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31장: 미디안 대첩

해설:

31장에 기록된 사건은 25장에 기록된 싯딤에서의 이야기와 연관하여 읽어야 합니다. 끝내 이스라엘에 대한 저주를 끌어내지 못한 발람은 모압 왕 발락에게 이스라엘을 자멸시킬 수 있는 전략을 가르쳐 줍니다. 모압 여성들을 시켜서 이스라엘 백성을 바알브올 신전 제사에 끌어 들여 제사 후에 이어졌던 혼음 파티에 참여하게 한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징계 하셨고, 일이 수습된 후에 모세에게 “너희는 미디안 사람을 원수로 여겨, 그들을 쳐죽여라”(25:17)고 명령하십니다. 

31장에는 모세가 그 명령을 수행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각 지파에서 천 명씩 선발하여 만 이천 명의 원정대를 만들고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를 필두로 하여 미디안을 공격합니다. 이 공격에서 이스라엘 군인은 희생자 하나 없이 미디안 남성들을 전멸시킵니다. 발람도 이 전쟁에서 죽음 당합니다. 원정대는 여성들과 아이들 그리고 약탁한 짐승과 물품을 가지고 진으로 돌아옵니다(1-12절).

진 바깥으로 나가 원정대를 맞은 모세는 처녀들을 제외한 모든 여자들을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그들은 싯딤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성적으로 유혹하여 죄를 짓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13-18절). 또한 모세는 원정에 나갔던 군인들에게 진 바깥에서 일 주일 동안 머물러 지내면서 부정탄 것을 모두 벗도록 명령합니다(19-24절).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전리품의 절반은 원정대가 가지게 하고 절반은 이스라엘 회중에게 주라고 하십니다. 원정대에게 준 전리품의 오백분의 일은 제사장에게 주고, 회중에게 준 전리품의 오십분의 일은 레위인에게 주라고 하십니다(25-30절). 모세와 엘르아살은 주님께 명령 받은대로 시행합니다(31-54절).

묵상:

구약성경에서 전쟁 이야기를 읽을 때면 자주 당혹스럽습니다. 때로 하나님께서 내리셨다는 명령이 너무 잔인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미디안 남자들을 전멸시키라고 하십니다. 모세는 남자와 동침한 적이 없는 처녀들만 남겨 놓고 여성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전리품을 분배하는 기준에 대해서도 말씀 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성품(사랑, 정의, 자비, 용서, 자비, 공평, 평화 등)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전쟁 이야기들을 ‘영적 전쟁’에 대한 비유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하나님의 성품과 행동에 대한 의문들을 피해 갈 수는 있지만 바른 해석은 아닙니다. 이 이야기들이 안겨 주는 의문들을 다 해결하지 못해도 있는 그대로 읽고 받아들이는 것이 옳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디안에 대한 철저한 징벌을 요구하셨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며, 그것이 이스라엘의 미래에도 필요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음’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측면입니다. 우상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면이 없습니다. 우리가 창조한 신이라면 그에 관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창조주요 전능자요 절대자이며 초월자이시라면, 그분에 관한 이야기 혹은 그분이 행하신 이야기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면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벧후 3:8)는 베드로 사도의 말씀을 기억한다면, “이해할 수 없어!”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말도 안 돼!”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창조주 앞에 선 피조물의 마땅한 태도라고 믿습니다. 

4 thoughts on “민수기 31장: 미디안 대첩

  1. 초월자 되신 하나님앞에 겸손히 섭니다. 때로는 나의 생각과 경험, 심지어 상상도 할수 없는 일들이 다가올 때도 많이 있지만, 겸손히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이해갈 수 없는 명령 혹은 말씀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기억합니다. 맹신이나 문자적인 해석은 위험할 수 있으나, 그분의 선하심과 다른 차원위에 계시면서 나와 내제 하시는 신비로운 그 분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오늘도 순종하며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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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머리와 지식으로 완전히 이해할수 없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창조주 이시고
    사랑이시고 공평하시고 좋으신 하나님 이심을 고백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세상이 줄수없는 평강임을 항상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질병과 혼란의 시대에 사랑과 기쁨과 평화를 누리는 비결을 이웃과 더불어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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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구약 읽기의 어려움이 전쟁의 서술이나 제사 규정에서 반드시 생깁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견디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성경은 “꿀처럼 단” 말씀이요 내 길을 비춰주는 등불이라는 생각이 깊이 주입되어 있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는 말씀도 그런 “틀”에 넣어 모든 말씀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의지가 앞서기도 합니다. 구약 읽기의 어려움은 곧 해석의 어려움이 되기도 합니다. “말씀대로” 산다는 말이 부담스럽게 들리게 된 것은 성경을 다 읽어보고 난 뒤부터 입니다. 불편한 말씀을 놓고 묵상을 해보니 성경을 읽는 것과 성경대로 사는 것이 각각 다른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씀대로 산다는 말은 하기도 쉽고 듣기도 좋지만 정작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성경의 권위나 신학적인 이해의 중요성 등이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내 고민, 내 공부가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그냥 믿으라, 성경에 써 있는대로 읽고 외우라,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넘어가라….하는 소리는 정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답은 아직 못 찾았습니다. 말씀을 선택적으로 골라 선택적으로 따르는 것은 결코 바라는 바가 아니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희미하게 보고 부분적으로 보는 중에도 보이는 만큼에 충실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성경 읽기는 묵상으로 이어지고 묵상은 고민과 결단으로 옮겨갑니다.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 계절과 계절이 겹치는 간절기에 만나는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있다면 불분명하고 불완전한 모습 또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은혜임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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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감히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려고 암누리 머리를 굴려봐도 역시 하나님은 바로 하나님이시며 I am who I am, 전리품도 역시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이지만 내 머리로 이해 못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라고 믿습니다, 하난미의 성품을 좀더 이해할수있는 은혜를 기도합니다.
    이번 후로이드를 통해 새롭게 변화하는 기독교가 되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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