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2장: 욕망의 속성

해설: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은 모압 평야에 이릅니다. 요단 강만 건너면 가나안 땅에 이릅니다. 이스라엘은 모압을 공격할 뜻이 없었으나, 모압 왕 발락은 아모리가 이스라엘에게 전멸 당했다는 소식에 두려움을 느낍니다(1-3절). 그는 발람이라는 점쟁이에게 사신을 보내어 자신들을 위해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청합니다(4-6절).

당시 발락이 살던 곳으로부터 발람이 살던 브돌까지는 여러 날이 걸리는 먼 거리였습니다. 사신이 발람에게 이르러 왕의 전갈을 전하자, 발람은 “주님이 나에게 하시는 그 말씀”(8절)을 듣기까지 기다려 달라고 하고는, 그 밤에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응답을 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발람에게 나타나셔서 이스라엘은 “복을 받은 백성”(12절)이니 저주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다음 날 발람은 왕의 청대로 할 수 없다면서 사신을 돌려 보냅니다.

그 소식을 들은 발락은 더 높은 사람들로 더 큰 사절단을 꾸려서 다시 보냅니다(15-17절). 그들이 발람에게 왕의 뜻을 전하자, 발람은 전과 같은 답을 하면서도 “그대들은 오늘 밤은 이곳에서 묵으십시오. 주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더 말씀하실지 알아보겠습니다”(19절)라고 여운을 남깁니다. 그 밤에 발람은 다시 하나님께 뜻을 여쭈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너는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거라. 그러나 내가 너에게 하는 말만 하도록 하여라”(20절)라고 답하십니다.

발람은 그것을 하나님의 허락으로 여기고 다음 날 사신들을 따라 모압으로 향합니다(21절). 이 지점에서 성경 저자는 “그러나 그가 길을 나서는 것 때문에 하나님이 크게 노하셨다”(22절)라고 씁니다. 지난 밤에 발람에게 “그들과 함께 가거라”고 하신 것은 허락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네가 정 그렇게 가고 싶으면 가던가……”라는 뜻이었습니다. 발락에게 가고 싶어하는 욕망이 강한 것을 아시고 그 욕망에 그를 맡기신 것입니다. 그 대답을 듣고 발람이 자신이 욕망에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발람은 그것을 하나님의 허락이라고 스스로를 속이고 길을 떠났던 것입니다.

모압으로 가는 길에서 하나님은 여러 가지로 그의 길을 막아섭니다. 하지만 욕망으로 마음이 어두워져 있던 발람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애꿎게 타고 있던 나귀를 때립니다(22-28절). 참다 못한 나귀가 발람에게 대들었고(28-30절), 그 일로 인해 발람의 어두워졌던 마음이 밝아집니다. 그제서야 그는 하나님의 천사가 자신의 길을 막아선 것을 봅니다(31-33절). 뒤늦게서야 발람은 회개하고 돌아가겠다고 하지만, 천사는 가던 길을 계속 가되 “내가 말해 주는 것만 말하여라”(35절)고 하십니다.

발람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발락은 너무도 기뻐서 국경까지 나아가 맞이합니다(36절). 발락은 발람을 격하게 환영했지만 발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 외에는 할 수가 없다고 답합니다(37-38절). 

묵상:

발람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모든 신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발람은 잡신들과 소통 하면서 인간의 길흉화복을 점쳐주고 액땜을 해 주면서 유명해진 무당이었습니다. 영매들은 모든 신 위에 뛰어나신 참된 하나님을 인정합니다. 다만, 잡신에게 노예가 되어 있기에 그 하나님을 섬기지 못합니다. 발람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되고 영원한 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백성과 관련된 사건을 대면하자 그 하나님을 찾은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또한 인간이 욕망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 그리고 욕망에 의해 얼마나 쉽게 자신을 속이고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는지를 봅니다. 발람은 발락이 자신을 융숭하게 대접해 주는 것에 흔들립니다. 일국의 임금이 이렇게 하는데 흔들리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면서도 “그래도 가면 안 될까요?”라고 여쭌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망각하여 “생각이 허망해져서, 그들의 지각없는 마음이 어두워졌다”(롬 1:21)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부끄러운 정욕에 내버려두셨다”(26절)고 간파했습니다. 발람이 하나님께 “가면 안 될까요?”하고 여쭈었을 때 하나님은 그의 욕망에 내버려 두신 것입니다. 그럴 때 깨우치고 돌아서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도 자주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눈 질끈 감고 “분명히 허락하신 겁니다”라면서 욕망을 따라갑니다.    

3 thoughts on “민수기 22장: 욕망의 속성

  1.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 중 하나가 욕망의 한계가 없다는 죄성을 갖고있기 때문인데 모든 동물들은 포식을 한 다음에는 더 이상 먹거리를 쌓아 두지 않는 것을 이해하며 우리의 죄성을 인식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기도 할 때 필요한 양식으로 채워 달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더 많이 채워 여유분을 저축하려는 내 자신을 바라봅니다.
    늘 겸허한 미음 자세로 주님을 섬기며 물질의 욕망에서 벗어 나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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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때론 나의 기도가 기도 응답이라는 확신이 나의 욕망과 탐욕이 가득차서, 나의 의지가 하나님 응답이라는 확신으로 살때가 있습니다. 그리 할때, 나귀를 통해서 이야기 하듯이, 다른 사람과 상황을 통해서 깨닫게 해주시니, 그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더 깊게 알고, 그 뜻에 순종하는 하루, 제 인생이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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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성경에서 나를 보는 일은 괴로운 일입니다. 나의 모자라는 모습이 오늘 본문에도 나와 있습니다. 인정을 받자 우쭐해지는 마음, 내가 원하는대로 해석하고 합리화 하는 마음, 하나님이 용서해주시겠지 하는 마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공격할 것을 두려워하는 발락 왕의 모습도 앞날을 놓고 두려워하는 나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의지하면서도 믿음으로 걸음을 내딛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유대인은 사고의 도약 (leap of thought) 이 아니라 행동의 도약 (leap of action) 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아브라함 죠슈아 헤셸 랍비가 말한 것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믿음은 사고가 아니라 행동이라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조심할 부분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겠거니 하면서 혹은 이게 내 믿음이거니 하면서 덥석 행동부터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열심히 생각만 하는 것도 답답하지만 어느 순간 “저지르자!”는 소리를 듣는 것도 난감한 일입니다. 어째야 할까요. 발락은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람을 찾고, 발람은 답을 주기 위해 하나님께 묻습니다. 발람은 시작은 맞게 했는데 그 길에서 벗어납니다. 자기 욕심, 내재된 욕망을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왕의 사신들 앞에서 자기가 뭐라도 된듯한 착각을 합니다. 자기의 모습이 커 보입니다. 왕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은 나의 두 가지 약점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두려움에 쉽게 빠지는 연약한 믿음과, 내 욕심을 따르면서도 하나님 뜻을 거스리는 것이 아니라고 합리화하는 죄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 불쌍히 여겨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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