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5장: 자멸의 위기 앞에서

해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모압 땅에 있는 싯딤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발람이 자기 고향으로 돌아간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여성들과 음행을 하기 시작합니다. 모압 여성들이 이스라엘 남성들을 그들의 신전 제사에 초청했고, 그들의 신전 제사는 혼음 파티로 이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남성들은 고된 광야 여행이 끝났다는 안도감에 영적 긴장감을 잃었고 바알브올 신전에서 성적 쾌락에 탐닉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영적 간음과 육적 음행의 죄를 즐깁니다(1-3절).

31장 16절에 의하면, 이것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발람이 발락에게 가르쳐 준 전략이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이스라엘에 대한 저주 예언을 얻어내지 못한 발람은 발락에게 이스라엘을 자멸하게 만드는 비밀 전략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이스라엘 남성들은 고된 광야 유랑으로 인해 오래도록 금욕적인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율법은 성적 욕망을 절제하도록 가르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남성들이 바알브올 신전에서 행해지는 혼음파티를 경험하면 그동안 억제되었던 성적 욕망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것임을 간파했습니다. 그 전략은 보기 좋게 들어 맞았고, 음란의 영은 전염병처럼 번져 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로 인해 크게 진노하셔서 극단의 대책을 모세에게 지시하십니다(4-5절). 이스라엘 백성을 제사장 나라로 만들기 위한 지난 40년, 아니 지난 수백년의 계획이 어그러질 위기에 봉착했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염병으로 그들을 징계하십니다.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이 회막 어귀에서 통곡하고 있을 때, 시므온 가문의 지도자인 실루의 아들 시므리(14절)가 모세와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보란듯이 미디안 여성 고스비를 데리고 음행을 하기 위해 집으로 들어갑니다(6절). 모세를 통해 행해진 처형과 염병의 징계를 조롱한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있던 비느하스(아론의 손자이며 엘르아살의 아들)가 창을 들고 그 집으로 들어가 침상에 누운 남녀를 찔러 죽입니다(7-8절). 그 순간 염병이 그쳤는데, 이미 이만 사천 명이 희생을 당한 후였습니다(9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비느하스가 “나 밖의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자손의 죄를 속해 주었기 때문”(13절)에 그의 가문으로부터 제사장이 영원히 이어지게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또한 미디안 사람들을 원수로 여겨 멸망시키라고 하십니다(16-18절). 모세는 개인적으로 미디안 백성에게 신세를 진 셈인데, 이제는 원수로 여겨야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묵상:

한 개인도 그렇고, 한 사회도 그렇고, 제대로 세워지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의 일입니다. 공들여 쌓은 탑을 한 순간에 무너지게 하는 힘은 욕망에 있습니다. 모든 종류의 욕망은 인간이 인간으로 살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문제는 인간의 죄성으로 인해 욕망이 정해진 방향과 한계를 넘어서기를 탐하는 데 있습니다. 식욕이든 성욕이든 명예욕이든 정해진 방향과 한계를 넘어서도록 유혹하면 그 사람 혹은 그 사회는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립니다.

싯딤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어난 사건은 우리가 죄성에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자각하게 만듭니다. 부정하게 욕망을 자극하고 유혹하는 것이 한 사회를 얼마나 무참하게 무너뜨리는지를 깨닫습니다. 그것이 지금 한국 사회에서 보고 있는 현실이고,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모든 욕망을 허락 하라! 모든 형태의 욕망 추구를 보장하라!”는 거센 요구 앞에서 우리는 모세와 아론처럼 하나님 앞에 업드립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를 사로잡으셔서 거룩하게 살아가게 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4 thoughts on “민수기 25장: 자멸의 위기 앞에서

  1. 세상에 시므리와 고스비가 활개를치며 다닙니다, 그것을 흴끗, 흴끗 처다봅니다.
    말씀으로 무장된 비느하스를 원합니다. 속히 코로나사태가 지나가기를 간구합니다.
    교만과 편견으로 유색인종 차별하는 자들의 생각과 마음에 십자가의 길을 걷도록
    이웃과함께 고민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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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인간의 죄성은 불 앞에 선 성냥개비와 같습니다. 상황과 환경만 갖추어진다면, 그 성냥개비는 불에 탈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나약한 인간의 본성을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하며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이 가득차서, 그 사랑의 증거를 흘러보내기를 기도합니다. 내 삶은 성냥개비와 같으나, 세상의 욕망의 불이 아닌, 성령의 불이 내 삶을 감싸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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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만 따르며 살아야 할 백성이 정반대의 길을 갑니다. 미안해 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하나님을 조롱하듯 다른 길을 갑니다. 정도의 차이일 뿐 나도 이렇게 살지 않나…외양으론 시므리 같이 대놓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지 않을지라도 (혹은 못할지라도!) 안에서 자라는 욕심을 꺾지 못해 무익한 갈등과 고민 속에 던져질 때가 있음을 봅니다. 미국 여러 도시에서 경찰의 권력 남용을 규탄하고 만연한 인종 차별을 폐지하자는 시위가 며칠째 계속 되고 있습니다. 평화롭게 시위를 하는 중에 얼마 안 떨어진 거리에선 상점 파괴와 약탈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게 문을 부수고 들어가 손에 잡히는대로 물건을 훔치는 들고 시므리 같이 뻔뻔한 모습이 뉴스화면에 생생합니다. 경찰은 시위하는 사람들의 질서에만 신경을 쓰고 약탈하는 무리의 무질서에는 손을 놓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 이것 자체가 경찰을 또 규탄하게 만든다는 뉴스 해설도 있을 정도입니다. 코로나로 두달 넘게 가게 문을 닫고 있다 이제 겨우 영업 재개를 준비하는 업주들에게 난데없이 찾아온 불행이 그저 안타깝기만 합니다. 한 사람, 한 무리의 잘못이 퍼뜨린 증오의 불씨가 온 전체로 흩어져 불을 내고 있습니다. 좋은 일 선한 영향력은 전파가 오래 걸리는데 악한 것은 순식간에 퍼지니 이 또한 안타깝고 무서울 뿐입니다. 본문에 시므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비느하스도 있습니다. 약탈과 방화 장면을 보면 시위가 무슨 소용인가 싶다가도 지금까지 일어난 사회적 합의나 진보 뒤에 시위와 각성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생각해보면 잘못된 관행을 지적하는 시위는 헌법이 보장하는 시민 권리이자 의무인 것을 봅니다. 시므리의 죄를 보면서도 그러나 비느하스처럼 살지 못하는, 소시민 이민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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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우리의 가장 약한부분을 걸고 넘어지려는 악한 세력에 허무하게 무너지는 인간의 죄성을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잘 살다가도 돈과 이성에 무너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현실에서 늘 예수니께 초점을 마추어 거룩 한 삶이 유지되기를 간구합니다.
    George Floyd로 인한 갈등이 빠른 시일내에 해결되어 평화로운 일상으로 되돌아가기를간구합니다, 평등 한 사회로 서로가 서로를 준중하는 사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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