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6장: 나실인으로 살기

해설:

다음으로 ‘나실인’으로 서약한 사람에 대한 규정이 이어집니다. ‘나실인’의 히브리어 어근 ‘나자르’는 ‘구별하다’는 의미입니다. 레위 지파가 아닌 사람들 중에서 일정 기간 거룩한 일에 자신을 구별하여 바치기를 원할 경우 나실인의 서약을 행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중 삼손, 사무엘, 바울 등이 나실인 서약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나실인 서약은 남자나 여자 모두가 할 수 있습니다. 이 서약을 한 사람은 정한 기간 동안 포도에서 난 것은 어느 것도 먹지 말아야 하고(2-4절), 머리카락을 밀어서도 안 되며(5절), 시체를 접촉하지 말아야 합니다(6절). 심지어 부모나 형제가 죽었어도 시신을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7절). 만일 시체를 접촉하는 일이 발생하면 일주일 동안 자가 격리를 한 다음 머리카락을 밀고 정해진 절차를 따라 정결하게 하는 예식을 행해야 합니다. 그럴 경우, 그 이전까지의 서원 기간은 무효가 됩니다(9-12절). 

서약한 기간이 다 차면, 그 사람은 정해진 제물을 제사장에게 가져가고, 제사장은 절차에 따라 그 제물을 하나님께 바칩니다(13-17절). 그런 다음 그 사람은 회막 어귀에서 머리털을 밀고 그 머리털을 제단 불에 얹어 태웁니다(18절). 제사장이 남은 예식 절차를 행하면 서원 기간은 끝이 나고, 서원한 사람은 모든 금기에서 풀려납니다(19-20절).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이 백성을 축복할 때 사용할 축복기도문을 전해 주십니다(24-26절). 이것은 제사나 예배를 마칠 때 제사장이 회중을 위해 올린 기도문입니다. 축복기도문은 세 문장으로 되어 있는데, 각 문장은 “주님께서”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축복을 주시는 분은 제사장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함입니다. 제사장은 세 가지의 축복 즉 “지켜주심”(24절), “은혜”(25절) 그리고 “평화”(26절)를 기원합니다. 제사장이 그렇게 회중을 위해 축복할 때 하나님은 “내가 친히 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을 주겠다”(27절)고 약속하십니다. 

묵상: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레 11:4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룩’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이뤄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히브리어에서 ‘거룩함’은 ‘구별됨’ 혹은 ‘성별됨’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자신의 욕망과 이념을 따라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구별될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바라는 것이 다르며 목표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믿음의 수준은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다르게 사느냐에 의해 결정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결단하고 자신을 성별하여 바칠 때 그 차별성은 밝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믿는 사람들은 모두 나실인인 셈입니다. 나실인으로 서약한 사람들이 지켜야 했던 세 가지 금기(포도에서 난 것에 대한 금식,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 것, 시신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것)는 당시 가나안의 세속 문화 안에서 사람들이 탐닉하고 즐기던 것들로부터 자신을 구별시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려는 지침이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좋은 게 좋은 거”라면서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성별된 사람으로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5 thoughts on “민수기 6장: 나실인으로 살기

  1. 나실인으로 삶을 예로 들어 우리에게 세상의 욕심에서 벋어나 예수님의 제자로 옳바로 살 것을 안내하는 말씀앞에 내 자신을 비추어 봅니다, 내가 얼마나 믿지 않는 사람들과 구별되이 살았나? 오히려 그들과 잘 어울려 세상을 만끽하던 자신을 돌아 봅니다.
    앞으로는 더욱 몸 가짐을 조심하고 부끄럼 없는 제자로의 삶을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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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나실인의 구별은 일정 기간을 스스로 서원하고 구별되게 산다는 점에서 돋보입니다. 기간을 정해 놓고 제약과 거리를 두고 살지만 그 기간이 끝나도 그 사람은 나실인의 맹세를 떠올리며 자신을 돌아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앞뒤로 나실인의 서약과 제사장의 축복이 나옵니다. 우리 시대에 성직을 선택한 목회자들이 생각납니다. 하나님과 세상 앞에서 구별된 삶을 살겠다는 약속을 하고 제사장의 축복의 권리와 의무를 진 사람들입니다. 나실인의 모델로 살며 남을 위해 복을 빌며 사는 귀한 소수입니다. 목회자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 남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에 대한 기대 이전에 성직에 대한 존경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가게를 다시 연 이튿날 목사님이 다녀가셨습니다. 6월에 있을 연회에 관한 안내 이메일을 보내시면서 영업 재개 계획을 물으시길래 답을 보내 드렸더니 다음날 우리 가게에 들리셨습니다 점심까지 사가지고…. 마스크를 쓰고 조금 멀찍이 앉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따뜻한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가시기 전에 기도해주셨습니다. 제사장의 축복의 기도입니다. 목사님이 아니었어도 누가 가게에 오면 고맙고 반갑습니다. 목사님이 오시면 더더욱 감사합니다. 복을 빌며 평화를 전하며 살기로 한 남다른 결심을 하신 분이라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우리의 마음으로 느끼는 당신의 사랑을 목사님을 통해, 교회 식구의 손길을 통해 확인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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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은혜로 구별해 주셨으니, 자주 넘어지더라도 십자가를 의지하고 걷겠습니다.
    생명의길로 걷도록 지켜주시고,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이웃과 세상에
    나누도록 도와주십시오. 환자수와 사망자수가 늘어나는데도 양식을 구하려는
    저희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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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나실인으로서 이세상의 방향을 가지고 사는 삶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제사장의 세가지 축복이 제 삶에 있기를 기도합니다. 복된 삶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하심과 평화를 흘러보내는 삶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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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본문에 나온 나실인의 서약과 같은 다짐을 했던 적이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목적과 의미가 전혀 다르지만 고등학교 때 살 뺀다고 운동한적이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식사전에 운동을 했습니다. 운동을 끝내고 달력에 엑스마크를 넣었고. 그 엑스마크가 어느덧 몇달이 넘을 때는 살은 많이 빠졌었고. 뭔가를 이루고 있다는 성취감이 더해져서 기분도 좋았습니다. 그 성취감이 원동력이 되서 몸이 피곤한 날도 일단 해보자라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나실인처럼 구별되어 사는 삶은 쉽지 않습니다. 거룩하게 살려면 자신의 욕망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 믿음이 부족할 때 구별되어 살기는 참으로 어렵고. 방심하면 일주일, 아니 몇달이나 구별되지 않은 삶을 살아간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렇지 않으려면 매일 십자가의 사랑과 부활에 대한 믿음을 구해야 합니다. 마음이 없을 때라도 몸이 움직여야 합니다. 성경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해야 하며. 사랑의 언행에 힘써야 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찾아야 하며. 하나님이 우리 삶에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다만 바라는 건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십자가의 사랑과 부활에 대한 믿음을 불태워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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