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4장: 거룩한 것을 거룩하게

해설:

계속하여 레위 지파의 임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레위 자손들 중에서 성전에 관한 일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서른 살에서 쉰 살 사이의 남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진을 이동할 때, 고핫 계열은 성막의 각종 성구들을 옮기게 됩니다. 이동을 위해 성막을 해체할 때 아론과 그 아들들은 먼저 성막 안에 있는 성구들을 거두어 짐을 싸야 했습니다(5-14절). 그렇게 이동 준비가 완료 되면 고핫 자손이 그것들을 둘러 메고 이동합니다(15절). 그 때 그 거룩한 물건이 몸에 닿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실수로 그것이 몸에 닿으면 죽음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제사장 엘르아살이 지휘하도록 했습니다((16절).

게르손 계열의 레위 자손들은 성막을 치는 데 필요한 모든 장막과 줄과 기구들입니다(22-27절). 이 일은 제사장 이다말의 지휘를 받아 행해야 했습니다. 므라리 자손은 성막을 받치도록 준비된 모든 물품을 담당합니다(29-33절). 이 일도 역시 제사장 이다말의 지휘 아래에서 행해야 했습니다.

삼십 세부터 오십 세까지 각 지파 별로 인구 조사를 해 보니, 고핫 자손이 2,750명, 게르손 자손이 2,630명, 므라리 자손이 3,200명이었습니다. 진을 치고 있을 때 이들은 성막이 제 기능을 다하도록 제사장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행군을 할 때는 각각 맡겨진 대로 짐을 날라야 했습니다. 성막을 관리할 때에나 행군할 때 그들은 거룩한 것을 함부로 다루지 않도록 각별히 챙겨야 했습니다. 

묵상:

거룩’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카도쉬’는 ‘구별하다’는 의미입니다. 성막과 성구에 사용된 모든 물건은 본질상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지침에 따라 거룩한 목적을 위해 구별되었기 때문에 거룩해진 것입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이 거룩한 것도 거룩한 목적을 위해 구별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거룩함을 부정하고 함부로 행동하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입니다. 거룩한 목적을 위해 성별되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순간 혹은 그 사실을 무시하는 순간, 그 사람 혹은 그 물건의 거룩성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거룩한 것을 일상적으로 대해야 하는 사람들이 마주하게 되는 영적 위험입니다. 거룩한 곳에서, 거룩한 사람들과 함께, 거룩한 물건들을 관리하며, 거룩한 목적을 위해 섬기는 것은 인간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상의 영광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영적으로 가장 위험한 자리에 서는 것이기도 합니다. 거룩한 것을 일상적으로 대하다 보면 그 거룩성에 둔감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제사장들이 매일 감당해야 하는 영적 싸움이었고, 레위인들이 늘 챙겨야 했던 위험이었습니다.

