋은 세상입니다. 율법은 각자가 자신이 부여 받은 권리를 지키고 누릴 수 있게 해 줍니다. 

하지만 자신의 기득권을 무한정 키워 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제한을 가합니다. 한 지파 안에서는 유산으로 받은 토지를 거래할 수 있지만 다른 지파에게 넘기지는 못하게 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50년마다 한 번씩 희년을 지키게 하여 모두가 출발점에서 동일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규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욕망을 따라 사는 것에 대해 공간적 한계와 시간적 한계를 분명히 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기득권을 지키고 불려가는 일에 공간적 한계도, 시간적 한계도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진 사람들은 더 많이 가지게 되고 없는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있습니다. 2019년도 통계로 볼 때, 상위 10% 사람들이 미국 전체 부의 70%를 소유하고 있고 하위 50%의 인구가 미국 전체 부의 1.7%를 나누어 먹고 있는 실정입니다. 미국 회사의 CEO의 연봉은 보통 회사원 연봉의 278배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자본주의를 ‘카지노 자본주의'(The-winner-takes-all capitalism)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서 너무도 멀어진 모습입니다. 이토록 불의한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5 thoughts on “민수기 36장: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1. 한 달 반 걸려 민수기를 읽었습니다. 그사이 바이러스로 인한 팬더믹에,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으로 터진 시위에, 패이스 1과 2로 들어가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도 삭막하고 힘겹고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나날을 겪고 있습니다.
    직장에 출근할 때 남보다 이른 시간에 나가기에 사귐의 소리를 그 다음날 새벽에 하다가 집에서 일하도록 지시가 내려오고부터는 같은 날 아침에 읽고 묵상합니다. 집에서 일하면 편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근무 시간보다 훨씬 오래 컴퓨터에 매달려 있고 셀폰을 밤까지 손에서 놓지 못 합니다. 시간 맞춰 하는 미팅 등 신경쓰는 일로 저녁이면 지쳐 있습니다.
    민수기 11장을 읽기 바로 전날 앞으로 월급이 깎이고 해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발표가 있어 계산기까지 꺼내서 숫자를 주물렀습니다. 알량한 은퇴연금이 그냥 눈앞에서 사라지는 참이라 갑자기 막막했습니다. 그러고 11장을 읽는 아침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는 하나님의 말씀에 광야에서 샘물을 맛보았습니다. 내게 가진 것이 있어 산 게 아니고 하나님의 기적 같은 손길로 살아온 지난날을 돌이켜 보게 하셨습니다.
    통독을 여러 번 해도 그냥 넘어가곤 한 민수기를 다시금 접하며 사귐의 소리 사이트에 올려진 시편 119편 105절 말씀이 새삼스럽습니다. 다음 주부터 읽을 신명기에 마음이 설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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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모든것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주님을 믿습니다. 선 하시고, 거룩하시고
    공평하시고, 함께하시는 주님만 믿고 의지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주신 기업이 재물이 아니고 십자가의 은혜임을 깨닫고 자녀들에게 전수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만만치않은 질병과 어지러운 혼란가운데에서도 이웃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세상에 소개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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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인생은 그저 땅 따먹기 싸움의 행진인가…땅이 없으면 얻으려고, 있으면 빼앗기지 않으려고 끝없이 싸우는.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며, 흙에서 얻는 소산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운명체로서 인간은 땅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21세기까지 오는 동안에도 땅에 대한 집착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절대로 영원히 내 것으로 남을 수 없는 땅을 얻고자 싸움이 그치지 않습니다. 사회 문제의 귀결점이 경제적 평등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땅이 갈등의 원인을 일으키는 동시에 해결책이 되기도 한다는 어려운 모순을 보여 줍니다. 슬로보핫의 딸들은 지파 안에서만 결혼 상대를 찾아야 했습니다. 아들 노릇을 해야 하는 딸로서 아버지의 유산을 지키는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허리가 휘도록 땅을 파서 먹고 사는 인생의 고달픔은 땅이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겪는 일입니다. 육신의 고달픔에 덧붙여 정신적인 고달픔까지 겪어야 하는 된 것은 인간이 스스로에게 쏜 화살의 독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민수기를 마쳤으니 이제 새 책을 읽으며 새 기운을 받기를 원합니다. 땅만 내려다보지 않기를 원합니다. 소유가 아닌 존재를 위해 싸우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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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예나 지금이나 재산 문제 때문에 생기는 갈등은 비숫한가 봅니다, 재산 때문에 자기가 속한 지파의 남녀가 결한 하는 풍속 때문에 희귀한 병이 가장 많은 민족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인데 그 때문에 의학의 유전인자학에서 장족의 발전을 할 수 있던 것이 바로 그들이 공헌 했다고 생각이되는군요.
    경제 불평등은 시간이 가면 갈 수록 더 간격이 벌어진다는 것에는 모든 경제학자들이 동의하는데 해결할수 있는 답이 없다는 것이 문제인거 같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심각하게 인식하고 경제평등을 이루어 나가야 겠지만 잘못 이념으로 번질 염려가 있어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공정하고 평등한 하나님의 나라가 오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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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인간이 한 곳에 정착하며 사회를 이룰 때 부터 토지는 소중한 재산이 되었습니다. 특히 농업이 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옛날에는 소유한 토지가 곧 그 사람의 생계능력을 말해줬습니다. 한국도 1950년 토지개혁이 있기전에 조선 거의 대부분의 농지를 소수의 지주들이 가지고 있었서 여러 농민들은 소작농이나 떠돌이 화전민으로 삶을 연명해 갔습니다. 

    본문에 므낫세지파는 소유한 토지를 지키기 위해 자기 지파 딸들을 다른 지파로 결혼 시키지 않았습니다. 유목민으로 살 때는 이런 문제가 없었지만. 토지소유는 그만큼 민감한 주제이기도 했고 복잡한 문제였기 때문에 그렇게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지파는 영토를 얻음으로 인해 서로 거리가 더 멀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년제도와 결혼제도를 통해 토지소유 불평등을 방지하려고 한 것이죠.  

    한 연구에 의하면 미국에서 평균 백인가정의 재산은 흑인가정의 재산의 10배가 된다고 합니다. 이런 큰 차이는 소득과 학력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설명이 다 안 됩니다. 이게 설명이 되는 큰 이유가 바로 물려받는 유산의 차이였습니다.  흑인들이 노예로 살았을 때부터 전해져 내려온 유산 뿐 아니라 남북전쟁 이후에 여러 정책은 백인들에게 혜택을 줬지 흑인들은 배제되었습니다. 거기다 여러 방법으로 흑인들을 차별하고 분리해서 살게 했습니다. 슬프게도 여러 교회가 그 일에 앞장서기도 했고. 아직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극심한 부의 불평등은 지금 미국과 여러 자본주의 사회에서 꼭 부딪혀야 할 과제입니다. 눈 앞에 보이는 재 자신의 이익을 쫓는게 아니라 좀 더 멀리 하나님의 정의가 이땅위에 서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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