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3장: 마음으로 본다

해설:

바란 광야에 이르자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선발하여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합니다(1-16절). 모세는 그 정탐의 목적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 위한 전략을 짜기 위함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17-20절). 하지만 실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알아 보기 위한 시험이었습니다. 

12명의 정탐꾼은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두루 다니며 모세가 지시한 사항들을 알아 보고 돌아옵니다(21-24절). 그들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을 모아 놓고 정탐 결과에 대해 보고합니다. 그들은 거대한 포도 송이가 달린 포도나무 가지를 메고 왔는데, 그것은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라는 증거였습니다(25-27절). 그 땅이 비옥한 곳이라는 사실에는 이의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가나안 주민들이 매우 강하고 성읍들은 요새화되어 있다는 사실에 있었습니다. 게다가 거기에는 아낙 자손도 살고 있습니다(28-29절). 아낙 자손은 거인족인 네피림(창 6:4)의 한 분파(33절)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정탐꾼의 다수는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립니다. 

부정적인 보고로 인해 분위기가 싸해지자 정탐꾼 중 하나로 갔던 갈렙이 나서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노력합니다(30절). 하지만 대세는 부정적으로 기울어져 버렸습니다. 정탐꾼들은 계속하여 가나안 땅에 대해 부정적인 소문을 퍼뜨립니다. 소문이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퍼져 가면서 점점 부풀어졌고, 백성는 순식간에 그 소문에 휘둘려 버립니다(31-33절). 

묵상:

예수님은 “눈은 몸의 등불이다”(마 5:2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눈은 마음을 의미하고, 몸은 인생을 의미합니다. 마음이 인생을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그 무엇보다도 너는 네 마음을 지켜라”(잠 4:23)고 충고합니다. 우리는 눈으로 본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동일한 것을 보아도 마음이 어떠냐에 따라 보는 것이 달라집니다. 차를 사려고 마음 먹으면 For Sale이라고 쓰인 차가 천지에 가득해 보이는데, 일단 차를 사고 나면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마음이 우리 눈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든, 어떤 상황을 보든,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른 결론에 이릅니다. 아무리 위태로운 상황에 있다 해도 그 상황을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여전히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갈렙과 다른 정탐꾼과의 차이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는 것이 다르면 결과도 달라집니다. 

믿는다는 말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본다는 뜻이고, 보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으로 산다는 뜻입니다. 

