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장: 하나님의 일과 우리의 일

해설:

20세 이상의 남성만 육십만 명이 넘었으니, 여자와 어린이들까지 합하면 이백만 명 가까운 거대한 민족 대 이동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거대한 민족이 이동하려면 그에 따른 조직과 질서가 필요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지파 별로 대오를 형성하여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합니다. 

한 지역에 머물러 진을 칠 때는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세 지파씩 대오를 짜게 했습니다. 동쪽에는 유다 지파가 진을 치고 양 옆으로는 잇사갈 지파와 스불론 지파가 진을 쳤습니다. 남쪽에는 르우벤 지파가 중심에 자리 잡고 양 옆으로는 시므온 지파와 갓 지파가 진을 쳤습니다. 서쪽에는 에브라임 지파가 중심에 자리 잡고 양 옆에는 므낫세 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자리 잡았습니다. 북쪽에는 단 지파가 중심에 진을 치고 아셀 지파와 납달리 지파가 양 옆에 진을 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중심에는 성막이 세워지고 레위 지파가 성막을 에워 싸고 진을 쳤습니다. 

행군을 할 때에는 동쪽에 진을 친 세 지파가 선두에 서고 남쪽에 진을 친 세 지파가 그 뒤를 따릅니다. 그런 다음 레위 지파가 성막과 성구들을 들고 행군하고, 그 뒤로 서쪽에 진을 친 세 지파가 따랐고 맨 뒤를 북쪽에 진을 쳤던 세 지파가 따랐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언제나 성막이 중심에 있게 했습니다. 

묵상:

드론에 카메라를 달아서 이스라엘 백성이 진을 친 모습을 상공에서 촬영을 했다면 참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중심에 성막을 세우고 그 둘레로 레위 지파가 에워싸고 네 방향으로 세 지파씩 나누어 진을 친 모습은 정교한 설계와 건축으로 만들어진 신도시의 모습 같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행군하는 모습을 상공에서 촬영 했다면 그것 또한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가야 할 길이 하루 이틀 길이 아니었기에 그와 같은 정연한 질서와 조직과 규율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이 가는 길을 인도한 것은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었지만, 그 길을 완주하기 위해서는 그들 모두가 정해진 질서와 조직과 규율을 따라야 했습니다. 그것을 따라 서로를 배려하고 협력 해야만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지에 도달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일을 하시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이 땅에서 그들의 일을 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산다는 말은 팔짱 끼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해 주시도록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동안 이 땅에서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광야를 지나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나 혼자 할 일이 아닙니다. 목적지가 같은 사람들이 서로 대오를 짜서 서로 돕고 협력해야 합니다. 같은 목적을 위해 서로 협력하는 공동체의 모습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5 thoughts on “민수기 2장: 하나님의 일과 우리의 일

  1. 이번 코비드 사태 때문에 각자가 격리하며 약 40 여일간 은둔 생활을 하면서 절감하는 현상이 인간이 얼마나 시회적인 집단인가를 뼈저리게 느끼며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게 지워진 우리 자신을 발견합니다.
    나 자신의 위치가 교회나 사회 생활에서 어떤 자리게 해당하는 지를 옳바르게 깨닭고 내 주어진 자리를 잘 지켜 나갈 수 있는 지혜를 구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늘 질서를 지키며 주님의 지침에 벗어나는 일이 없도록 깨어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천사가 지켜주실 것을 간구하며 또 오늘 하루를 시작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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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한걸음 한걸음 따라갈때, 하나님께서 주신 체계와 함께 각 지파들의 역할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전에 이리 때가 이동하는 사진들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제일 용맹하고 날렵한 무리들은 앞에서 무리들을 이끌며 보호하고, 제일 약한 이리들은 가운데에 있고, 그리고 제일 힘이 좋은 이리들과 이리 리더는 제일 무리 끝 쪽에서 이동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뒤쳐지지 않고 보호하기 위함이지요.

    이스라엘 백성의 행군이 꼭 이리때와 같습니다. 성막을 중심으로, 즉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때, 각 지파가 행해야 하는 역할들을 또한 충성하게 순종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행군을 할 때에, 동쪽에 있는 세 지파는 누구보다도 더 일찍 앞서서 이스라엘 전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태세를 갖추었어야 하며, 제일 뒤쪽에 있는 세지파는 뒤에서 적들을 보호하며 성전을 보호한 것 처럼 말이죠.

