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9장: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는 삶

해설:

시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로부터 탈출한 후 두 번째 유월절을 지킵니다(1-5절). 유대력으로 1월은 아빕월이라 불렀는데, 그 달 14일에 유월절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던 날 죽음의 사자가 양의 피가 문설주에 묻은 이스라엘 백성의 집들을 “뛰어 넘었던”(유월)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유월절을 준비하고 있을 때, 시체에 접촉하여 부정해진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유월절 제물을 바치게 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모세는 주님의 지시가 내릴 때까지 기다려 보라고 이른 뒤에 증거궤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6-8절). 주님께서는 유월절 기간에 부정해진 사람들이나 여행 중인 사람들은 한 달 후 즉 2월 14일에 따로 유월절을 지키라고 이르십니다(9-12절). 반면, 유월절 기간 중에 부정 타지도 않고 여행도 가지 않았다면 누구나 유월절을 지켜야 합니다. 만일 유월절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지키지 않는다면 “자기 백성에게서 끊어질 것”(13절)이라고 엄중히 경고하십니다. 유월절만큼은 그들 중에 함께 살고 있는 이방인들에게도 예외가 허용되지 않습니다(14절).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지시대로 성막을 세우던 날, 구름이 성막을 덮습니다. 밤이 되면 그 구름이 불처럼 보였습니다(15-16절). 그 구름이 성막 위로 걷혀 올라가면 이스라엘 백성은 진을 거두어 행진을 했고, 구름이 내려와 머물면 그 자리에 진을 폈습니다.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으면 일 주일이든, 한 달이든, 일 년이든 그곳에 머물렀고, 구름이 떠오르면 진을 거두어 행군을 했습니다. 때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만 머물러 있을 때도 있었는데, 그런 경우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어김없이 진을 걷어 행진을 했습니다(17-23절).

묵상:

흔히들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개역개정 성경이 낮에는 구름 기둥이 성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불기둥이 나타난 것처럼 번역해 놓았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생겼습니다(15절). 이 구절에 대해서는 새번역이 옳습니다. 낮 동안에 성막을 덮었던 구름이 밤이 되면 불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얼른 생각하면, 구름의 상태에 따라 머물 때와 떠날 때를 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혹독한 영적 훈련이었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모든 계산과 이론과 판단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지시만을 따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구름이 한 곳에 오래도록 머물러 움직이지 않을 때, 그들은 얼마나 불안하고 답답했을까요? 반대로, 구름을 따라 진을 친 다음 날 다시 구름이 떠오를 때, 그들은 얼마나 괴로웠을 까요? 모든 상황을 고려할 때 계속 행군하는 것이 옳다 싶은데 구름이 멈춰 설 때, 그들은 갈등했을 것입니다. 혹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이제는 떠나야 싶은데, 구름이 그대로 머물러 있을 때, 그들은 또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이것은 우리의 영적 여정과 매우 닮았습니다. 이 영적 여정에서 우리가 매일 훈련하는 것은 내 생각과 판단과 계획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 된 본성은 구름 기둥의 인도를 무시하고 우리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길을 따라 가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때로는 그것이 멸망의 길이라 해도 고집스럽게 그 길을 가려는 것이 우리의 죄성입니다. 영적 생활은 매일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분별하고 그 손길을 따라 순종하는 과정입니다. 

4 thoughts on “민수기 9장: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는 삶

  1. 개역 개혁 성경에 왜 불기둥 구름 기둥이라고 “기둥”이라는 말로 번역되었는지? 기둥이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주님의 지시에 따라 사는 삶은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쉬울 것 같지도 하지만 실은 내 안에 있는 모든 욕심과 죄성을 내려놓고 주님으 뜻에 따라 사는 삶이기에 내 마음의 주파회로가 주님에 전파회로와 똑 같아야 잡음이 없이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될거 같은데 어리석은 나는 내 주파수는 내 욕심에 고정시켜놓고 주님의 주파수를 자꾸 바꾸려는 꼼수가 보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향하여 내 귀가 늘 열려있기를 간구하며 오늘도 주남의 말씀에 초점을 맟추는 하루로 은혜 받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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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매일 아침 말씀이 구름기둥이 되어 의지하고 순종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화려하게 보이는 세상의 부귀영화는 멸망의 길 인것을 항상 기억하겠습니다.
    주님이 가시는곳에 따라가고 멈추시면 멈추는 오늘이 이웃과함께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주님의 계획이 폐렴에 관한 정부 정책이 되도록 간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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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복음 성가 중에 “주님 말씀하시면” 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라, 주님 말씀 하시면 내가 멈춰서리라.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앞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인도하소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에만 순종하며 그 길을 인도하시는 분을 쫒아가는 삶이 제 삶이길 기도합니다. 주님보다 먼저가지 아니하고, 주님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분이 원하시는 것에만 순종하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제가 하나님보다 먼저 계획하고, 실행하며, 하나님께서 수습해주시기를 원하는 기도를 할때가 상당하지요. 주님과의 깊은 관계로 인해서, 항상 하나님 말씀에 반응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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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나그네가 길을 가는 모습을 묘사할 때 흔히 “구름 따라” 길을 간다고 합니다. 목적지를 알고 갈 때는 그렇게 표현하지 않는데 낯선 길을 갈 때, 딱히 정해진 목적지가 없이 (정처없이) 걸을 때, 그 마을 사람이 아닌 객지 사람이 걸을 때 “구름 따라” 걷는다고 합니다. 한편으론 현실과 동떨어진 것을 말할 때 “뜬구름” 같다고 표현합니다. 구름은 당연히 다 뜬구름인데 굳이 둥둥 떠 있는 상태를 드러내어 현실이라는 땅으로부터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아마도 사람이 발을 붙이고 사는 이 땅과 눈을 들어 올려다 보는 하늘 사이의 차이를 표현한 것인가 봅니다. 크리스찬은 구름을 따라 행진하는 모습을 순종의 한 모델로 여깁니다. 매일 구름을 보면서 하나님의 명령을 확인하며 움직입니다. 거대한 집단이 일사천리로 움직입니다. 구름 중에서도 눈여겨 보는 구름이 있습니다. 성막을 안내하고 인도하는 구름을 보는 눈이 영적인 분별력의 예표였을 것입니다. 성막이 우선적으로 자리를 잡아야 다른 지파들이 성막 주변에 진을 칠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해야 할 일을 하늘의 구름이 알려준다는 것은 사뭇 시적이기도 하고 초현실적이기도 합니다. 구름은 우리를 움직이는 내면의 동기가 한층 올라갔음을 보여주는 지도 모릅니다. 본능적인 욕구, 사람의 법에 묶여 있던 존재가 그 너머를 볼 수 있게 되었음을 이스라엘 무리에서 봅니다. 유타 주정부가 유타에는 산이 많아 등산이나 스키를 즐기기에 최고라고 선전하면서 쓰는 말이 있습니다, “Life Elevated” 크리스찬은 삶을 높이는 데 관심을 두되 현실의 재물이나 명성의 높아짐을 목표로 삼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한층 높아진/가까와진 상태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내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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