5 thoughts on “민수기 13장: 마음으로 본다

  1. 흔히 우리가 무엇을 보고 관찰할 때 아는 것 만큼만 보인다는 말과 같이 내 마음 속에 있는 그물 망들을 연결하며 사물을 파악하듯 각 지파의 대표들도 그들 안에 있는 믿음의 분량대로 보고 느겼을 것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본다는 즉 내 마음을 하나님의 프리즘에 통과시켜 보고 결정 해야하는데 늘 앞서있는 내 근본 감정이 모든 것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갈렙과 같은 눈으로 사물을 보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지혜를 구하는 아침입니다.
    갈렙과 여호수아 같은 담대 한 마음으로 이번 코비드 기한을 이겨 나가게 혜 주시고 이로인해 좀더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대는 믿음으로 성장하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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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가겠다, 함께 싸우겠다, 그리고 승리를 주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믿고 영적 무장을 매일 아침 하기를 원합니다.
    아낙 자손으로 채워져 있는 세상에 담대히 나아가 싸워 승리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믿음의 전신갑주로 무장하여 이웃과 더불어 우한페렴과 싸워 이기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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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마음의 눈이 어디를 보고 있는가? 라는 질문은 항상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좋은 척도가 되어집니다. 내 마음이 쏟아진 그 곳이, 진정원하는 것임을 누구도 알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많은 유혹과 문제 앞에 서게 되어집니다. 상황과 환경을 보면 좌절하고 불평할 수 밖에 없는 시간들이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항상 마음의 눈을 들어서, 상황을 보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변하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지금 눈 앞에 보이는 상황과 환경은 희망이 없어보이지만, 오늘도 믿음의 눈을 들어 주를 바라봅니다. 나의 영원하시고 은혜로운신 하나님, 세계를 초월하시지만, 내제 하시는 하나님. 그 분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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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팬데믹 초기에 보였던 리더들의 반응이 떠오릅니다. 대응 전략이 다 같을 수 없었던 것은 나라마다 상황이 같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전염경로를 파악해 바이러스 전파를 차단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필요한 일이니 사람 사이에 거리를 두고, 자각증세가 없는 중에도 세균을 전파할 수 있으니 마스크를 쓰자고 권고를 해도 듣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로마 광장이 텅 비고 시신을 담은 관들이 즐비한 이탈리아발 뉴스를 보면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뒤에도 교회 금지령은 가장 큰 갈등을 일으킨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신다, 종교를 탄압하지 말라, 바이러스는 곧 사라진다…코비드-19 위기가 한 풀 꺾인 듯한 지금도 이까짓 바이러스에 움추려들면 안된다는 주장과 아직도 마음을 놓기에는 이르다고 하는 주장으로 갈라집니다. 경제적인 문제가 걸려 있으니 어느편 주장이 “정답”이라고 선뜻 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열 두 명이 가나안 땅을 40일동안 살펴보고 온 뒤에 보고한 내용은 서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살기에 좋은 땅입니다. 문제는 그 땅을 정복할 수 있겠는가 입니다. 주민들이 비실비실해 보이거나 방위망이 허술했으면 당장이라도 군대를 보냈을 것입니다. 땅이 탐이 나기는한데 싸워야 할 사람들은 건장한 거인들이요 자기들은 메뚜기 같아 보인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인생의 우화와 같습니다. 국정전략을 짜는 리더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소시민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하는 가르침과 다르지 않습니다. “인생은 그저 살아지지 않는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으면 노력을 해야 한다. 원하는 것이 그저 뚝 떨어지지 않는다. 반드시 어려움이 있다. 반대도 있고 실패도 한다. 그래도 겁내지 말고 계속해야 한다.”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넘어야 할 산을 만난 지금 갈렙처럼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외쳐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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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신앙인들에게는 내일에 대한 보장이 분명히 있지만 아무리 귀한 믿음을 소유했을지라도 미래의 두려움 없이 사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욥과 같이 훌륭한 신앙의 소유자도 고난을 당했을 때 자신이 두려워 하던 것이 임했다는 고백을 한 것을 보면 누구일지라도 내일에 대한 두려움은 조금씩 갖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은 하나님으로 부터 보장되어 있었을지라도 그들의 마음 한 구석은 미지의 곳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장해 주셨지만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큰 용사로 부름을 받았던 기드온도 양털을 통한 확인 과정을 통해 마음이 담대해진 것을 보면 어쩔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 말씀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의 연약한 믿음보다 나은 것이 있을까 하는 자문을 하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상황은 변했지만 내가 그들과 동일한 처지에서 더 나은 행동을 보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 요즘같이 바이러스로 인해 확실한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기도의 응답이 현실로 나타나기 까지 불안한 마음을 금할 길 없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해야 하는 것은 나는 하나님을 속였어도 지금껏 하나님은 한 번도 나를 속이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열 두지파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려 열 둘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들의 실수라면 하나님께서 보장해 주신 것을 사람의 생각으로 확인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나의 생각이 다를 때 나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에 맞추는 것이 바른 신앙일 것입니다. 만일 나의 생각이 우선되어 하나님의 생각을 따르지 않는다면 아무리 보장된 미래가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보장된 것도 바꾸어 버리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장하신 미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동일하게 제공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앙인들의 삶에 좌절과 패배의 경험이 많은 것은 자신의 생각이 늘 하나님 생각보다 우선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며 나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만일 나의 생각이 세상적이고 육신적이며 나의 욕망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생각과는 다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세상적이 될 수 없겠지요. 정욕적이고 욕망적인 것은 아닐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 자비로운 마음, 성결하고 화평한 마음. 이런 성품의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 하나님의 생각을 자신의 삶에 적용시키는 사람일 것 같습니다. 나의 생각이 삶의 현장에서 나타날 때 그런 세상적인 생각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속히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꾸는 습관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주님의 생각만으로 가득한 하루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목회자 분들도 쉽지 않을 것 같은 같은데 평신도에게 너무 가혹한 요구가 아닐까요. 그렇지만 원 위치로 돌이키는 훈련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무슨 생각을 했을지라도 무슨 행동을 했을지라도 주님의 생각으로 돌아오고 주님의 성품으로 돌이키는 삶이 믿음의 삶을 희망하는 신앙인의 삶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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