    오늘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제게 주어진 사명을 다해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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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어디에 속해있는지 확신하고 자기의 자리를 지키며 주워진 본분에 순종 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몸이신 교회를 중심에 두고 사는 가정과 사회와 나라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우한 폐렴과 싸울때 각자가 맡은 사명에 충실하도록 도와주십시오.
    부상당한 병자들을 이웃과함께 돌보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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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떠오르는 이미지는 질서입니다. 질서 정연하게 행진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무리를 상상합니다. 질서는 그 자체에서 풍기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아름다움에 대해 여러 분야에서 여러 방향으로 정의하고 해석해 왔는데 학문적인 접근 아니어도 일반인이 뭔가를 보고 좋다, 예쁘다, 아름답다 등등의 반응을 하는 데에는 질서와 조화를 지향하는 내적 나침반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호감을 주는 얼굴, 아름다운 얼굴의 첫번째 조건이 대칭 (symmetry) 이라지요. 그 다음이 익숙함 (familiarity) 인데 대칭이 시각적인 판단이라면 익숙함은 인식의 기능입니다. 익숙한 것을 좋게 보는 것은 종족과 지파가 공동으로 살아남는 데 기여했을 것입니다. 익숙함의 값에 치우치면 닫힌 사회가 되기에 때로는 “이국적인” 것을 좋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삶의 여러 면에서 경험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말할 때 질서의 하나님, 세심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닙니다. 세상은 혼란스러운데 성경에는 질서가 있습니다. 세상은 대충대충인데 성경은 세세합니다. 질서를 갖춘다는 것은 수직적인 지휘체계가 있다는 뜻입니다. 우주가 질서정연하게 돌아가는 것은 우연히 어쩌다 뭔가가 맞아서 일어나는 일일 수 없습니다. 조화롭다는 것은 다른 것끼리 서로 어울린다는 뜻입니다. 같은 것을 똑같이 죽 늘어놓고 조화롭다고 하지 않습니다. 높낮이와 크기가 서로 다른데 같이 잘 어울리게 놓여 있을 때 조화롭다고 인식합니다. 열 두지파 (레위 지파 빼고 열 둘이라는 것을 오늘 다시 확인했습니다)의 장정 숫자가 다 다릅니다. 큰 무리와 작은 무리가 있는데 네 지파가 각각 십팔만, 십오만, 십만, 십오만 입니다. 로봇 부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행군 그림이 아닙니다. 각자의 이름이 있고 어느 아비의 아들인지 셀 수 있는 무리입니다. 이미 질서와 조화의 영을 부어 주셨는데 제각각, 다 제 마음대로 사는 우리를 하나님의 진두지휘 아래로 모아주시기를 원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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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캐나다에서 군인으로 있었던 친구한명이 생각납니다. 그 친구는 컴퓨터 게임에 중독되서 고등학교를 중도포기하고 집에서 게임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군대에 입대한다고 했고 얼마뒤에는 기본훈련이 끝났다고 졸업식에 오라고 했습니다. 졸업식의 하이라이트는 훈련받은 신입들이 가족과 친구들 앞에서 행군하는 거였습니다. 단순히 걷는게 아니라 상사의 구호에 맞추어 스타일과 페이스를 바꾸며 여러사람이 한몸처럼 걸었습니다. 제 친구는 3달전과 달리 절제된 군인의 모습이었습니다.

    본문에 말씀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불투명하고 더 큰 고생이 있을 수도 있는 에굽 밖으로 나가게 하셨고. 어느 한 곳에 눌러앉히지 않으시고 멀리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항상 고생만 어려움만 주시는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성막을 세우고. 그 성막을 중심으로 진을 치며 나가게 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더 빨리 이동했겠지만 말이죠.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협력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기를 바라십니다. 목표를 향해 빨리 가는거 보다 어떻게 가는게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코로나바이러스를 마주하면서 생각해 봐야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성막이 자리잡고 있는지.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공동체로 이 지역사회와 연대하고 있는지. 제 안에 있는 이기심보다 이웃에 대한 자비로움과 사랑이 앞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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