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4편: 가장 우선되는 일

해설:

마지막 순례자의 시편은 오랜 순례 여정을 마치고 성전에 도착한 사람의 심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주님의 집”(1절)은 성전을 의미하고 “주님의 모든 종들”은 성전 제사를 위해 섬기는 레위인들(제사장들과 다른 레위 지파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낮 동안에 제사를 위해 일할 뿐 아니라 밤중에도 순번을 짜서 성전을 지킵니다. 시인은 그들에게 “성소를 바라보면서, 너희의 손을 들고 주님을 송축하여라”(2절)고 노래합니다. 그들이 성전에서 행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제사는 ‘일’이 아니라 ‘예배’임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하늘과 땅을 지으신 주님께서”(3절) 그들에게 복 내려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정착할 때 레위지파는 땅을 분배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성막(후에 성전)에서의 제자를 위해 섬겨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생계는 다른 열한 지파가 책임 져야 했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언제든 성전에 와서 제사 드릴 수 있는 것은 레위 지파 사람들의 헌신 덕분임을 기억하면서 그들을 위해 축복의 기도를 올립니다.

묵상:

시인은 성전이 영적으로 가장 위험한 자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매일 성전에서 일하다 보면 자신이 얼마나 거룩한 일을 하고 있는지를 망각하고 모든 것을 ‘일’로 대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곳에 서 있지만 가장 거룩하지 않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레위인들에게 성소를 바라보면서 주님을 송축하라고 권합니다. 그들의 가장 우선적인 책임은 제사를 ‘돕는 것’이 아니라 ‘제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은 매너리즘에 빠져서 가장 거룩한 일을 밥벌이로 전락시켜 버릴 것입니다. 매너리즘에 빠진 제사 행위는 하나님께는 역겨운 것이고 사람에게는 공허한 것이 되어 버립니다. 

목회자에게 있어서 가장 큰 위험은 목회를 ‘일’로 대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해야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올리는 예배라는 사실을 잊으면 예배도, 기도도, 설교도, 심방도 ‘일’이 되어 버립니다. 더 심하게 타락하면 ‘밥벌이’가 되고 ‘지겨운 일’이 되며 ‘죽지 못해 하는 일’이 되어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의 자리가 영적으로 가장 위험한 자리입니다. 시인의 권면처럼, 목회자가 가장 먼저, 가장 우선적으로 할 일은 성소를 바라보며 손을 들고 예배하는 일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목회자는 성도들의 기도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믿는 이들은 모두 “왕같은 제사장”(벧전 2:9)이라고 했고,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지송소에 들어가게 되었다”(히 10:19)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인 모두는 항상 성전에서 살아가는 레위인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시편은 우리 모두에게 항상 불러 주어야 할 노래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가장 먼저, 가장 우선적으로 할 일은 손을 들고 하나님을 송축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들은 영원에 잇대어질 것입니다. 

3 thoughts on “시편 134편: 가장 우선되는 일

  1. 기도하지 않으면서 기도에 관해서 말하고, 성경을 읽지 않으면서 성경을 가르치고, 예배하지 않으면서 예배를 인도하고, 헌금을 내면서 인색하면서, 헌금을 내도록 강요하고,….

    기도 성경 예배 헌금 모두 하나님을 따라가는 제자가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훈련이지만, 이 모든 것들이 “일”이 아닌 “사명”이며 기쁜 마음으로 따라가는 목회자가 되게하소서.

    매일 초심을 잃지 않고, 사명과 부르심에 응답하는 하루하루를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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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우한 폐렴 이라는 어두운 밤을 허락하신 주님이 우리와 같이 신음 하시며 인도
    하시는 그 엄청난 아버지의 사랑 임을 고백합니다. 빛나는 영광이 캄캄한 굴 끝에서 우리를
    영접하는 소망을 기억하며 끝까지 이웃과함께 완주 하기를 기도합니다.
    매일 아침 주시는 말씀이 그날 꼭 필요한 힘과 용기 생명 입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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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오늘 시편을 읽으니 코로나 시대에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진이 먼저 생각납니다. 레위인들은 성전을 지키고 제사를 준비하는 일에만 몰두하라는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요 현대 의료업계 종사자들은 자기가 그 직업을 선택 했다는 점이 다르지만 의무와 책임이 엄중하다는 점은 같습니다. 제사가 일이나 의무가 되어 버리면 제사장에게도 백성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교회를 중심으로 사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습니다. 성직 뿐 아니라 사회의 대다수 직업도 보상과 보람이 균형을 맞춰주어야 무리없이 유지됩니다. 코로나 위기로 인해 일을 중단하게 된 사람들과 이 하면 병원 종사자 외에도 기본 질서와 유통을 위해 평소보다 더 많이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로 나뉘어졌습니다. 같은 위기를 맞고서도 반대 위치에 서게 된 것입니다. 동네에 불이 나자 밖으로 뛰어 나오는 사람과 불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과 같습니다. 시편 134편은 성전을 밤낮으로 돌보는 이들의 찬양입니다. 그들의 기쁨은 하나님의 임재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이들 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은 다 하나님 만을 기뻐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성전의 자리와 의미가 변화하고 있는 이 시대에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와 노래가 끊이지 않습니다. 어디서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언제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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