5 thoughts on “민수기 4장: 거룩한 것을 거룩하게

  1. 구별된 레위 자손들이 거룩한 성믹을 38년간 매일 같이 옮기면서 처음엔 떨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성막의 짐들을 다루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느슨해 진 광야 생활이 눈에 선합니다.
    나도 미국생활 47년동안 10번의 이사를 하면서 그 때마다 이사짐을 싸고 챙겨야 하는 일이 얼마나 번잡스런 일인지를 생각해 보며 불기둥과 구름 기둥이 있는 날마다 이사짐을 챙겨야 했던 38년 간의 레위 지파들의 고된 노고를 생각해보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축복과 함께 따르는 수고를 생각해 봅니다.
    사랑의 하나님과 동시에 거룩한 하나님임을 잊지말고 제자로서의 구별된 행동을 잊지않게 되기를 간구하며 시작하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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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항상 십자가 은혜를 잊지않고 구별된 몸과 영혼을 원합니다.
    매일 아침 말씀으로 물과 불과 진리와 성령으로 세례받고 새로워지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함께 주워진 사명을 책임있게 감당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우한 폐렴으로 수고하는 의료진과 고생하는 환자와 가족에게 도움되는 정부의 정책을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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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모든 것을 참고 인내하시는 분이신데 지성소를 보지 말라고 하신 것을 보면 의아한 생각이 듭니다. 정해진 때와 규칙을 어기고 보기만 하면 이유를 막론하고 죽는다는 것입니다. 지성물에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신신 당부를 하시는 것을 보며 하나님의 거룩성은 타협이 안되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가장 어려운 부분이 이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길 때 나의 일상생활이 늘 거룩하기만 하면 좋을 터이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거룩함과 타협하실 수 없는 하나님의 속성 앞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을 살아야 할까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는 아무리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사역에 쓰임을 받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거룩에 도전하는 행위는 죽음인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할까요.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사 독생자 아들을 이 땅에 보내 주셨고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피흘리사 우리의 죄값을 치러 주셨는데 세상에 살면서 세상사람들과 똑같이 죄를 짓고 예수님의 공로로 죄사함을 받았다 하며 버젓이 하나님께 나가는 자들이 된다면 어떻게 영적인 생명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하는 궁금함이 있습니다.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고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하셨는데 나의 삶에 죄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할 뿐 아니라 날마다 나 자신의 점검을 통해 거룩함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습관적 깨우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조금만 방치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깊은 곳을 파고드는 것이 죄인 것 같습니다. 조금만 느슨해 지면 나도 모르는 사이 나를 깊은 웅덩이에 던져 버리는 것이 죄라는 것을 생각하면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새삼 느껴집니다. 그래서인지 마귀는 나의 죄성을 끝까지 걸고 넘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을 두려워 한 발락이 갖은 재물로 발람을 유혹했지만 이스라엘을 해할 수 있는 복술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미디안 여인 고스비를 앞세워 음란의 죄를 유발했을 때 그 죄가 이스라엘의 발목을 잡았던 것 같이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를 가로막을 수 있는 마귀의 복술은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의 생각을 파고드는 죄를 다스리지 못할 때 결국 마귀에게 발목이 잡히는 것 같습니다.

    죄를 깨닫고 자신을 쳐서 말씀에 복종시키는 삶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닌 나의 생명을 지키는 삶임을 새삼 느끼며 나의 생활을 침입하는 죄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가 아닌 각오하고 준비되어 성령과 말씀으로 무장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군사적 삶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 하지만 그 사랑을 체험하고 그 사랑을 누릴 수 있는 삶은 결국 나의 선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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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세밀하신 하나님, 각 지파별로, 연령별로, 인구조사 뿐만아니라 어떤 일을 담당하고 어떤 사람 지휘아래서 세세한 모든 것들을 지도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해봅니다. 어떤일이 소망하는 대로 잘 되었을때, 많은 크리스챤들이 습관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라는 매직워드를 외칩니다. 혹은 진심에서 고백하는 말이기도하지만, 대부분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 아닌, 형식으로 말이죠.

    오늘도 여러 일들을 맞딱드렸을때, 항상 세밀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되새겨보아야겠습니다. 작은 하나의 스텝에서도 세밀하게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을 오늘 하루도 찾고 감사하며 영광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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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레위 지파 안에서 집안별로 할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동하기 전과 진을 치기 전에 회막과 성물을 담당하는 일들을 가문을 따라 자세하게 분류하고 있습니다. 거룩하게 구별된 것은 하나님께 바치는 것으로 분리해 놓은 것입니다. 레위 사람들은 거룩하게 구별된 일을 위해 따로 분리해 놓은 사람들입니다. 영광된 구분입니다. 그 가문에 태어났으면 그 일을 하도록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현대인들에게 익숙한 재능이나 기질, 선택 같은 것은 해당이 안됩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 사회는 공동체가 우선이요 그 공동체는 하나님을 위한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듬어지는 것 만이 목적이고 가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시 빚어지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모의 신앙을 물려 받으며 태어난 사람이나 뒤늦게 하나님을 찾게된 사람이나 하나님의 거룩함을 배우고 거룩함에 참여하여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모습입니다. 지성물을 감당하는 고핫 자손들은 특별히 조심을 해야 합니다. 거룩한 물건들에 손이 닿아도, 보아서도 안되었습니다. 긴장하고 있어야 합니다. 구별됨의 무게를 엿볼 수 있습니다. 존귀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받는 사람은 쉽게 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만사가 형통하기를 바라는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쉽게 살기를 바라지 말고, 조심스럽게 사는가를 살피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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